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욱 (LH 파주사업본부 건설사업단장)

사무실 창밖 온 누리가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곳 운정호수공원이 파주 10대 명소의 하나라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까닭을 알 만하다. 소리없이 쌓이는 눈을 바라보면서 조경인에게 무슨 말을 걸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조경분야에서 일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여겨 본 한말(한국어), 정책, 통계, 소통, 참여, 공공성 같은 주제를 내 마음에서 꺼내 함께 나누리라 다짐하면서 조경분야에서 쓰는 이름(용어)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한다.

1970년대 초에 도입된 조경분야도 이제 40이 넘은 장년이 됐다. ‘조경’이라는 말이 조경인에게는 쉽게 들리겠지만 소비자인 국민에게는 그렇게 쉬운 말이 아닌 듯하다. 전문분야으로서의 ‘조경’과 일반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는 ‘조경’은 적지 않게 다르다는 게 상식이다. 아마도 전문적인 조경용어를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가다듬는 조경인의 노력이 부족했고 그 결과 국민에게는 낯설고,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몇 가지 실상을 드러내 보자. 조경기준(국토교통부 고시)에서는 ‘조경시설’을 환경조형물·정원석·휴게·여가·수경·관리 등 시설, 생물의 서식처 조성과 관련된 생태적 시설(제3조 제4호, 필자 요약)로 규정하고 있는데, (도시)공원시설 가운데 하나로 ‘화단, 분수, 조각 등 조경시설’(도시공원녹지법 제2호 제4호 나목)이나 (자연)공원시설 가운데 하나로 ‘사방·방재·조경시설 등 공원자원을 보호’(자연공원법 시행령 제2조 제2호) 등 또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법령도 있다.

‘조경’은 경관을 생태적, 기능적, 심미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식생공간을 만들거나 조경시설을 설치(조경기준 제3조, 필자 요약), ‘조경공사업’의 주요 업무는 종합적인 계획·관리·조정에 따라 수목원·공원·녹지·숲의 조성 등 경관 및 환경을 조성·개량하는 공사(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별표1)의 법령처럼 조경은 경관, 환경, 공원 보다는 넓은 의미의 용어로 정의되고 있다. 위의 자연공원법이나 도시공원녹지법에서 보듯이 일부 제도에서 ‘조경시설’의 정의와 ‘조경’의 정의를 좁게 또는 애매하게 규정하고 있어 조경인뿐만 아니라 소비자인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참고로 일반인에게 조경은 인간에 의해 환경을 아름답고 가치있게 기획, 설계, 관리, 보존, 재생하는 것을 일컫는 말(www.wikipedia.org)로 다가간다.

다음으로 도시공원녹지법이나 조경기준, 조경설계기준(국토교통부고시, 한국조경학회 관리) 그리고 조경설계공모작품집 등을 살펴보면 다른 전문분야와 마찬가지로 알기 어려운 한자식 용어나 국적불명의 영어식 용어가 여기저기 넘쳐난다. 수고·흉고직경·교목(조경기준), 수관·지엽목·굴취(공동주택 하자판정기준), 우화기·나지·도섭지·시거·수제·하수형(조경설계기준) 등 일본 제도의 어두운 그림자를 제대로 씻지 못한 용어가 많은데, 이는 성기택 조경사전(기전연구사, 1984)과 윤국병 조경사전(일조각, 1999)처럼 학술서적에서 한자식 용어를 벗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조경설계공모 작품에서 VIEW, WIND, GREEN, LOOP, ECO 등이 혼합된 알길 없는 조어가 일상화되는 현상도 보이고 있는데 일반 국민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용어로 바꾸고 가다듬는 노력이 필요하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가 조경이라는 전문분야를 정립하기 위한 투사로서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소비자인 시민, 국민과 쉽게 소통하려는 친구로서의 시간이어야 하며,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본다.

