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대 영남대 교수
김 시장으로부터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준비가 부진하다며 처음으로 야단맞았다. 부속실 직원들이 당황한 듯 내 표정을 살피기 바빴다. 나한테까지 이러시나하며 당황했고 자존심도 상했다. 어찌 보면 사회의 냉정하고도 엄한 위계를 절감한 듯했다. 그런데 얼마 후, “요즘 TV에서 보니 시장님 진짜 많이 야위었네.” 아내의 지나가는 말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싶었다. 내가 정말 주인의식을 가지고 진정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본부장직을 맡아 2년여 지나면서 나 역시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회는 점점 다가오는데, 정작 분위기는 고조되지 않았다. 올림픽과 월드컵축구와 더불어 세계3대 스포츠제전 중의 하나라고 홍보해도 알아주지 않는 듯했다. 일정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행정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만들어가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함께 이루어내어야 했다. 무뚝뚝한 대구의 지역정서 탓인지 혹은 서양과 다른 스포츠문화의 차이 탓인지, 대다수 시민들은 육상에 관심도 없는 듯 했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는 것은 물론 이런 소중한 기회에 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도시를 업그레이드하여 세계에 대구를 알리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김시장은 특히 세계에 TV생중계가 되니 대구의 브랜드가치를 높힐 수 있는 기회임을 거듭 강조했다.

언론에서는 연일 기사화했다.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하며 큰 것 작은 것 무엇이든 들추어내었다. 신문방송에서 연이어 기획시리즈가 나오는데 예외가 없이 도시경관을 지적하면서 특히 건물옥상과 지붕문제를 커다란 사진과 함께 꼬집었다. 그런가하면 자칫 예산낭비가 될 우려도 지적하였다. 마치 시정의 모든 것을 점검하는 듯했다. ‘88서울올림픽대회’때 중요한 역할을 경험한 적이 있는 김 시장은 준비상황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훤히 알았다. 긴장되고 살벌한 회의에서 간부들을 호되게 야단쳤다. 조직위와 시 사이 협조도 쉽지 않았다. 기관장으로서 애가 탈 수 밖에 없었다.

본부에도 주된 임무가 떨어졌으니, 대구의 이미지관리 문제로서 도시경관을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개선해야했다. 인구 250만의 대도시를 단번에 어찌 할 수 있나하고 처음에는 막연하고 어디에서 시작해야할지 황당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소극적이었다. 왜냐하면 이벤트로 무엇인가 만들면 결국 소모적인 일회성으로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특별교부금 배정계획을 보니 태부족이었다. 그래서 하나라도 제대로 남는 것으로 하고 싶었으니, 사전점검부터 꼼꼼히 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먼저 소극적인 경관정비용어를 적극적인 경관개선으로 수정하고, 본부초창기 때 구상했던 방식을 활용하기로 했다. 즉 불법간판처럼 과도하거나 잘못된 것은 순화하고, 자체 지닌 소중한 것은 들추어내어 강화하고, 기왕 만들 바에야 좋게 미화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우선 나 자신은 물론 직원들에게 해당되는 일들을 나열해보라 했다. 8개 구군에도 해야 할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받아보니, 한보따리씩 가지고 와서 다 중요하다며 주장했다. 이 기회에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분위기도 있었다. 주어진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직원은 내가 괜히 주체하지 못할 일을 만든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나는 어차피 전부 다 될 수 없는 것을 쉬쉬 하며 일을 할 수는 없고 공개해서 협조를 구할 의도였다. 그러데 상황은 또 나타났으니 애초 예정된 특별교부금이 줄어든 것이다. 부득이 구군 재배정사업은 극대효과를 가늠하여 시행하고, 많은 사업은 본부에서 직접 해야 했다. 열성적인 구군의 부청장이나 도시국장은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본부임무 중 특별지시는 세계에 생중계되는 남녀 마라톤대회의 도시배경을 ‘단장’하고 더불어 방문객에게 대구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마라톤코스가 처음 정해진 대구스타디움과 원도심지를 잇는 왕복코스가 대회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날 갑자기 원도심과 수성못 일대를 3번 도는 루프형 순환코스로 바뀌었다. 나는 회의석상에서 역정을 좀 냈다. 실컷 도상작업을 하고 일부 실행까지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심 유리한 점도 있었으니, 길이가 전체코스가 거의 삼분지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방헬리콥터를 몇 차례나 타고 저공비행을 하며 도시를 샅샅이 관찰했다. 때로는 고층아파트보다 낮게 나를 때는 아찔했다. 그래도 이런 재미도 있나하며 우쭐함도 느꼈으니 내가 가자는 대로 헬기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전부 일감이었다. 대구다운 특색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도로경관과 상공의 경관은 판이하게 달랐으니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흉물스러운 모습이 도처에 있었다. 특히 중심시가지임에도 불구하고 큰 건물 사이사이에 비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으려는 듯 지붕에 허름한 천막을 치고 폐타이어를 올려놓은 작고 오래된 집들은 즐비했다. 또 옥상에조차 곳곳에 쓰레기더미도 방치되어있었다. 더욱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주택가 옥상의 노랗거나 파란 물탱크였다. 한편 대구로 진입하는 경부선 철로 변을 몇 차례 열차를 타고오가며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면서 검토했다. 화면으로 보니 미처 지각하지 못했던 불량경관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도시 어디든 도로상에서는 불법 과장과대간판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건물의 전면은 그럴듯해도 측면도 부실했다.

