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동길(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주) 대표·한경대 조경학과 겸임교수)

어떤 사람에겐 ‘의생학(擬生學)’이라는 단어가 다소 생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擬)’는 의성어(擬聲語)나 의태어(擬態語)와 같이 어떠한 사물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것 또는 ‘헤아리다’는 뜻을 가진다. ‘생(生)’은 살아있는 것을 의미하며, 작게는 생물종, 넓게는 자연이라고 보면 좋을 듯싶다. 이 용어를 만든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의생학을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서 자연이 스스로 풀어낸 해법을 가져다 우리 삶에 응용하려는 일련의 연구들”이라고 설명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자연을 흉내 내는 혹은 자연을 표절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 의생학을 설명할 때 최재천 교수는 찍찍이라고 불리는 벨크로(velcro)를 대표적인 예로 든다. 조르주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이라는 스위스의 한 발명가가 개발한 찍찍이의 아이디어 근원지는 다름 아닌 식물, 도꼬마리의 종자였다. 1941년 어느 날 그는 사냥을 갔다가 개와 자기 옷에 도꼬마리 열매가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아 고생했다. 처음에는 이 녀석 때문에 화를 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 식물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도꼬마리의 종자를 자세히 관찰하다가 종자의 끝에 수없이 돋아 있는 갈고리 모양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응용하여 여민 장치를 고안해 낸 것이다. 참고로 도꼬마리의 종자가 옷가지나 동물의 털에 붙는 것은 생태학적으로 식물의 종자 이동 방법 중에 동물형 산포인 부착형 산포의 한 예이기도 하다. 한 기술자가 도꼬마리의 종자에 호기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관찰한 결과는 현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긴요한 물건 중의 하나인 찍찍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생태복원에서도 의생학은 중요하다. 굳이 의생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바람직한 생태복원을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배우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생태복원의 다양한 개념들을 설명하다 보면, 훼손된 자연환경을 되돌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의 하나로 ‘자연을 흉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국제생태복원학회에서 1990년 생태복원을 정의하면서 ‘특정한 생태계의 구조, 기능, 다양성 그리고 역동성을 흉내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자연의 모양과 그들이 유지되게 하는 원리 등에 대해서 그대로 옮겨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실제로도 우리는 생태복원의 모범 모델을 찾기 위해서 훼손되지 않은 자연지역의 모습을 연구하고, 이를 복원할 대상지에 그대로 옮기거나 응용해서 복원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물론 생태복원의 시작은 훼손된 원인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그 원인에 해당하는 생태학적 체계를 이해함이 우선이다. 그런 후에는 훼손된 지역을 복원하는데 모범이 될 만한 자연 생태계 즉, 참조 생태계(reference ecosystem)를 찾아서 이 생태계를 연구해야 한다. 어떠한 모습으로 생겼는지 그 구조를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더불어서 어떠한 체계로 참조 생태계가 운영되고 있는지 기능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이것은 훼손되지 않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조경 설계분야도 마찬가지다. 물론 조경이나 생태복원과 관련된 제품을 만드는 분야에도 해당할 것이다. 설계 공모전을 하다 보면 설계의 개념을 만드는 데 있어서 자연으로부터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숲에서부터 나무, 가지의 생김새, 나뭇잎 혹은 잎맥을 모티브로 하여 설계 개념을 잡기도 한다. 친환경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공간 디자인을 할 때에도 자연의 여러 요소를 모티브로 하거나 그대로 모방하는 때도 많다.
여의도공원의 생태숲 공간을 설계할 때 한쪽은 소나무림으로 다른 한쪽은 참나무림으로 조성하였다. 이러한 설계 아이디어는 남산을 모방해 온 것이다. 남산의 남사면엔 소나무가 그리고 북사면엔 신갈나무가 우점수종인 것을 헤아리고, 이를 새롭게 조성하는 여의도공원의 생태숲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올해 4월 20일부터 열리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 조성될 서울 정원의 설계 모티브는 밤섬을 모델로 하였다. 서울을 대표할만한 정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많겠지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생태를 화두로 삼고 있고, 순천만 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서울의 대표적인 생태 공간 중의 하나인 밤섬도 좋은 모티브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강의 중에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을 자주 쓴다. 생태학의 모범이 될 만한 책들을 두루 읽어보는 것도 좋지만,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면 자연으로 나가서 오랜 시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공 서적 등에서 봤던 것들을 되새기면서 자연을 보기 시작하면 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서 책이나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새로운 많은 것들, 나만의 것들을 배워올 수 있다고 말한다. 자연을,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는 조경의 특성만큼이나 우리는 자연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생태복원 방법에 대한 모범 답안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조경설계나 차별화된 제품의 개발을 위한 디자인의 답이 자연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그곳은 바로 뒷산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간섭받지 않은 습지나 하천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따스한 봄날이 시작되는 3월의 요즘 산이나 들로, 하천이나 습지로 나가 인간은 흉내도 내지 못할 것 같은 자연의 오묘함을 헤아려 볼 일이다. 무엇이든 하나씩 배워나가면서 자기가 하는 일에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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