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A대학 조경학과는 올해 졸업예정자가 10여 명이 있지만, 조경기사를 취득한 학생은 현재 한 명도 없다고 한다. 현장실습이 졸업요건에 포함돼 있어서 조경기사 자격증을 취득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자격증보다 현장실습을 더 선호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수도권에 있는 B대학 조경학과는 올해 졸업예정자 20여 명 중에 조경기사를 몇 명이 취득했는지 파악하지 않고 있다. B대학은 예전부터 ‘졸업예정자는 자신이 알아서 준비하는 것’이란 전통이 있기에 학생 자율에 맡기기 때문이다.

경상도에 있는 C대학 조경학과의 올해 졸업예정자 40여 명 중에 지난해 조경기사를 취득한 학생은 단 2명뿐이라고 한다. 많은 학생이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지만, 졸업을 위해 부족했던 학점을 다시 듣고, 학기 중에 졸업작품도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전라도에 있는 D대학 조경학과의 올해 졸업예정자는 단 2명이다. 졸업자격이 되는 20여 명의 학생이 조경기사 자격증 취득과 부족한 공부를 하기 위해 휴학을 신청한 것이 그 이유이다.


대다수 조경업체에서 조경기사 자격증은 취업의 기본이라 생각하지만, 학생들은 부담스럽다. 때문에 휴학 혹은 졸업 이후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4학년 때는 조경기사 자격증 취득보다 다른 스펙을 쌓는 것이 요즘 추세이며, 조경기사 자격증 취득을 등한시하는 경우도 있다. 아울러 일부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학생들의 조경기사 자격증 취득을 자율에 맡기며,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올해 전국 4년제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조경기사를 취득하고 졸업하는 비율은 10%대로 조사돼, 학생들이 조경기사를 취득하지 못하고 졸업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매년 조경전공 졸업예정자의 조경기사 취득률은 낮아지고, 오히려 조경 비전공자가 조경기사를 취득하는 비율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을 앞둔 조경학과 학생들이 조경기사를 취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경기사 취득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과 관심이 있지만 취득을 못 하는 학생으로 나뉠 수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 처한 학생들은 ‘시험이 어렵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른 내용이 나온다’, ‘공부가 부족했다’ 등을 이유로 말했다.

▲ 조경·건축·토목기사 필기 합격률
우선 조경기사 시험의 난이도는 조경기사 필기시험 합격률을 근거로 파악할 수 있다. 조경기사 필기시험 합격률은 2000년대 이후 등락은 있지만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 2001년 25%에 육박하던 조경기사 필기 합격률은 2010년 15%, 2011년 13%, 2012년 10%로 매년 하락하고 있다. 또한 2009년에는 역대 최저인 8%를 기록하기도 했다. 필기 합격자 수는 2010년 1524명, 2011년 1278명, 2012년 855명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건축기사, 토목기사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건축기사 필기 합격률은 2009년 24%, 2010년 21%, 2011년 23%, 2012년 23% 등으로 매년 20% 이상의 합격률을 나타냈다. 또한 토목기사 필기 합격률 역시 2009년 28%, 2010년 23%, 2011년 22%, 2012년 19% 등으로 2012년을 제외한 최근 10여 년 동안 20% 중반대의 합격률을 보였다.

조경기사가 건축·토목기사와 비교해 필기 합격률이 크게 낮은 이유는 과목수와 범위의 차이에 있다. 조경사·조경계획·조경설계·조경식재·조경시공구조학·조경관리론 등 6개 과목으로 구성된 조경기사 자격증은 건축계획·건축시공·건축구조·건축설비·건축관계법규 등 5개 과목의 건축기사 자격증보다 과목수가 많다.

또한 토목기사는 응용역학·측량학·수리학 및 수문학·철근콘크리트 및 강구조·토질 및 기초·상하수도공학 등 6개 과목으로 조경기사와 과목수는 동일하지만 역사, 계획에서 관리까지 이르는 조경기사 시험의 방대한 내용에 비해 그 범위 자체가 좁다.

