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춘매 화가의 ‘진관사 가는 길’ 40.9 x 27.3cm Watercolor on Arches 2008. 작가소장



1. ‘기자’촌이 아니라 기자‘촌’이었다.

개인 이야기를 하자면 기자촌은 나에게 있어 지구의 끝이었다. 태어나서 여태까지 살고 있는 옥수동에는 버스 154번이 다녔고 버스 앞창의 노선 안내판 한쪽 끝에는 옥수동이 그 반대편에는 기자촌이 있었다. 154번을 타고 참 멀리 나갔다 싶어도 기자촌에는 미치지 못했었다. 그렇게 버스 노선의 다른 끝 기자촌은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머나먼 곳이었다. 기자들이 살아서 기자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기자’라는 단어와 ‘촌’이라는 단어의 조합에서 ‘기자’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기자촌을 상상했었다. 보그체로 표현하자면 ‘모던하되 내츄럴하면서도 인텔리전트한 경관 속에서 무심한 듯 시크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여겼었다.

154번 종점 근처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의 상상은 깨졌다. 어느 해인가 서오능으로 소풍을 가게 되었고 드디어 154번을 끝까지 타게 되었다. 그런데 버스 종점에서 서오능으로 향하면서 만난 기자촌은 나의 상상과는 달랐다. 내가 사는 옥수동보다 더 촌이었고 그야말로 ‘시크는 무슨 쥐뿔’이었다. 야트막한 산이나 논과 밭이 있어 운치 있었을 텐데 그 때는 그 매력을 알지 못했다. 그 이후로 버스 154번 번호판의 기자촌이라는 지역명에서 기자보다는 ‘촌’이라는 단어가 눈에 더 들어왔고 나는 기자촌에 대해서 무심한 듯 시크해졌다. 지구의 끝이 아닌 그냥 154번의 종점.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기자촌은 공식적인 명칭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가 1969년에 무주택 기자들을 위해 북한산 한 자락에 조성한 주택조합단지여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을 뿐이라고 한다. 공식적인 명칭은 진관동이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기자촌이 ‘촌’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1971년부터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개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었고 고즈넉한 매력이 있어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안녕 UFO’, ‘바보’, ‘그 남자의 책 198쪽’ 같은 영화에서 기자촌을 만날 수 있다.


2. 촌에서 타운으로

내 관심에서 멀어졌던 기자촌이 다시 관심을 끈 건 은평뉴타운 때문이다. 서울의 강남·북을 균형 있게 개발한다는 취지로 2002년 뉴타운 사업이 시작되었다. 낙후된 주거지를 개발하여 강남지역의 주택수요를 대체하는 것이 목표였고 서울시 서북권역의 관문도시를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은평뉴타운은 제 1호 뉴타운이 되었다. 본 글에서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호기있는 출발에도 불구하고 진행과정에서, 조성 후에 여러 잡음이 있었고 무엇보다 조성 후 미분양이 문제가 되면서 서울시는 2012년 12월 미분양 아파트에 ‘현장 시장실’을 열고 해법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촌이 타운으로 바뀌면서 옛 풍경은 자취를 감추었고, 은평뉴타운 계획이 발표되던 같은 해에 서울시 버스 노선도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옥수동과 기자촌을 잇던 154번도 사라졌다. 기자촌은 모습도, 이름을 표기할 자리도 잃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박춘매 화가가 그린 진관상회도 사라졌다.

기자촌에 실망했던 나와는 달리 박춘매 화가에게 기자촌은 유년을 보냈던 금호동에서 버스 한번만 타고 가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고마운 동네였다. 154번 종점에서 내려 진관사 계곡을 찾았었고 두 동생은 계곡에서 놀게 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는 두 아들을 데리고 진관사 계곡을 찾았단다. 두 아들은 물놀이를 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화가에게 기자촌은 누나와 엄마로서의 돌봄과 화가로서의 그림 그리기를 동시에 할 수 있었던 동네이기도 했던 것이다. 진관상회는 그런 진관사 계곡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얼마를 더 가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였고. 그런데 어느 날 다시 찾으니 진관상회 자리는 큰 도로로 변해버렸다. 진관상회는 사라졌지만 화가의 그림에서는 여전하다. 진관상회뿐만 아니라 화가는 기자촌의 여러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고 기자촌이 사라진 이후에도 기억을 더듬으며 그림으로나마 기자촌이 생활하도록 하고 있다.


3. 기자촌을 다시 그리는 이들

이렇게 사라진 기자촌을 다시 형상화하고 있는 이들은 박춘매 화가 말고도 또 있었다. 기자촌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던 중 재미난 작업을 발견했다. 은평구 주부들의 ‘진관동 이야기’이다. 각자 기자촌을, 진광동을 그리워하다 어느 순간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그녀들은 으싸으싸 의기투합해 진광동의 옛 모습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작년 말 작은 책자로 이를 정리했다. 그녀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데이트하던 곳, 논밭이었던 곳, 스케이트장이었던 곳을 생생히 기록해냈다.

상전벽해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사라진 동네의 모습을 그리는 이들은 박춘매 화가나 은평구의 그녀들 뿐만은 아니다. 그림으로 글로 남기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현재의 풍경에서 과거를 형상화한다. 나 또한 아파트촌으로 변한 옥수동에서 옛 모습을 찾는다. 여기엔 쌀집이 있었고, 하은주라는 병원이 있었고 도원 서점은 아주 예전에도 있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아주 생생하다. 그런데 어디 건축물만, 길만 다시 그리겠는가? 그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사건들도 줄줄줄 떠올린다. 어느 여름날 하은주 병원에서 주사를 안 맞겠다고 떼쓰다가 팥빙수를 사주겠다는 엄마의 회유에 넘어갔던 일, 처음으로 혼자 그 오래된 서점에서 책을 샀던 일들.

이게 장소의 힘이다. 공간이 아닌 장소의 힘. 철학자 김영민(김영민(2012) 당신들의 기독교 : 70)은 무상(無償)의 주고받기가 거듭되면서 장소가 생성된다고 한다. 맞다. 장소는 특별한 기획이나 디자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 매일 지나는 동네 어귀의 작은 가게, 등교하기 위해 혹은 출근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하던 버스 정류장,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오르던 오르막길. 별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을 주었고 특별한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마을의 상징이 되었던 곳들. 나의, 우리의 장소들이다. 사소한 것들이 사소한 방식으로 슬그머니 힘을 얻어 머리와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존재를 주장한다. 사라진 이후에도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아파트 단지에서 사라진 옛 풍경을 그린다.

 

김연금(조경작업소 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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