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고대하던 첫 금메달이 나왔다.

육상경기로 치면 100m 경기인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 경기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며 온 국민의 염원을 속 시원하게 뚫어준 이상화 선수가 겨울왕국의 주인공으로 화려한 등극을 했다.

4년 전 이상화는 2010 벤쿠버 올림픽에서 500m 금메달을 따고서 빙상 영웅들의 맏형인 이규혁의 방을 찾았다. 다섯 번째 올림픽에서도 메달 획득에 실패한 선배의 힘든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후배 이상화는 선배가 그동안 쏟은 땀과 노력을 알기에 위로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상화는 경기력 만큼이나 마음 씀씀이도 금메달 이상이 아닌가 싶다.

올림픽에 6회나 출전하고도 노메달인 이규혁은 정말 실패자일까? 이규혁은 지난 20년 이상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간판이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국가대표에 올랐다.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를 지낸 부친과 피겨 스케이팅 선수생활을 한 모친의 스케이트 우성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할 만큼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그에게 유독 올림픽에서만 불운의 연속으로 메달 획득에 실패를 했다. 이규혁은 0.001초의 경쟁 속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신기록을 두 차례나 기록한 신기록 보유자였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했고 슬럼프를 겪고 난 후에서도 아시안게임의 2관왕 등의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필두로 6회 연속 참가를 했으나 2006년 토리노 올림픽 1000m에서 아쉽게도 0.05초 차이로 4위에 오른 것이 최고의 성적이다. 그는 지난 2010 벤쿠버 올림픽에서 1000m와 500m에서 각각 9위와 15위에 그친 바가 있다. 약관 20세의 모태범 선수가 500m에서 금메달을 딸 때 32세의 노장 이규혁은 쓸쓸히 돌아서며 마지막 올림픽의 여운을 느끼고 싶다며 빙판을 뒤로 한 채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 있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는 환갑에 해당하는 나이가 돼서 다음 올림픽에 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하면서 노장의 퇴장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런 이규혁이 불사조처럼 4년 후 소치올림픽의 빙판에 다시 섰다. 또래의 친구들은 배불뚝이 ‘아저씨‘ 소리를 들을 나이에 철저한 자기관리로 올림픽 출전 기준을 통과하여 선수생활의 대미를 장식하러 출전을 했다.

이규혁의 투혼은 척박한 국내 빙상 발전에 두둑한 밑거름이 됐다. 뼈를 깎는 듯한 훈련의 고통과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20년 이상을 국내 스피드 스케이팅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을 했고 오늘의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등의 우상이 되었고 이들 걸출한 선수들을 배출한 밑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규혁을 세계 빙상계는 ‘존경받는 빙상 탄환’이라는 표현을 하고 이번 소치올림픽 남자 500m 우승자인 네덜란드의 미셸 물더는 이규혁을 ‘영웅’이라고 치켜세운다.

이번에도 21위라는 성적에 그쳤지만 마지막 불꽃을 아름답게 피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빙판을 떠난 이규혁 선수에게 “그동안 그대가 있어서 행복했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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