아울러 새로운 시공방식이나 관리방법을 적용해, 매년 시험문제에 변화를 주는 조경시공구조학, 조경관리론이나 수백 개의 학명을 외워야 하는 조경식재 과목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조경전공자가 유리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이 식재와 관리다. 출제위원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고, 허울뿐인 자격증이 돼서는 안 되기에 문제의 난이도를 낮추는 것은 힘들다”고 못 박았다.

또 “하지만 응시자들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시험과목을 통폐합해서 현재 6개 과목을 5개로 줄이는 방향에 대해서 이전부터 논의했지만, 반대가 많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조경기사 취득률이 떨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수 십 년째 변하지 않는 교육 방식 때문이다.

특히 한 학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졸업작품’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대부분 대학이 졸업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졸업작품’을 택하고 있으며, 4학년 1학기를 고스란히 ‘졸업작품’에 투자해야 하는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조경기사 시험을 준비할 시간은 4학년이 시작되기 전 겨울방학과 4학년 2학기뿐이다.

하지만 1·2·4회로 이어지는 조경기사 시험 일정상 상반기에 치러지는 1·2회 시험에서 필기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졸업까지 기사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결과 학생들은 1·2회 시험에서 필기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휴학을 선택하는 것이 트랜드가 됐다.

C대학 조경학과 4학년 학생은 “시공분야에 취업하기 위해 조경 시공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지만, 설계 위주인 졸업작품에 매우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 선택의 자유가 없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또한 필기시험의 경우는 대부분 학생이 학교 공부 이후에도 학원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D대학 조경학과 4학년 학생은 “대학을 다니면서도 토익학원, 컴퓨터학원, 조경기사학원을 다니고 있다. 고등학교 때 생활과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고 토로하며 “특히 조경기사 실기의 경우엔 학교 수업과 혼자 공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주변 친구들 역시 몇 달간 학원에 다니는 것을 필수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5년 단위로 출시기준이 변경되고 최근 들어서는 조경 이슈를 반영하는 등 시험이 변화하는 데 비해, 수 십 년째 똑같이 이어져 오고 있는 대학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일부 대학에서 학생들의 자격증 취득 현황 파악이나 자격증 취득을 위한 특강을 개설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학생’의 선택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건설경기 악화로 조경업계에 일자리가 줄어들어 일찌감치 조경 이외의 업종을 준비하는 학생이 늘어 조경기사 취득을 목표로 하는 조경학과 학생의 숫자가 줄고 있다.

또한 조경기사 자격증을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취업을 위한 스펙에 집중하고, 이른바 ‘대학생활’에 집중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하는 점도 문제다.

모 대학교수는 “지금 가르치는 학생 중에 조경기사 시험에 응시하겠다는 학생이 채 반도 안되는 실정”이라며 “학생들 자격증 취득을 위해 방학 때 특강을 개설해도 학생 수가 미달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밝혔다.

이어서 “과거 학생들이 전공서적을 보고 공책에 요약하며 공부했다면, 지금 학생들은 문제집 한두 권을 풀며 마치 운전면허 시험 보듯이 쉽게 공부한다”고 학생들의 행태를 지적했다.

또한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도 “조경기사 시험에서 가장 높은 과락률을 보이는 과목이 조경식재와 조경시공구조학이다. 하지만 100여 개의 수목학명과 필수적인 공식 몇 가지를 정확히 숙지하고 있다면 과락은 말도 안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경기사 자격증이 ‘필수’라고 생각하며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는 대학도 있다.

전남대 조경학과는 올해 졸업예정자 22명 가운데 19명이 조경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남대는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졸업작품과 학점이수 등이 졸업요건으로 정해져 있으며, 이와 더불어 컴퓨터 자격증 등도 졸업요건에 포함된다.

조경기사 취득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전남대 조경학과 관계자는 “학교 차원에서 학생을 관리하고 방학 때 시험 과목을 개설하는 것도 조경기사 취득률이 높은 이유지만, 학생들이 조경기사 취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몇 년 전부터 형성돼 있다”며 “특별한 비결보다는 학생들이 공무원 등을 목표로 자율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이유”라고 밝혔다.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이전부터 조경기사 취득에 관해서 여러 가지 요구사항이 많다.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여서, 보다 실무적인 내용을 많이 담은 새로운 방식의 시험을 2~3년 안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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