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대 영남대 교수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도시디자인행정에서 늘 부닥치는 이슈 하나는 일반인과 전문가의 눈높이 차이를 극복하는 일이다. 당연히 시민의 의견을 감안하고 요구를 수용한다지만, 실재에서는 전문성에 더 의존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전문가는 일반인의 필요를 충분히 감안하여 작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주 지적당하는 것은 시민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항의였다. 솔직히 도시차원에서 시민의 요구는 때로는 불합리하고 단편적이며 이기적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큰 방향은 합의한다하더라도 정작 디자인차원으로 오면 문제는 계속 나타났다. 더한 경우는 지자체의 단체장마저 주민의 요구라고 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취향과 선호를 내세우는 것이었다. 만일 그러한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도시를 디자인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싶었다. 함부로 ‘민도’라는 용어를 쓸 수는 없기 때문에 다른 표현을 써서 조정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허다했다. 그런 이해타산적인 주민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놀라울 정도로 해박하고 공리를 추구하는 주민도 있었다. 늘 최상은 아니더라도 최적의 디자인은 있다고 주장하며 다듬어갔지만 한계가 있었다. 나는 그러한 주민의 지식을 풀어내도록 해야 했고, 또 실재업무에 도움을 받고 싶었다.

물론 시민단체가 있고 그 참여도 중요했다. 도시디자인차원에서는 오히려 보통사람의 수긍할 수 있는 디자인참여가 중요했다. 그러한 수긍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도 시민의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중한 아이디어 하나일지라도 도시디자인행정에서 실행하기 위해서는 큰 틀 속에서 적정해야하고 합의와 절차가 필요하고 균형에 맞아야하며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고 당연히 예산과 시간이 뒤따라줘야 한다.

그 다음 단계로 전문가가 시민요구를 디자인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에 있어서 타성에 젖거나 몰이해 혹은 소홀할 수도 있고, 심지어 자신의 전문성에 따라 그러한 요구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경우까지 있다. 여기에 도시디자인행정은 주체적으로 조정하며 도시가 지향하는 방향에서 시민을 위한 작은 일들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나는 조절자의 기능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자칫 시민참여는 형식적이 되거나 미미한 효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공청회처럼 시민의 의견을 듣는 기회를 만들어도 도시디자인행정의 이슈로서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왜 그렇게 했냐는 식으로 추궁할 때는 답답한 심정이었다. 아무튼 어떤 형식과 정도로든 시민을 도시디자인행정에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기회는 가까이 있었다.

2009년 국토해양부의 ‘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사업’선정에 있어서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이미 대구시 도시재생과에서 도시디자인 및 도시재생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 주민리더를 양성하고 우리 동네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도시학교를 시작하였다. 지역의 주민, 학생, 시민단체, 전문가, 공무원 등이 참여하여 8주 동안 토론 위주의 실습형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선진사례지를 답사하며 전문가가 강의하고 팀별로 종합계획을 수립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첫 회 도시학교는 ‘대구경북권 도시대학’으로 지정받은 대구대에서 주관하여 3개 구와 포항시 등 6개 팀이 60여명이 참여하여 나름대로 성과를 만든 터였다.

늘 아쉬웠던 시민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로서 현장을 중심으로 사업비를 국비와 지방비로 만들어 실재 조성하는 중요한 과제이기에 나는 관계부서와 적극 협의하여 도시학교사업자체를 본부에서 추진키로 하였다. 그리하여 첫 회 내용을 파악해보니,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미세한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지만, 남구의 특정한 사업이 우수판정을 받고 제대로 추진되고 있었다. 다만 학교장을 도시계획전공교수가 맡은 탓인지 모르나 성과물 자체의 완성도가 부족하고, 중구중심으로 추진되어왔고 남구에서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또 누가 도시학교운영을 주도하느냐를 두고 지역의 전문교수들 사이에는 은근히 관심이 컸고 그 여파도 있었다. 나는 이 사업을 통해서 시민에게 다가가고 지역 골고루 도시디자인의 혜택이 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2010년 도시학교는 대한건축학회 대구·경북지회에 맡기고, 공공디자인 활동으로 지역에서 활발한 이교수를 교장으로 위촉하여 경북대캠퍼스를 빌어서 운영하였다. 그런데 오히려 신청이 더 줄어서 늘 참여하던 중구와 남구 그리고 경산시로서 5개 팀 35명에 그쳤다. 지역정서와 행정판단이 의외로 괴리가 생기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조경가가 빠진 결과라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이후 3회 4회 2년간은 아예 대구경북연구원에서 주관토록 하고 원장이 본부장을 맡고 전문가도 조경, 도시설계, 건축 등 보다 다양하게 구성하였다. 본부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였다. 나는 특히 서구와 같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지자체에 참여를 종용했다. 그런데 일부 구청 관련 직원은 귀찮아할 정도였으니, 새삼 주민과 함께 하는 사업의 애로를 실감했다. 다행히 2011년에는 5개구에서 참여하는 등 점차 지자체와 인원이 늘었고, 그 내용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거리활성화는 물론 지역재생 등이 대부분일지라도 그 주제가 지역밀착형으로 다채로워졌다. 허나 너무 눈을 끄려는 듯 다양한 제목에 식상할 정도였으나, 부득이했다. 방식 또한 정비차원에서 나아가서 작은 스케일의 디자인을 적극 다루어야 하는 프로젝트도 많아졌다.

