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직(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여러 해 전부터 건설경기 침체로 조경업계 상황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지나가는 인사로라도 좋은 제자 있으면 꼭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가 자취를 감춰 버린 지 오래되었다. 꽁꽁 얼어붙은 건설시장은 그동안 조경업계를 이끌던 주력 업체의 줄도산을 가져왔다. 어려워진 환경은 독자적인 공법, 소재, 특허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분야 대다수 중소업체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2009년 7조2000억 원(계약실적) 규모의 조경공사 시장은 2012년 4조8000억 원대 정도로 떨어졌으며, 지난해에는 이보다 더 축소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접 분야가 국가적인 토목사업 아젠다를 발굴하면 거기서 파생되는 조경시장을 추수하려는 그동안의 접근 방식과는 다른 시각과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주어진 상황이나 정해진 시장 안에서 파이를 다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과 조건을 만들어 내야할 시점인 것이다. 새로운 시장의 창출 모색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창조경제라는 주제와 맞물리면서 우리 조경분야가 연초에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숙제 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어떻게 새로운 활로를 찾을 것인가? 그 단서는 변화하는 우리 사회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우리 사회는 질적인 변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국민소득이 5000달러에서 1만 달러,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 시대를 지나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더블 업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2007년 무렵 2만 달러대로 진입했던 국민소득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1만 달러대로 주저앉았지만 다시금 변곡점을 지나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일컫는 국민소득 4만 달러 대의 대열에 드는 길은 느리기는 하지만 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소득 수준이 두 배로 늘어나는데 15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물론 통일을 비롯한 많은 변수들이 있지만 이런 경향이 그대로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낙관적으로 가정해 본다면 대략 2020년 무렵에는 우리도 이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더블 업된 나라는 모두 22개국인데 이들 나라가 이 시기를 거치면서 보인 공통적인 특징은 양적인 발전에서 질적인 변화로의 전환으로 요약된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발전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의식의 전환을 또한 요구한다. 그동안은 소수의 선두가 발전을 견인해 나가는 소위 기러기형 발전이 주요한 패러다임이었다면, 앞으로는 로우엔드의 발전을 통해 사회 전체의 평균을 튼실하게 도모하는 일이 발전의 요체를 이루게 됨을 함축한다. 요컨대 잘사는 사람이 얼마나 잘 사느냐가 아니라 못사는 사람이 얼마나 못사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조경의 숙제는 무엇인가? 사실 그동안 조금씩 변화의 조짐들이 있었다. 자전거 이용의 폭발적 증가와 보행자 중심의 도시공간 지향, 정원과 도시농업, 조경복지와 나눔, 공공 조경가와 거버넌스 등의 키워드들은 이런 변화들이 그동안 우리들 주변에서 조금씩 이루어져 왔음을 말해준다. 그 연장선에서 한 가지 생각을 더 추가하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농촌공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조경이란 작업의 실천적 좌표를 너무 도시에 두었음에 대한 반성이 이 시대 필요함을 뜻한다. 동시대 조경이 도시의 발전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공간들에 주목해 왔지만 이런 시각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농촌이란 공간을 개발의 뒤편으로 소외시킨 것 또한 사실이다.

10년 전 외국에서 조경을 새롭게 살펴 볼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농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농과대학 교수로 근무를 하고 있으면서도 농촌에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앨런 버거 교수가 말하는 드로스 스케이프의 대표적인 공간은 다름 아닌 우리의 농촌이었다. 귀국 후 본격적으로 농촌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가까이서 보고 느낀 점은 우리의 농촌은 우리가 배우고 익힌 조경을 충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전인미답의 공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공간은 조경의 비즈니스를 확대할 수 있는 블루 오션이기도 하였다. 도시에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마다 경쟁을 하고 있어 조경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기가 쉽지 않은 반면 농촌은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시장규모 또한 적지 않다. 농촌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농림부 지역개발과가 일 년에 농산어촌 지역에 쏟아붓는 예산은 8000억 원이 넘는다.

요즘 조경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은 우리나라에 조경공사가 있었고, 청와대에 조경을 담당했던 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조경이라는 지식과 경험이 전무했던 시대, 조경이라는 전문적인 서비스가 사회적으로 필요했지만 공급할 수 없었던 시대에는 국가가 나서서 선도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의 영역에서 담당했던 조경이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민간의 시장으로 전환되어 온 것이 지난 40년 한국조경의 현대사가 아니었던가. 농촌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시절 조경공사가 담당했던 역할의 많은 부분을 농어촌공사가 현재에 맡고 있다.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보면서 우리의 농촌공간을 지속가능하게 가꾸고 살피는 일은 공공의 영역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깊게 느낀다. 현재는 공공이 나서서 리드하고 있지만, 아직은 민간의 시장과 기술력이 부족하지만 이 일은 민간이 나서서 할 때 훨씬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비록 걸음마 단계이지만 조금씩 농촌조경의 실천생태계가 구축되어 나가고 있다. 다소 생소한 법체계와 사업들로 이루어져 언뜻 보기에 진입장벽이 높아 보이고, 고령화와 과소화 된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기에 힘들고 낯설어 보인다. 그렇지만 분명 농촌은 꽉막힌 조경 비즈니스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도전의 영역이자 기회의 공간이다. 우리시대 도시의 문제는 농촌과 연계되어 있고, 농촌의 문제는 도시와 연계되어 있다. 농촌은 우리 시대 부모와 친척들이 여전히 살고 있으며, 적지 않은 도시민들이 돌아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의 공간이다.
올 한 해 많은 조경인들이 농촌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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