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동길 객원 논설위원(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주) 대표·국립한경대 겸임교수)

습지는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여 생태복원 사업을 진행하거나 생태공원 등 생태적 공간 혹은 비오톱을 만들려고 하면 항상 빠짐없이 습지를 도입 요소로 넣곤 한다. 습지는 뭍과 달리 습지식물과 어류, 양서류, 조류, 포유류 등 수많은 생물종의 서식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물새의 서식처인 습지의 보호와 관련된 협약인 람사르(Ramsar) 협약에서는 습지를 복잡하게 정의하고 있다. “자연 또는 인공이든, 영구적 또는 일시적이든, 정수 또는 유수이든, 담수, 기수 혹은 염수이든, 간조시 수심 6m를 넘지 않는 곳을 포함하는 늪, 습원, 이탄지, 물이 있는 지역”을 습지로 정의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축축한 땅 혹은 젖어 있는 땅을 말한다.

람사르 협약의 정의에서 필자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영구적이든 일시적이든(permanent or temporary)’에 관한 것이다. 습지에 물이 일년 내내 고여 있으면 영구적이라고 표현하고, 일년 내내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즉, 대략 1년 평균 45일 정도를 넘기는 기간 동안 고여 있으면 일시적 혹은 계절적 습지라는 말을 쓴다. 즉, 어떤 공간이 1년 중 45일 이상 정도만 물을 담고 있으면 습지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습지는 일년 내내 물을 담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계획․설계하고 시공하는 습지는 어떠한가? 대부분 물을 일년 내내 가두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접근한다. 물을 일년 내내 습지에 담아야 하기 때문에 수원을 찾게 되고, 자연적인 수원이 없을 경우에는 관정을 파거나 외부에서 끌어들인다.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습지를 도입하는 설계 의도는 좋은 것일 수 있으나, 이러한 공간은 유지 및 관리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실제로 운영되는 동안에는 물이 말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은 물을 담고만 있는 습지보다는 실개천(물론 실개천도 습지의 한 유형이다)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또 어떤 곳은 물을 순환시킨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서 과다한 에너지를 소요하게 만든다. 역시 유지․관리비의 상승으로 사시사철 물이 말라있기가 대부분이고, 뜨거운 여름이나 행사가 있을 때만 운영되기 쉽다.

생태공학적 접근에서는 자연에 맡기며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접근 방법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원칙을 습지에 적용한다고 하면, 습지의 운영을 위해서 에너지는 사용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습지를 만들 대상지 선정부터가 중요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하수위가 높은 곳이거나 과거에 습지였던 곳, 혹은 물을 자연적으로 공급받기 쉬운 곳에만 습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든 물을 순환시키거나 공급해야 한다는 이유로 에너지를 소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즉, 관정을 파거나 외부로부터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동력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물을 어디서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는 대상지 선정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지하수나 상수와 같이 에너지를 사용해야 얻을 수 있는 물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빗물이나 지표수를 활용하도록 하고, 하천수를 이용해야 한다면 고저차를 잘 활용해서 인위적인 동력이 필요없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습지에 대한 사고를 바꿔보는 것도 필요하다. 왜 습지는 항상 물을 담고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실개천 역시 항상 물이 흘러야만 하는가? 필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공원에 조성되는 연못일 경우에는 경관상의 목적으로 물을 적절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하지만, 생태적인 공간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 있는 상태로 있다가 비가 오면 습지화되는 공간도 중요하다. 이런 공간은 맹꽁이들에게 좋은 서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습지를 우리는 건습지(dry pond)라고 한다.

물론 건습지는 항상 물이 필요한 어류의 서식처 기능으로선 한계가 있다. 하지만, 복원할 목표종이 어류라고 한다면 보다 더 적합한 장소를 찾아 습지를 조성해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하면 에너지 투입을 최소화시키면서 습지를 운영․유지시키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하여 항상 물을 담고 있거나 흘려야 하는 습지가 아니라 자연 강수에 의해서 유지될 수 있는 마른 습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지하수 충전을 위해서 투수연못이라는 개념도 적용할 수 있다. 투수연못은 물을 담아놓는 연못이라는 개념과 반대되는 투수의 단어가 결합한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물을 빠르게 지하로 침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습지를 말한다. 투수연못은 지하수 이용이 과다해지면서 부족해지기 쉬운 지하수를 충전하기 위한 효율적인 공간으로 사용된다.

최근 빗물의 관리와 관련해서 LID(저영향 개발) 접근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빗물을 빠르게 모아서 하천이나 강으로 흘러내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모아서 느리게 움직이게 하고, 지하수층으로 투수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함께 빗물을 효율적으로 가두고 저장하는 것이 주된 관건이다.

물의 처리나 물과 관련된 습지를 조성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경향에 맞추어서 지금까지는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비단 습지만이 아니라 포장이나 식재 분야 등 조경 분야 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한다.

조 동 길
(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주) 대표·국립 한경대 조경학과 겸임교수)

키워드
#조경 #조동길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