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호(동국대 교수/(사)한국고도육성포럼 회장)
신라 탈해왕 9년 왕은 밤에 금성(金城) 서쪽 울창한 숲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신하를 보내 이를 살펴보게 하였다. 사자가 숲 속을 유심히 보니, 금빛으로 된 조그만 궤짝 하나가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왕은 그 궤짝을 가져오게 하여 열어보니 그 속에는 얼굴이 총명하게 생긴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아주 총명하고 지력이 뛰어 났다. 아이의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 속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金)씨라 하였다. 숲의 이름을 시림(始林)에서 계림(鷄林)으로 바꾸고, 상서로운 기운 감도는 숲이므로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렇듯 사적 제19호로 지정된 계림은 면적이 약 7300㎡ 정도에 불과하나 경주 첨성대 남측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천연 숲이다. 처음 시림이라 하던 곳을 김알지(金閼智) 탄생이 있은 뒤로 계림이라 부르고, 마침내 나라 이름까지로 부르게 하였던 것을 보면 신라는 이 숲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가를 알 수 있다.

계림 숲은 느티나무, 회화나무, 왕버들나무, 물푸레나무 등의 고목이 무성하다. 근원 둘레가 2m에서 3m 넘는 것이 대부분이며 6m가 넘는 것도 여러 그루 있다. 경주에 처음 내려와 계림을 찾았던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숲에 들어서면 신라의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곤 했다. 그러던 곳이 최근에는 눈에 띄게 엉성해 졌다. 고목이 사라진 것이다. 수백년을 버텨온 고목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태풍만 불면 넘어져 톱질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국가 중요 사적인 계림은 그 안에 나무들 있기 때문에 사적으로 지정된 것이다. 계림 숲의 나무들은 살아 있는 문화재다. 탈해왕 9년은 서기 65년에 해당되므로 계림은 적어도 2000년 이상을 지켜온 신라의 산 역사 현장이다. 그럼에도 현재 숲 관리를 보면 역사적 가치를 무색하게 할 정도다.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리 방법에 심각한 문제가 보인다. 고목의 부식을 차단하고 수세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가 오히려 나무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이른바 수목 부식을 막기 위해 처치하는 외과 수술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계림 내 고목들은 대부분 충해 피해와 함께 심재층이 부식되어 내부 동공이 발생한다. 수목의 껍데기도 부식되어 갈라지고 구멍이 난다. 보기에도 안 좋다. 그래서 부식을 막고 보기 좋게 하기 위해 외과 수술을 한다. 이때 사용하는 주요 자재가 우레탄 폼(urethan foam)이다. 우레탄 폼은 액체 상태의 폴리올(polyol)과 이소시아네이트(isocyanate)라는 두 화학물질을 섞은 후 발포제를 넣어서 만드는 화학물질로서 불에 잘 타는 가연성을 지녔고, 불이 붙으면 일산화탄소(CO)ㆍ시안화수소(HCN) 같은 각종 유독가스를 내뿜는 특징이 있다. 많은 양이 인체에 유입될 경우 생명까지 위협하는 치명적인 피해를 끼친다. 주로 열을 차단하는 단열재나 소리를 흡수시키는 방음재 등으로 쓰인다. 이 우레탄 폼은 현장 제조가 용이하고 시공이 간편하며 성형성이 좋아 노목의 동공에 충진하기에 좋은 재료다. 동공 충진 후 외부 껍데기를 입히고 착색을 하면 미관도 좋다. 그래서 그동안 노목의 외과수술에 우레탄 폼이 많이 사용됐다.

그러나 노목을 살리고자 주입한 우레탄 충진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노목의 부식 방지를 위해 충진한 우레탄을 제거해 보면 우레탄이 오히려 목질부의 부식을 촉진 시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충진한 부위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부식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목질과 성질이 전혀 다른 화학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목질에 부합하지 못하고 충진 부위에 균열이 발생하여 내부로 스며든 물이 병충해 발생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심재층의 부식을 촉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 되었던가? 노목의 외과 수술의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시공 후 하자 기간 내에는 판단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수목의 부식은 내부에서 진행 되므로 외부에서 육안으로는 관찰이 불가능 하다. 노목이 죽기 직전이거나 강풍에 자빠져 속살을 들어내 보이기 전에는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계림의 노목도 우리들이 무관심한 사이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경주 김씨의 성지가 황폐화 되고 신라의 상서로운 기운이 사라지고 있다. 계림의 숲을 거닐면서 우리의 문화재 관리가 얼마나 단편적이고 경직되어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나무는 저마다의 수명이 있다. 천수를 다한 나무는 사라지고 후계목이 대를 잊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천이과정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적 내의 나무는 산이나 녹지대에 심겨진 나무와는 다르다. 나무가 존재하는 장소성과 그 나무에 담겨 있는 스토리는 살아있는 역사적 현장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문화재인 것이다. 문화재 관리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사적지 내 수목관리를 위한 예산 편성은 인색하다 한다.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늘 내일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또 관리를 한다 해서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그래서 사업 시행에 있어 항상 뒷전으로 밀린다. 그렇다고 행정 탓 만 하면 책임 회피 밖에 안 된다.

우리는 그동안 노목의 보호 관리를 위해 학술 연구도 소홀히 해왔다. 항상 업계에서 재료를 개발하고 현장 적용을 하면 사례 검증 정도에 그쳐왔다. 현장 실험과 검증을 거친 자재와 공법 개발이 전무하다시피 한 현실은 학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사업의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연구비 마련이 힘든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현실만 탓하고 있으면 수백년 풍상을 견뎌온 소중한 문화재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갈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노목에 혼이 있다하여 제를 지내고 소중히 모셔왔다. 문화재청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국 사적 내에 식재된 노목의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어간 노목의 혼을 달래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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