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 정책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놀이시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기준을 제정하고, 그 기준에 미달하는 놀이시설에 대해서는 교체하거나 보수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하는 ‘어린이놀이시설안전관리법’이 시행 5년이 됐다. 당초 2012년 적용하기로 했던 기한을 3년 유예해서 2015년 1월부터는 본격 집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1년 8개월 이내에 설치검사를 마쳐야 하는데 아직도 전국 5만5000여 곳 가운데서 2만여 곳 정도만 기준을 충족시켰다고 하니 나머지 3만여 곳이 모두 정비해야 할 대상이다. 물리적으로 매일 50곳 이상씩 공사를 마쳐야만 불법 놀이시설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와 유치원 등 사설 운영시설, 소외계층 거주 공공주택과 밀집지역 등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안전행정부는 이미 한 차례 유예를 했으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하면서도 지자체에 위임된 사안이므로 지자체가 처리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애초부터 예산 편성의지나 지원의 뜻은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그러면서 법은 왜 만들었는지 저의가 의심스럽다. 여태 진행된 상황으로 볼 때 정부 정책이 결국 빚을 내서라도 놀이시설을 교체하든지 아니면 폐쇄하라는 ‘최고장’과 무슨 차이가 있나?

안전행정부 논리처럼 지자체 위임사무이므로 지자체 책임론을 거론하는 것 또한 ‘슈퍼갑’의 횡포와 다름 아니다. 해당 사무를 지자체로 이관한 것은 법 제정 이후인 2011년이기 때문이며 이것 또한 약자인 을에게 ‘밀어내기’ 수법이다.

이 법의 제정 취지는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놀이공간과 시설을 안전하게 설치하고 관리함으로써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안정행정부가 밀어내기를 하는 동안 현실은 그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아동복지시설에 놀이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돼 있던 규정이 삭제됐다. 가뜩이나 예산도 부족한데 놀이시설 예산을 확보하는 대신 안전관리법을 비켜가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국토해양부 또한 주택관리기준을 고쳐 공동주택 내 놀이시설 의무조항을 폐지하고 주민공동시설 총량제에 포함시키려고 했으나 조경계의 반발에 부딪혀 일단 접은 바 있다.

우리는 법이 제정될 때부터 일관되게 예산 편성과 지원을 요구해왔지만 안전행정부는 이를 묵살했다. 그러면서 관리감독 권한을 슬그머니 지자체로 이관했고, 여론에 밀려 시행기한을 3년 유예하기도 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상황은 변했는가?

이미 아동복지시설에서는 놀이시설 의무조항을 뺐고, 공동주택 또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이며, 유치원연합회도 예산 지원이 안 되면 놀이시설을 빼는 법안을 건의할 수도 있다.

암울하다. 당초 예상했던 어린이놀이시설 설치공사가 크게 늘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내년 하반기부터는 ‘놀이시설 철거업’이 유망한 사업으로 부각될 확률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놀이시설 말살정책의 상당한 책임은 출구도 마련하지 않은 채 밀어내기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안전행정부에 있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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