나는 도시학교 입학식 때 환영사에서, “거창한 도시계획이나 대규모 토목사업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녹아있는 따뜻하고 안락한 우리 동네이야기를 풀어놓고 담는 일입니다. 이제 도시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 주민입니다. 여러분의 동네를 가장 잘 알고 또 그 장소가 지닌 잠재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바로 주민입니다. 도시만들기는 전문가의 이론과 주민의 생활의 지혜가 함께 할 때, 우리의 도시는 아름답고 유쾌한 곳이 될 것입니다. … 이제 여러분은 지역사회리더로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 도시를 보다 넓고 크게 보면서, 평소의 아이디어를 풀어내어서 실재적이고 유용한 도시만들기에 앞장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굳이 기성전문가를 흉내낼 필요도 없으며, 여러분의 언어로 여러분의 동네를 여러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궁리를 펼치는 것입니다.”라며 애향심을 순수하게 담아내도록 권장했다.

학교가 진행되면서 마치 어린 학생신분으로 돌아간 듯 개개인은 즐거워보였다. 두 달간 매주말 만나는 팀원들의 친밀도도 높아갔다. 그런데 팀 사이에 은근히 경쟁이 되었고, 담당 지자체의 직원은 부담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너무 전문가다운 성과물을 만들려고 애쓰는 팀이 많아졌다. 지자체로서는 우수한 판정을 받아야 중앙부서에 신청할 때 유리했으니 불가피했다. 나는 심사를 애초 주문하대로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했다. 수료식 때 우수와 장려로 심사결과를 발표할 때 열광하던 시민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도시학교를 운영한 4년의 성과는 놀라웠다. 남구의 '앞산 웰빙먹거리타운 조성사업'이 국토해양부와 지역발전위원회로부터 최고등급인 'S'등급의 평가를 받는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업들이 발굴되었다. 총 190명이 수료했고 25개 프로젝트가 만들어졌으며, 실재 7개 프로젝트가 총 570억 원의 예산지원을 받아 8연간 실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참여주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대다수가 실재 사업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게 되고 또 도시디자인행정의 시민봉사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이런 와중에 김시장이 재선되면서, 시정방향으로 ‘교육도시 대구’가 부각되었다. 이에 본부에서 새롭게 구상한 프로젝트가 ‘디자인대구행사’였다. 이는 청소년, 대학생, 시민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참여하는 이벤트이다. 2011년 프로그램 중 ‘디자인대구아카데미’는 지역대학의 디자인전공관련 수업을 학기동안 병행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공동전시하고자 하였다. 7개 대학의 31개 전공학과가 참여하였으며, 조경, 건축, 도시, 사진, 디자인 등 작품전시는 물론 경북대 음대학생들의 국악공연까지 있었다. 이러한 장르를 넘어 디자인 학제적 전시는 최초가 아닌가 싶다. ‘공공디자인공모전’은 기선정된 ‘대구경관 52선’을 대상으로 하여 전문가 및 전공학생의 일반공모와 시민의 디자인아이디어공모 그리고 어린이디자인경시대회를 시행하였다. 우수작은 시정에 반영키로 하였다. 시차원에서 초등학교 어린이를 대상으로 공모전을 한 경우가 드물었기에 그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작품의 신뢰성에 의문이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디자인대구포럼’은 창의도시를 주제로 하여 세 발표와 토론회를 가졌다. 이 포럼에는 김시장이 참석하여 두 번째 발표까지 경청을 하여 본부로서는 큰 힘이 되었다. 그 외에도 ‘디자인마켓’을 열어 실재 디자인제품을 사고파는 장을 마련하고 또 대학홍보부스도 오픈하였다. 이러한 행사를 한마당으로 마련하다보니 장소가 문제였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대구스타디움으로 정하여 기성의 전시장을 탈피하여 마치 후속이벤트처럼 현장설치방식으로 추진하였다.

2012년 다시 ‘공생’을 주제로 내걸고 제목도 ‘디자인대구페스티벌’로 바꾸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아카데미는 8개 대학 27개학과 7개수업으로 약 700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하였다. 날을 지정하여 경시대회를 현장에서 개최하였고, 대학음악동아리한마당에는 7 학생팀이 경연하였다. 포럼에는 ‘공생, 함께 하는 도시’를 주제로 조경학회 영남지회에 주관을 맡겼다. 서울대 조경의 임교수와 성대 건축의 조석좌교수와 카이스트 디자인의 정교수가 주제발표를 하였다. 나는 이 포럼을 제대로 논쟁의 장으로 만들려고 발표장도 사각원탁으로 배치하여 발표자와 토론자가 마주 보도록 만들고 직접 토론을 주재하면서 되도록 논쟁이 많이 되도록 유도하였다. 그런 의도를 읽었는지 도시, 건축, 조경, 디자인의 교수들, 매일신문 논설실장, 지자체도시국장,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실장 등 열 사람이 꽤 열띤 지적을 하였고 답변도 심층적으로 이어졌다. 특히 조경을 가운데 두고 건축과 디자인이 은근히 논쟁을 하였다.

‘디자인대구페스티벌’ 또한 시민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취지에서 색다른 시도였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도시디자인을 매개로 하여 신분과 나이와 전공을 넘어서 함께 하는 창조적 마인드의 이벤트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경시대회에서 재미있는 작품은 실재로 시정에 반영해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하자, “진짜요?”하며 반기던 어느 중학생의 눈망울이 아직도 선명하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