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군산 근대역사경관 조성사업’에 참여한 박진석 문화예술과장을 비롯한 윤병철 근대문화시설계장, 김석근 건설과 계장, 곽동근 근대역사벨트화구축팀 계장, 박경민·김영중 담당자 등 담당 팀에게 올해로 6년 차를 맞는 사업의 추진과정부터 2014년 중장기 계획까지를 들어봤다.

군산시에서 장미동과 월명동 일대의 근대 역사경관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도시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군산시 장미동, 월명동 일대는 1930년 그대로의 시간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이 열강의 세력균형을 통해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하고자 1899년 5월 1일 문호를 연 군산은 주변 57만2000㎡를 각국 조계지로 지정했는데, 일찍이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쌀을 탐냈던 일본이 각국 조계지에 가옥을 짓고 수탈의 근거지를 만들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내내 토지를 침탈하고 쌀과 농지를 빼앗는 등 나라 잃은 식민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 군산이다. 군산시는 이러한 수탈의 흔적들을 되살려 나라 잃은 민족이 국가와 주권, 민족혼과 사상까지 빼앗긴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교훈적 자원으로 활용하고, 나아가 지역재생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으로 근대역사경관사업, 군산 근대문화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도시재생 및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재개발이 아닌 일부 철거 및 보존방식을 택한 이유는?
우리 시에서는 2005년 완료된 ‘군산 근대역사 문화경관 가꾸기 기본구상’과 2010년 완료된 ‘군산 근대역사문화 벨트화 사업 마스터플랜 수립용역’을 토대로 원도심 일원을 중심으로 군산지역의 독창적인 문화경관을 창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군산대, 전북대 등과 수차례 세미나, 심포지엄 개최와 주민설명회를 통해 군산 원도심권의 잠재적인 가치인 근대역사문화유산의 복원 과정을 거쳐 근대역사경관을 회복해 지역재생을 도모하고, 지역민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도시기반시설의 확충을 포함해 지역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공동화된 원도심의 근린기능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원도심 지역재생 및 활성화, 근대역사경관 회복을 통한 지역 정체성 구축, 근대역사문화유산의 보존을 통한 시대적 가치 구축을 이루고자 했다.

주민들 의견은 어떠했나?
근대역사경관을 살리면서 원도심을 재생하기 위한 개발은 주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어 추진하게 된 사업이다. 대부분 도시개발이 신도심을 거점으로 이루어지면서 원도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대적 불평등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2009년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면서 대다수 주민들이 원도심 재생에 지역이 가진 근대문화자산을 최대한 활용하자고 했다. 따라서 근대역사문화자원을 매입해 개발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며, 이는 근대 역사경관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됐다.

‘주민주도’ 사례는 어떤 것이 있었나?
근대역사경관사업은 1단계로 낡고 허물어진 근대문화자산을 물리적으로 재생하여 근대역사경관을 살리고 2단계로 각종 콘텐츠를 담는 계획으로 추진됐다. 1단계 사업부터 주민주도형 개발방식으로 추진하고자 했으나 주민 주도가 쉽지 않아 주민참여형으로 전환하고, 회의를 통해 주민대표 2명을 선정해 참여시켜 주민 의견이 반영된 사업으로 진행했다.

추진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근대건축물 대부분이 일본식 건축물이라는 사고가 각인되어 있어 일부 일제 잔재를 보수·복원하는 것에 강한 반감이 많았다.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많았으나, 무조건적인 철거로 역사적 증거인 일본식 건축물들이 없어지면 이후 세대들에게는 잊힐 수 있는 역사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남겨서 이후 세대들의 살아있는 교육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설득하면서 추진했다. 특히 3.1절, 광복절, 일본의 신사참배, 독도영유권 주장 등 사회이슈 발생 때 평소보다 많은 민원이 있었다. 또한 근대역사경관조성은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근대문화자원을 활용하는 사업으로 대다수 시설물이 노후화되고, 헐려 재생에 어려움이 많았다. 안전도 검사결과 대다수가 E급으로 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시설물을 보수하여 활용하기에는 한계도 있었다. 이에 따라 전북대 및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들의 자문과 지도를 받아 기본 틀 및 구조, 자재의 재활용 등을 통해 원형에 가깝게 보수 및 복원하는 과정을 거쳤다.

