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4일 서울시 중구청은 대한문 앞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고 화단을 조성했다. 그리고 화재로 훼손됐던 돌담과 서까래 수리를 끝내고 가림막을 철거하면서 문화재청과 함께 화단을 넓히는 작업을 했다. 당연히 농성자들은 항의를 했고 결과를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5월 10일에는 제주 서귀포시 해군기지 공사장 앞 강정천 다리 주변에 강정마을회 등이 설치한 천막을 철거하고 화단이 조성됐다. 이곳 역시 강정마을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고 화단은 계속 무심하게 농성장을 대신하고 있다.

대한문 앞이나 강정천 도로에 천막을 설치하는 것은 도로 무단 점용에 해당되는 것으로 법을 어기고 있기는 하지만 그 곳에 화단이 설치돼서 자리매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전국에서 열린 집회는 4만261건으로 하루에 110건의 집회가 열렸다. 집회와 시위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법적인 권리 행사가 불법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충돌의 대명사가 됐다.

미국 백악관 앞에 수십 년째 천막(2m*2m)을 치고 시위하는 할머니가 있고 이 시위가 합법적이기 때문에 용인되고 있다. 이 시위가 규정대로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백악관 옆 인도에서 불법 시위를 하다가 90일간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시위 규정에 맞는 위치인 백악관 북쪽 펜스가 건너다보이는 라파예트 공원에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공원법에 따르면 시위는 가능하지만 눕거나 숙식을 하는 캠핑은 안 되며 시위용품을 놔두고 자리를 비워서도 안 된다. 또한 보행자의 통행에 지장을 주는 큰 입간판을 세울 수 없는 등 엄격한 조건이 있다. 그녀의 시위에 동조하는 다른 운동가들이 교대로 천막을 지키며 시위 조건을 지키며 시위를 유지하고 있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통령 취임 퍼레이드 때에는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대통령 취임행사에 구경하러 온 관광객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약속된 규칙을 준수하는 이 시위는 32년을 유지하여 명물이 됐다. 반면 대한문 앞 농성장은 3월 화재 전까지 대형천막이 3동이 있었고 LPG통 2개와 소형발전기 2개, 취사용 스토브 2개가 있었고 그 안에서 여러 명이 숙식을 했다. 천막 밖에는 수많은 시위용품, 입간판 등이 있었다.

최근 역사왜곡 등으로 우리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에서도 시위는 많다. 1960년대 ~ 1980년대의 과격 폭력적인 시위 투쟁 때문에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등 사회불안이 극도에 달했다. 불법 집회 시위에 환멸을 느낀 일본은 여러 차례 집회 시위에 대한 법령과 조례를 만들어서 질서있고 합법적인 시위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그동안 폭력이 개입되면 아무리 옳은 주장도 당위성을 잃게 된다는 교훈을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직 한국의 시위는 여전히 불법, 불통의 수단으로 밖에 인식을 못하고 있다. 농성장을 대신해서 어색하게 조성된 두 곳의 화단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화단은 우리 국민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지 시위장소를 원천 봉쇄하는 역할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존재가치를 훼손하지 말라”고 화단이 시위를 해야 할 판이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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