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동범 전남대 교수
도시 내의 어떤 용도보다 대학캠퍼스는 널찍하고 개방적이고 나무도 많고 자유롭다. 한마디로 공원과 같다고 말하는 게 편하려나...? 실제로도 대중공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학생, 교직원들보다는 시민들을 위해 더욱 그러해서, 휴일이면 캠퍼스의 잔디밭에는 유모차나 돗자리가 자리 잡고 풀밭을 뛰어다니며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가 영락없이 공원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판에 박힌 그 풍경이 새삼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평소(휴일이 아닌 주중, 학생들이 주로 차지하고 있을 때)에는 보기 어렵기 때문인 듯 하다. 잔디밭에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고, 책 읽고, 기타치고, 노래하는 한가로운 대학캠퍼스의 풍경은 70, 80년대 기억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새삼스럽게 대학캠퍼스가 휴일에 공원처럼 보이는 현상에서는 대학의 풍경이 바뀌었다는 점 보다는 전형적인 공원과 같은 장소조차 공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나이가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던 어느 여성 건축가와 공원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휴일 공원에 가면 판에 박힌 풀밭 위의 풍경이 너무 식상해 결혼을 하지 않는대나 어쨌대나. 판에 박힌 모습이란 가족들의 모습 뿐 아니라 상투적인 목가적 이미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누구는 그 모습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 하고 누구는 그 모습 때문에 안한다고 하고. 녹색의 공간이 보여주는 역설은 사람마다 다양해서 재미있다. 아무튼, 제도적인 공원의 분류는 많아도 일반시민들에게는 근린공원과 어린이공원의 차이도 구별되지 않을 뿐더러, 큰 공원과 작은 공원, 어떤 시설과 어떤 길이 있느냐로 선택되거나 선택의 여지도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쯤 되면 잘 키운 대학캠퍼스 하나 열 개 공원 부럽지 않아서 지방자단체로서는 조성까지는 몰라도 대학과 함께 일정부분 관리를 위한 상생의 관계를 찾을 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가로지르는 법과 제도는 없다.

제도로 만들 수 없는(혹은 만들지 말아야 할) 현실의 영역이 어디 그 뿐이랴. 도시텃밭이 붐을 이루면서 건축 의무조경 면적에서 난간, 실내까지 확대하는 법률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우려의 기사(한국조경신문 3월 21일자)를 보면서 조경분야의 고군분투가 눈물겹다. 불법점용에 의해 결국 조경면적 축소를 가져올 것이 뻔하지만 그 다른 한쪽에서는 도시텃밭을 핑계로 건축비용을 줄일 묘안을 찾은 셈이니 눈이 번쩍 뜨였을 것이고. 그러다가 작은 접시에 물 부어놓고 풀꽃 띄워 놓은 테이블 위의 정원까지 조경면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상상력을 발휘할지도 모르겠다.

문제의 본질은 법적 조경면적이 줄어드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시환경을 유지하고 생물을 불러들어야 할 최소한의 면적마저 희생하고 건축물 단위에서 해법을 찾고 있는 건축법 개정의 속 좁음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조경면적은 공공에의 기여를 바탕을 두고 공공적 접근을 전제로 한다. 대지와 옥상이 가지는 오픈스페이스로서의 (시각적인 측면을 포함한) 접근성과 대기와의 접촉, 생물이 찾아 듦, 도시경관의 형성 가치 등은 난간과 실내에서 동일한 정도로 발휘될 수는 없는 것이다.

도시 내에서 텃밭을 하는 것도 그 모두가 착한 공간 활용만은 아니다. 도시농업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언급되는 바탕에는 ‘혼자서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형성이나 공유감에의 기여’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화학비료 안주고 농약 안치고는 못해~하고 단언해버리시는 현실적인 어머니에게 “많이 수확하려고만 텃밭하나? 난 허브심고 꽃 심어서 병충해도 막아 볼거야”라고 상생식물(companion plants)론을 꺼내들며 (토마토는 당근과 상생식물이며 메리골드를 가까이 심어두면 좋고, 마늘과 장미를 같이 심으면 서로 잘된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꿈꾸어보면서, ‘이 참에 교목 : 관목, 상록 : 낙엽의 비율처럼 도시텃밭에는 몇 %  이상 조경식물을 심는 제도는 어떨까’ 하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건축물에 산입하려는 도시텃밭의 면적에서도 건축법에서의 의무 조경 항목만큼이나 이런 저런 규정이 불가능한 것도 아닐지라도, 상생하여야 할 영역을 이해의 관계로 가로지르려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에게는 캠퍼스 잔디밭과 공원이 구별되지 않듯이 장미와 마늘의 관계는 더 큰 공공성과 환경을 위해 서로를 허락하는 것이다.

조경분야가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반대급부를 업고 성장해왔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지만, 조경분야가 끝까지 지켜야 할 자존심은 공공에 대한 기여,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매개자로서 역할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 자존심을 지키려 할 때 필요한 것은 포용력을 발휘하되 중심을 잃지 않는 것, 문화적 상상력을 갖추되 철학적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키워드
#조경 #조동범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