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공사와 한국가스공사 CEO가 퇴임하고 후임이 아직 인선되지 않자 경영 공백 상태라고 말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대부분의 공기업 사장이 교체가 유력해지면서 일상적인 사안을 제외한 의사결정은 미뤄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교체가 예상되는데 누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겠느냐” “사장이 굵직한 현안에 대해서는 모두 손을 놓고 있어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부분의 공기업 사장이 6개월째 ‘식물CEO’ 상태에 빠져 있다고 비유를 하는데 문제에 대한 지적은 공감하지만 식물을 경영 공백 상태와 동격으로 보는 것은 식물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서 옳지가 않다고 본다.

식물이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뿐 엄청난 일을 하고 있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이 식물에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을 잘 알면서도 때로는 무생물처럼 취급을 하고 있으니 지독한 적반하장이다.

‘수잔네 파울젠‘은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식물과 인간이 공유하는 관계의 의미와 가치를 이야기한다. 식물이 광합성을 통하여 우리처럼 숨 쉬고 있고 성장하는 소중한 생명체이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 번식을 하고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로운 곤충들과는 공생관계를 한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진화를 거듭하며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식물은 지구의 오래된 주인이며 인류에게는 최고의 공생파트너인 셈이다.

식물은 생명을 경시하고 후손을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고 함께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구호에만 그치며 진화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니얼 샤모비츠’는 그의 저서 ‘식물은 알고 있다’에서 식물은 인간같이 특정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며 동식물이 유전적으로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식물은 자기 주변을 정확히 인식해서 적색광, 청색광, 초적광, 자외선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 반응한다. 식물은 무언가가 자신을 만질 때 그것을 알고 다른 촉각들과 구분을 한다. 식물은 중력을 인식하고 싹이 위로 자라고 뿌리가 아래로 자라도록 모양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식물은 자신의 과거를 인식한다. 과거에 감염되었던 일이나 경험했던 기후 상태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리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식물은 이 순간에도 주위 환경을 재빨리 인식하여 적응하면서 특유의 감각을 예민하고 정교하게 발달시키고 있다. 식물은 인간에게 단순한 식량제공의 원천만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까지 바꾸는 역할을 했다. 인간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능력까지 보유한 식물을 우리는 못난 행동이나 생각에 비유하여 격하시키고 있다.

우리와 함께 공존해서 살아가야 할 소중한 생명체인 식물을 식물인간, 식물국회, 식물정부, 식물CEO 식으로 표현하는 인간이 오히려 문제가 많다. “만약 나무가 없다면 이 세상에는 종말이 올 것이다”는 남미 원주민 라카돈 인디언의 말을 새겨보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식물을 함부로 비유해서는 안 될 것 같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키워드
#조경 #김부식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