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호(동국대 교수/(사)한국고도육성포럼 회장)
중국의 도시를 다시 찾을 때마다 몰라보게 달라진 도시 모습과 발전 속도를 보면 놀라게 된다. 한편으로 그 와중에도 도시의 역사 흔적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항주에 가면 서호변에 무너진 뇌봉탑이 있다. 그 유적 위로 철골에 엘리베이터 까지 갖춘 새로운 탑을 만들었다. 복원이 어려우면 현대적 기술이라도 이용해 새로운 유적을 만든다. 무너진 탑의 잔해를 보고 탑의 꼭대기에 만든 전망대에 서면 서호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묘하게 과거와 현재를 접목시켰다. 유적도 보존하면서 장소의 가치는 항주시민이 활용한다. 고도의 보존과 개발은 서로 이율배반적이기도 하지만 머리를 잘 쓴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경주의 유적공원 조성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한 대명궁 유적공원은 역사유적을 중화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당나라가 8.4㎢에 달하는 광대한 면적에 건설한 궁전의 옛 모습을 찾기 위해 수 만 명의 주민을 이주 시키고 궁전의 건물과 담장 그리고 당시의 도로와 원림 유적을 발굴하고 그 위에 당시의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으면 복원하고 찾기 힘들면 형태를 유추 할 수 있도록 형상을 만들어 전시한다. 한 켠에는 고고발굴 체험관을 만들어 학생들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고 3D 상영관을 만들어 과거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근 30년을 연구하고 복원하려고 노력한 현장을 한 나절 걸려 돌아봤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이 역사문화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준다.

우리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여 도시 내 역사유적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법은 유적 자체만을 보호하는데 그쳐 도시개발에 매우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심지어 주택의 증개축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등 사유재산권 침해도 심각해 주민들에게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여겨져 왔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최근에 고도보존육성법을 제정하여 경주, 공주, 부여, 익산 등을 고도로 지정했으며, 우선적으로 시범사업계획도 수립했다. 문화재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불만을 해결하는 한편, 문화유산 주변의 무분별한 막개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몇 십년간 문화재 주변에서 신음하며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구세주를 만난 것이다. 여기에 새 정부는 문화융성을 통해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 하여 고도지역 주민들은 더욱 희망에 부풀어 있다.

고도보존육성법을 보면 고도의 역사적 진정성은 보존하되 생활환경 개선을 통해 도시를 살리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 고도는 이미 역사경관이 많이 훼손되었으므로 과거 도시 모습을 고집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도의 역사문화 유산을 활용하여 새로운 도시 활력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세계 각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가의 정체성 확립과 미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도를 대표적인 관광산업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에서야 고도를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선정했으나 아직까지 주변 경쟁 국가 중 가장 후발 국가다. 다행인 것은 과거 단위 문화재 중심인 점적보호에서 벗어나 고도의 역사문화를 재현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법이 정한 예산 배정에도 매우 인색하다. 금년 사업비는 그전부터 해왔던 문화재 보수정비 사업비에서 과목만 바꿔 일부를 편성했다. 윗주머니에서 빼내어 아랫주머니에 채워 넣은 꼴이다. 심지어 법에 있는 주민지원 사업비는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고도지역 주민들의 기대는 무너지고 좌절과 분노로 변하고 있다. 고도육성 사업은 문화재 보수정비사업과는 성격이 다르므로 예산 편성시 별도세부사업으로 예산과목을 분리해야 주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선진국의 잣대가 경제 수준에 맞춰져 있어 경제지상주의 정책을 펴왔다. 문화정책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런 가운데 역사문화계에서는 문화선진국이 되려면 문화재 예산이 정부예산의 1%는 확보해야 한다고 줄곧 요청했다. 하지만 지난 정부 5년간 문화재청 예산은 정부 예산의 0.17%, 4대강에 투입된 사업비의 10%에 불과하다. 이것을 보면 그 동안 과거 정부가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를 아우르는 고속도로와 철도, 항만, 공항 등 주요 기간시설은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걸 맞는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아무리 건설사업을 잘 했다 해도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지 않으면 천박해 보인다. 고도의 역사문화 환경을 회복하고 잘 관리하여야 문화국토를 만들 수 있다. 문화융성은 도시내 삶의 현장에서 체감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문화국토는 도시의 역사문화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국토 조성이 문화융성의 핵심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고도에 살면서 각종 규제에 시달린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게 진정한 복지다.

문화융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하여야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기관장 한 사람의 힘이나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사고와 책임을 가진 시민이 참여하여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고도주민들에게도 국민행복시대에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는 문화선진국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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