첫째, 전문분야 조경의 핵심용어인 조경, 환경, 경관, 정원, 공원 등의 학술적 용어를 통일된 의미로 자
리매김시키자. 조경학회, 환경복원기술학회, 경관학회, 정원학회, 공원휴양학회 등 범조경 관련 학회가 힘을 모아 서로가 동의하는 방향으로 핵심용어의 정의를 학술적으로 표준화시키는 게 가장 먼저 할 일이다.

둘째, 조경, 환경 등의 통일된 학술적 정의를 정책적, 제도적 정의로 자리매김시키자. 필요할 경우 기존의 해당 법규를 개정해야 한다. 일반인은 정부의 정책과 법규 등 제도를 매개로 생활하기 때문에 조경의 정체성을 높이고 소비자인 국민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제도화를 바르게 해야 한다.

셋째, 조경 분야에서 많이 쓰고 있는 용어를 학술적으로 가다듬고, 표준화된 학술적 용어를 정책적 용어와 제도적 용어로 자리매김시키자. 현재 시행되고 있는 도시공원녹지법, 건축법(조경기준), 국토계획법이나, 조경설계기준 등의 제도에서 서로 뜻이 다르거나 애매해 혼란을 주고 있는 용어를 찾아 바로잡아야 한다.

넷째, 한자식 용어, 영어식 용어를 일반 시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자. 법률, 기준, 교과서 등에 있는 어려운 용어를 자라나는 한글세대에게 편하게 한말 용어로 다듬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이 각 분야의 전문용어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체계화해 보급(국어기본법)해야 한다. 이미 물·햇빛·빗물이용시설(물재이용촉진법), 빗물모으기(자연재해대책법), 먹는물(수도법), 나무심기·잔디붙이기(주택건설규정), 어린이놀이터(주택법), 나무·흙·돌(국토계획법), 옮겨심기·가지치기(산림자원조성법), 나무·잔디·꽃·울타리·그네·미끄럼틀(도시공원녹지법), 숲가꾸기(산림조합법), 도랑(개발제한구역특별법), 솎아내기(조경관리규정), 바람길(입주자삶의질향상지원법) 등 한말 용어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조경분야에서도 이를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

다섯째, 사회 환경의 변화에 맞춰 학술적 용어를 발굴하고 정책적, 제도적 용어로 만들어 가자. 인공식재기반, 경관조명시설, 빗물침투시설을 제도화시킨 것처럼 요사이 인접 분야와 다투고 있는 도시숲, 정원, 도시농사 등의 용어도 정책 용어, 제도 용어로 제때에 제대로 담아야 한다.

여섯째, 한말 용어 로마자표기로 대한의 조경문화를 세계에 알려 한류(Hallyu)로 자리매김시키자. 외국인과 소통할 때 조경용어를 번역하지 말고 한말 그대로의 소리값으로 표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좋은 용어로 Maeul(마을), Madang(마당), Teo(터), Ddeul(뜰), Bium(비움), Chaeum(채움) 등을 추천한다. 대한의 얼이 배인 우리 조경의 정체성을 그대로 전하려는 노력으로 정체성을 지키면서 외국인을 배려하는 Arirang, Gimchi, Gochujang 등에서 엿볼 수 있다.(한글의 로마자표기법)

조경 또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우리 사회의 관계와 소통 과정이다.
서울시가 공원·녹지 관련부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어려운 조경용어 100개를 선정해 한국조경학회 등 전문가 자문을 거쳐 우리말 용어로 바꾼다(환경과조경 1994년 3월호)는 20여년 전의 기사에서처럼 행정·대학·학회·산업·언론 모두가 머리를 맞대자. 어려운 조경 용어를 쉽게 바꿔 가다듬고 학술적으로 정의한 뒤, 이를 조경정책과 관련 법규를 통해 제도화하고 설계·시공 과정에서 바르게 사용함으로써 소비자인 국민과 이해를 넓혀가야 한다.

한국조경신문, 환경과조경, 라펜트 등 조경 언론의 따스한 지혜와 용기 그리고 실천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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