▲ 이애란(청주대 교수·조경기술사)
‘다양성의 시대(diversity world)'는 또 하나의 행복 그래서 고마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화두를 던져본다.
근대의 목표지향적인 산업화사회 일변으로 현대까지 달려온 이 시대. 계획의 완벽성과 대규모 사회집단의 성공만을 향해 전진하던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가치를 찾아가는 작업들이 최근들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편에는 이 ‘다름’에 대한 여러 가치를 담아보고자 한다.

지구는 40억 년 동안 제 모습을 유지해왔다. 스스로 엄청나게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안고 그들의 생태적 지위를 존중하며 끊임없이 재생하는 메카니즘을 상황과 장소, 규모 등의 필요에 따라 변형해오고 있다. 50년에 한번 발생하는 홍수는 막을 수 있으나 100년 이상에 한번 갑작스레 발생하는 대홍수를 예측하고 방비할 규모조차 측정하기 버거운 인간은 참으로 이해조차 하기 힘든 시스템이다. 효율화와 최적화시대를 앞세우는 최첨단의 현대에 겪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 과연 우리는 딱 들어맞는 이러한 용어들에 앞서 과거 선인들의 삶에서 나온 여분의 고마움. 겹침과 가변성의 미학을 원용해야 하지 않을까? 틀에 박힌 교육, 이론과 통계, 규정집과 산업과 대규모 식품회사, 실증과학에 긍정의 깃대를 꽂고 달리는 시대에 다른 깃대를 제안해 본다. 작은 실수를 사랑하며 실수를 정보로 만드는 교육과 장서(長書), 경험과 실용적 방법, 장인과 작은 식당에 대한 가치, 인문학적 삶의 해박한 지식, 르꼬르뷔제의 계획도시에 반기를 든 제인 제이콥스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가진 도시만들기운동.

1961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제인의 대안적 도시살리기 방안은 지금에 와선 참으로 단순하고 당연한 시스템으로 실행되고 있다. 첫째, 거리에 사람을 많이 다니게 하는 것. 둘째,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두는 것. 셋째, 인기 있는 업종만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가게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의 블록은 작게 유지하는 것, 즉 골목길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며 공동체가 유지되는 동네는 범죄율 또한 하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존 라이크만(미 콜롬비아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오늘날 도시디자인은 사회공동체 내의 다양한 활동을 유지해 나가면서 도시에 급증하는 도시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어떻게 현대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이야기 한다. 이전에는 도시가 어떻게 ‘보이도록’ 했느냐에 신경 썼다면 이제는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작동하는가’에 사회경제적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에는 ‘동네’가 필요하다. 세상이 정교하고 복잡해져 전문적 지속성은 추구하고 있으나 작음과 다름의 사회적 붕괴에는 취약하다.

그러면 이 도시속의 자아들을 살펴보자. 인간은 근본적으로 ‘인식’ 과 ‘직관’이 아는 것, 요약하는 것, 단어로 순서대로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우월하다. 그러나 언어학의 발달, 서로간의 영역독립성을 요구하면서 국가, 지역, 개인의 영역의존성이 높아짐에 따라 소통과 개념전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정 영역의 이해도는 높으나 교실 이상의 현실에 대한 복잡한 구조의 이해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를 타개하는 지혜와 합리성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폴로의 힘인 이성과 논리체계, 문명의 지혜, 지식의 축적도 중요하지만 디오니소스의 힘인 문명과 예술의 상징, 생육과 번식을 통한 농사와 풍요, 자연의 본능적 균형이 필요하다.

자연의 지혜는 그리고 위험을 관리하는 주요방식은 바로 ‘여분’을 갖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예를 보면 두 개의 장기를 가지고 있다. 폐, 신장계, 동맥혈관 등. 현재의 인간은 아낌없이 쓰면서 여분은 비축하지 않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측정한 최대값의 정합성을 주장하며 여분을 낭비라고 여기고 있다.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가 보았던 가장 높은 산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믿는다’고 했다. 하향식 관료국가였던 민족국가 이집트도 나일강 수위 측정에서도 과거 경험했던 최대치로만 기준치를 잡아 재해를 입었다. IMF 구제금융 때 미국의 은행연방의 총재 또한 “이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는 변명으로 유명하다. 반면 상향식 변화는 관계의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지역과 내부에서는 다양성과 변화를 향해 적대하고 끊임없는 투쟁이 일어나지만 큰 대상에 대면했을 때는 뭉쳐서 온건하고 안정된 정부를 구성한다. 대표적인 국가가 스위스일 것이다.

인간이 현재 마지막 전쟁을 치렀다면 자연은 다음에 있을 전쟁을 준비한다. 기계와 단순계는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가 필요하며 사용하면 소모되고 노화되어 버려진다. 무작위성이 없고 회복이란 용어가 없다. 그러나 자연이 담은 유기체와 동적시스템(dynamic system)은 자기치유가 가능하며 변화를 사랑한다. 상호의존성을 가지며 시간이 지나면 노화됨과 동시에 자손을 준비하고 생산하며 스트레스를 조절해 스스로 자기회복력을 갖는다.
변화가능성이 있는 환경은 인간에게 만성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위계와 질서를 가지고 평형을 이룬다. 브누아 만델브로의 ‘자기유사성을 가진 프렉탈(Fractal self-similiarity)'은 자연의 이 원리를 발견한 예일 것이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전체가 된다. 큰 것은 부서지기 쉽다. 슬프게도 대기업, 조직이 큰 것, 덩치가 큰 포유동물이나 행정기관에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원리들이다. 작가, 예술가, 철학자들은 열광적인 소수의 팬만 있으면 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보다 휠씬 더 행복하다. 그 소수가 더 더욱 열성적이고 영향력 있는 지지자 일 때는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자연은 극단의 왕국(Extremistan) 아니라 평범의 세상(Mediocristan)이다. 놀랄만한 변화가 시간이 지나면 상쇄되고 극단적 변화는 최소화한다. 라틴어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꾸물거림은 생태적·자연주의적 지혜로 가속화된다. 내면의 자아를 찾기 위해 깊은 진화적 과거가 주는 메시지를 받아보아야 한다. 실수의 두려움을 잊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 성장의 대화다. 통합(conflation)의 시대, 두 개 이상의 대상이 몇가지 특성을 공유할 때 서로 같은 대상으로 인식해 버리는 현상의 시대. 연구는 복잡하나 행동은 단순하게 하자.

이제 여분의 고마움, 작은 겹침의 미학,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통한 통섭의 시대에 서로 다름으로 또 다른 행복을 공유하는 세상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모두의 스승인 자연에 감사하며 그 지혜를 가지고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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