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원림박람회 전경

“나는 지금 순천을 뒤로 하고 베이징으로 간다...”

2013년 5월 31일 금요일 오전 9시 25분. 베이징으로 향하는 거대한 새 한 마리가 김포의 하늘을 굉음과 함께 날아오르는 순간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첫 번째 상념은 바로 이 한 마디였다.
‘제9회 중국(베이징) 국제원림박람회’. 동양조경문화의 중심축임을 자부하는 한·중 두 나라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쪽은 바다와 갯벌이 전 재산인 남쪽의 조그만 도시에서, 다른 한쪽은 머지않아 지구의 심장으로 등극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키우고 있는 거대도시의 한복판(정확히는 서남부 외곽이 맞겠지만...)에서 정원(원림)박람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우연일까 의도된 마남일까? 주제넘게 잠시 고민하기도 하였지만 소리꾼이 옆 동네 큰 잔치를 마다하는 것은 불경죄가 될 터, 슬그머니 발걸음을 들여놓았다. 베이징시 펑타이구 융딩허 녹색생태발전지구 일대 2,670,000㎡의 면적에 펼쳐진 잔치마당 속으로...

1997년 시작된 원림박람회는 2년 마다 도시를 바꿔가며 개최하여 올해 베이징에서 아홉 번째를 맞이하는 중국 원림화훼분야 최고 최대의 행사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번 박람회는 “원림도시, 아름다운 가정”이란 주제로 일축(一軸), 이점(二点), 삼대(三帶), 오원(五園)의 공간구조 속에 펼쳐놓았다. 우선 조경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상식과 상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중국의 장대한 스케일을 새삼 다시 이야기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엄청나게 큰 공간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한나절 만에 전통전시원을 비롯한 현대전시원, 국제전시원, 설계와 기업전시원 및 습지공원에 이르는 주요 테마전시원을 둘러본다는 것은 열정과 체력을 뛰어넘는 초인적인 무엇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암튼 각 공간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 다리품 팔며 떠올린 몇 가지 느낌만을 적어보기로 한다. 직접 관람하고 경험하실 분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듯하므로...

첫 번째 느낌은 규모의 거대함을 넘어 디자인의 대담함을 볼 수 있었다. 세련미를 갖추어가는 대담하고 거침없는 디자인을. 메인 게이트 겸 상징 모뉴먼트 앞에 서니 티라노사우르스의 이미지가 겹쳐져서 떠오르는 듯했다. 비대하고 둔탁한 공룡의 이미지를 떠올리신 분들은 바로 생각을 말끔히 지우시길. 대지를 박차고 비상하려는 날렵함까지 갖춘 거대 공룡이 우리 앞에 서있는 것이다. 이렇듯 박람회 곳곳에서 ‘금수곡(錦繡谷)’을 조망하는 건축물 옥상부의 데크와 화단 등 구현(시공)에 대한 주저함 없이 구상된 디자인을 보며 시공이 어려울까봐 스스로 생각을 내려놓아야 했던 지난(실은 지금도 우리에겐 진행중인) 작업들에게 사과하고 싶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생각대로 만들어지는 디자인. 디자인대로 완성되는 공간. 그들은 이루어가고 있었다.

베이징박람회는 단순히 박람회만을 위한 박람회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사실 개막은 하였지만 박람회장 곳곳에선 아직도 무언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녹색생태발전지구라는 지역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박람회장 부지를 비롯한 주변일대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개발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이 보였다. 박람회장의 거의 모든 시설들이 행사이후에도 영구 존치되어 지역 발전의 거점시설로 활용이 가능하다. 이는 박람회 행사가 끝나면 2/3 정도의 행사시설이 철거되고 마는 우리의 경우와 대비되는 모습인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도시재생의 모범을 박람회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각종 초화류와 벽천, 연못 등 가장 화려한 공간인 ‘금수곡’을 비롯한 일부지역이 쓰레기 매립장을 탈바꿈하여 만들어진 공간임을 보여주는 전시 내용을 보며 죽음의 땅을 생명의 공간으로 탄생시킨 감동의 스토리를 읽을 수 있었다.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 국가의 당연한 축복일 수도 있겠으나 다양한 소재의 활용 또한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좋은 디자인뿐 아니라 (다양한)좋은 소재가 좋은 공간을 만든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들은 우리보다 좋은 조경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출발하고 있다면 지나친 엄살과 자기비하가 되려나??!!

마지막으로 몇몇의 건축물 정원에서 보여준 전통과 현대의 조화. 정확히는 전통의 현대적 해석을 통한 디자인의 구현 노력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모든 디자인분야의 고민이기도 한 전통과 현대의 접목(갓 쓰고 양복 입은 모양새가 아닌)이라는 화두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풀어낸 흔적들이 나에게도 새로운(실은 묻어두었던) 의지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다소 추상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전체적인 짜임새가 부족해 보이는 공간구성과 시공의 완성도, 디테일의 미흡, 박람회 안내 및 행사진행에 대한 인프라와 서비스의 부실 등 아쉬운 점 또한 적지 않은 박람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이정도의 대규모 박람회에 유료 가이드북 하나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은 중국인 특유의 대범함으로 봐야 할지 무심함으로 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5월 18일 개막하여 11월 18일까지 6개월의 대장정에 들어가는 베이징원림박람회는 이제 그 시작을 알렸다.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수많은 조경인들에게 중국 조경산업의 위용을 뽐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자랑이 한껏 물이 올랐을 가을 어느 날 노을 진 순천만의 갈대숲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 중국원림박람회 옥상테크

▲ 중국원림박람회장 메인 게이트 겸 상징조형물

▲ 중국원림박람회 건축물 정원

진승범(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사)한국조경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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