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원에 대한 관심이 각별해졌다.

‘인생의 마지막 호사가 정원’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원을 소유하거나 가꾸는 것이 인생살이의 로망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원을 가꾸고 사랑하는 것을 영국이나 유럽의 전유물로 생각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우리나라도 정원 관련 협회가 생겨야 한다는 당위성까지 생겼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원문화를 만끽하고 지내왔던 사실을 상기해 보자. 마당에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심어 놓고 애인이 되고 친구가 되고 임금이 되고 신앙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우주를 빗대어 삼라만상의 섭리를 논하기도 했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대상으로 그림도 그리고 시를 읊고 음악도 향유했다. 나무나 풀의 고유한 장점을 상징으로 절개와 충절 그리고 사랑을 새겨보는 고품격 정원문화를 유지해 왔다.

그러던 정원문화가 갑자기 사라졌었다. 일제 강점기 때 문화말살정책이 큰 몫을 했고 해방 이후 급격한 사회적 혼란과 전쟁 그리고 압축성장의 과정을 겪으면서 문화의 의미는 사치처럼 여겨지고 각박하고 고단한 삶의 반복 속에서 묻혀진 것이다.

그렇게 소외되던 문화가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꿈틀대고 부활이 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견인차로서 역할을 기대하는 대상이 됐고 이번 정부에서는 국가정책의 중요한 목표로 문화융성이 등장하기도 했다. 문화가 국가의 품격을 나타내고 국민의 자긍심과 정서를 높여 주고 나아가 문화 수출이라는 효자 품목이 되고 세계인을 하나로 묶어 주는 유·무형의 커다란 가치로 평가를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기에 정원문화를 지향하는 단체가 생겨나고 있다. 국민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정원문화에 대한 의식을 깨울 수 있는 의미있는 행동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국민 각자가 생각해오던 정원문화의 편린들이 모아져서 여러가지 생각과 사상으로 표현된다면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이다.

지난 16일 조경인들이 중심이 돼 창립총회를 가진 한국정원문화협회가 지향하는 큰 목표는 ‘국민행복’에 두고 있다. 그동안 조경산업이 태동되고 공공조경의 발전과 함께 조경계는 해마다 급격한 발전을 하면서 그것으로 녹색문화와 녹색복지가 함께 존재한다는 안일하고 피상적인 생각으로 치부해 온 것 같다. 조경의 기본 업무로 여겨졌던 공공집행부문이 공원녹지분야에 편중되고 시장형성과 물량공급이 확대돼서 정원이라는 부문을 조경의 한 영역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원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많은 관심을 못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정원이 여러 분야에서 관심을 받으면서 갑자기 영역 다툼처럼 등장을 한 것도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정원 분야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섭렵을 할 수 있듯이 정부 정책적인 차원에서도 다양하게 업무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미 미약하나마 시행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정원이 정원산업의 증대와 산림청을 비롯한 국가기관에서 중요한 업무로 평가를 하고 법과 제도를 갖추고 그에 따른 산업 향방에 따른 결과가 조경업계의 생사를 논할 만큼 큰 이슈로 부각됐다.

그만큼 정원산업과 문화가 우리 사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반증이 돼서 좋기는 하지만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져서 국민들이 실망하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정원문화가 정부의 한 부처에서만 소화될 성격이 아니고 각 부문에서 협업(Collaboration)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정원문화협회가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되어 활동을 하더라도 산림청과 농림수산식품부·농촌진흥청 등 유관 부처와 협업해서 정원문화와 산업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생각과 행동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여지껏 조경, 산림, 종합건설, 전문건설업, 설계, 시공, 관리 등의 분야에서 지루한 다툼을 자주 보아왔다. 좀 더 큰 차원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정원을 향유하는 주체는 정원문화협회도 아니고 산림청도 아닌 국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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