근대 역사경관 조성 이후 전과 비교해서 어떤 성과가 있나?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근대문화도시조성은 2014년 6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2013년 6월 근대역사벨트화권역이 완료된 후 군산항(내항) 주변 원도심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먼저 월 5만여 명의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다. 근대역사벨트화권역(근대역사박물관,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근대미술관(구.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과 근대역사경관권역(근대역사체험공간,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가옥, 동국사, 초원사진관 등)은 군산을 찾는 방문객들의 필수 탐방코스가 되고 있으며, 특히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은 올해 관람객이 20만 명을 넘어서면서 개관 2년 만에 누적관람객 48만 명을 기록해 명실상부한 지역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전체 방문객의 72%가 다른 지역에서 방문하고 있어 이를 통해 군산의 근대역사문화자원이 관광, 문화적 매력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방문객의 증가로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100년 전통의 빵집 ‘이성당’과 60년 전통의 중국집 ‘빈해원’은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 시행 전보다 50% 이상 매출액이 신장됐으며, 지역의 소매점과 일반 상가도 평균 매출액이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전국에서 찾아오는 근대역사문화와 교육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근대역사문화에 대한 학습거리, 체험거리가 생겨나고 주변의 영화촬영지, 맛집 등이 풍부해 학생과 방문객이 전국에서 찾아오는 명소로 바뀌고 있으며,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는 생동감 넘치는 거리로 변신 중이다.

관광상품 등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올해 처음 선보인 ‘2013 군산시간여행축제’는 우리 시 근대문화유산을 기반으로 근대역사박물관 일원에서 지난해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성황리에 개최됐다. ‘근대와 현대, 그리고 미래가 소통하는 한마당’이란 주제로 개최된 이 축제는 그동안 정비된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해 평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볼거리·체험 거리·즐길 거리·먹을거리를 갖췄는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주민들의 호응이 매우 높았다. 근대문화도시 군산이 가지고 있는 자산과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해 경쟁력과 독창성 있는 군산의 대표축제로 발전시키는 초석을 다졌고, 1930~40년대의 스토리를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개발해 화합의 장을 마련함과 동시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수탈에 대한 고통을 되새겨보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승화시켰다. 축제에 참가한 관람객들은 “단순히 볼거리 차원을 넘어 교육적 가치를 담은 국내 유일의 축제로 나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독립군과 일본순사와의 숨 막히는 대결을 설정한 체험 프로그램 ‘쫓고 쫓기는 각시탈’을 비롯해 ‘근대 보물찾기’는 회당 100명으로 참가인원으로 제한했으나, 200명이 넘는 참가자가 몰려 선착순으로 제한하는 해프닝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몰이했다.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은 무엇인가?
군산시가 추진하는 근대문화도시 조성은 2014년까지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된다. 1단계로 추진되는 사업은 근대문화재 매입정비, 근대역사박물관 건립, 근대산업유산창장벨트, 근대역사경관 등 점적 재생에 집중해왔으며, 근대문화유산의 일부 활용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근대역사문화 거점복원’에서 시작된 점적 재생을 ‘선적 연계와 면적 공유’로 확대해 나가기 위해 2014년에는 중장기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도심에 대한 본연의 본질(살고, 일하고, 쉬고, 배우는 공간) 회복에 주력해 근대역사문화가 지역민의 삶과 함께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역사 건조물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지자체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는가?
근대역사를 매개체로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개발을 통한 도심재생을 고민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개발에 앞서 활용방안과 운영방안이 충분하게 검토되지 않으면 개발 이후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따라서 활용과 운영방안을 충분히 검토한 후 사업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역사적 사건의 증거물인 건축물, 시설물 등이 있다면 반드시 보수·복원을 통해서 남겨두어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직접 보고 느끼는 것에서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며, 특히 현시점에서의 보수·복원도 세월이 흘러 후세에게는 그 자체도 역사적 산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 밖에 전하고 싶은 말씀은?
지금 우리 민족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흔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도시가 발달하고 변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 도시가 가진 역사적 흔적들이 사라진다면 미래의 역사에서 영원히 찾아볼 수 없는 자료가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치욕스러운 역사를 숨기고 잊으려 하고 있는 작금에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사실만으로 생각하지 말고 미래 후손들이 지난날의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한 반성의 장소로, 역사 교훈의 장소로 다듬어 가야 할 것이다. 군산시는 근대문화유산을 최다 보유한 도시이면서 역사적으로 1919년 호남지역 최초로 3.1만세운동을 일으켰으며, 토지와 쌀의 수탈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제에 항거한 옥구농민항일항쟁 등 크고 작은 항일의 역사가 공존한다. 끝으로 군산시가 근대역사문화를 통해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의 탐방코스로 자리 잡아 근대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올곧게 이해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 야외 주민설명회 모습 (사진제공 : 군산시청)

▲ 주민들을 대상으로 근대역사경관 조성사업 설명회를 진행했다.

▲ 근대역사경관 조성 진행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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