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가 주는 사회적 의미는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없이 내놓는 사전적의미보다 훨씬 커다랗고 아름답다.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이 있는 이웃들과 뜻하지 않은 재난을 당해서 슬픔에 잠긴 사람들과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장병들의 유족을 위한 기부는 가슴을 따듯하게 한다. 최근에는 필리핀의 태풍피해 복구를 위한 기부 모금활동은 반갑고 감사하기까지 하다. 우리의 6.25 동란 참전국에 조금이나마 보은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서 좋다. 어려울 때 도와준 이웃이 진정한 이웃인데 많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호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기부와 조금 색다르고 통 큰 기부에 흐믓한 경우가 있다. 최근에 부산 영도대교가 새로이 복구돼서 기부가 되었고 울산대공원, 인천 중앙공원, 대전 유림공원 등의 건설 기부는 기부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앞으로 기업 기부형태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앞으로도 공원기부가 더 많이 생겨서 녹색복지의 견인차가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기부의 형태가 많아지고 다양해지는 것은 건강한 우리 사회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조경계에서도 기부 형태가 다양해졌다.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해서 온 국민이 기름띠를 걷어내기 위한 자원봉사를 할 때 조경인들도 함께 나서서 봉사를 한 것을 필두로 일제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한 할머니들의 숙소인 ‘나눔의 집’에 조경공사를 해주고, 보육원 놀이시설을 위한 조경설계와 공사로 이어지고 또한 여성 조경인들이 라오스의 빈민촌에 놀이시설을 설치해주고 1년 후에는 A/S 까지 해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외에도 조경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가적 재능기부를 통해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에 대한 사명감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실천은 전문가집단으로서 의무이자 권리다.

그런데 최근 재능기부에 대한 불평이 나오고 있다.

재능기부가 자발적인 발로가 아니라 의도된 상태에서 나온다면 진정한 재능기부가 될 수가 없다. 한 예로 서울시에서 추진한 골목길 사업을 보면 일반적으로 건설업에 발주되는 사업의 형태가 아니고 조경가와 시민이 재능기부로 참여하고 서울시에서 일정한 예산을 지원해서 사업이 완성됐다. 녹색복지의 혜택을 받기 힘든 골목길에 조경시설을 설치 해주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많아져서 전문가들이 경제활동을 통해서 조성해야 하는 일들이 예산절감과 시민참여라는 미명하에 재능기부와 예산지원으로 대체되었다. 내년에 공원녹지 예산이 많이 삭감된 상황인데 계속 이런 형태의 사업이 반복될까봐 염려스럽다. 이런 상황을 조경업계에서는 생존권을 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다.

재능기부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 어느 조경가의 하소연이 들린다. “처음에 좋은 의미로 내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는 것이 자랑스러웠는데 이제는 그것이 내 발등을 찍는다. 차라리 재능기부 반환청구소송이라도 내고 싶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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