큰 문제는 이러한 경관개선의 대상이 거의 대부분 민간영역, 즉 개인주택이나 개인상점이라는 것이었다. 직원들 특히 구청의 담당공무원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지붕을 개선하려다가 자칫 집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간판정비도 난제였으니, 개인은 시에서 다해달라는 식이었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주민이 비용을 부담해야하는 구조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점차 도시경관개선의 윤리와 정당성도 생각하게 되었다. 자칫 전시행정이 될 것 같아 염려스러웠다. 아무리 허름하고 불량해도 그 자체가 실존경관이니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관점도 고려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손님이 오는 잔치이니 집안대청소를 하자는 식이었다. 결국 윤리문제는 제쳐두고, 그러한 불량(?)경관을 최대한 바꾸어야했다. 허나 예산과 시간과 인력을 따져보니, 개선은 커녕 정비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다.

도시경관개선은 2가지 방향으로 병행하여 추진했다. 즉 전반적인 수수한 바탕과 부분적인 흥겨운 장식의 도입이었다. 즉 배경이 되는 도시의 모습을 되도록 간결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연출하여 대회이벤트 자체가 주인공이 되고 도시경관은 배경이 되도록 했다. 아울러 초점이 되는 경관포인트를 중요한 시각적 요충지 곳곳에 도입하여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재미를 더하고자 했던 것이다.

대상지역은 1차적으로 육상대회가 열리는 대구스타디움 주변과 마라톤코스와 대구시 진입관문으로 정하고, 2차적으로는 주요관광대상이 될 도심지와 기타 행사장 주변과 선수임원의 숙소주변으로 하면서, 아울러 이러한 점들을 잇는 간선도로로 설정하였으며, 마지막으로는 각 구군의 중심거리나 지역으로 정했다. 이렇게만 해도 사실 다루어야 할 범위가 엄청났다.

경관포인트로서 ‘육상캐릭터’를 설치하고, 더하여 기존의 관광안내소라든지 작은 시설물을 특정하게 도색했다. 육상캐릭터는 대구출신인 이소장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한국의 육상선수이미지를 주변상황에 맞추어 설치하는 일종의 환경장식물 작업이었는데, 동대구역광장과 도시진입경관부근에 알루미늄 판으로 하여 비교적 저렴하게 제작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시장은 반기면서도 국제대회인데 왜 외국선수가 없냐고 지적하여, 추가로 외국인선수 이미지를 구하여 제작하였다. 그러다보니 외국인선수의 판권문제가 제기되었으니 조직위를 거쳐 겨우 조정하였다. 이 육상캐릭터조형물이 설치되자, 신문에서 크게 소개하고 실재로 수많은 통행인들이 재미있게 보면서, 대회분위기를 살리는 점화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또한 도시철도3호선의 교각 50여개에 스포츠인의 이미지를 실사출력 랩핑하였다. 관할부서인 대구 도시철도건설본부에 예산을 주고 디자인도 해주었더니 나중에 공은 자기들 몫이었다. 그 디자인은 경대 홍교수와 함께 고심해서 만들었는데, 우수한 작품으로 인정받았으니 2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구군마다 청사 앞에 ‘육상캐릭터’를 세우도록 여러 체육인의 모습이 담긴 이미지를 주었더니, 전부 우사인 볼트로 만들어 설치했으니 부득이한 일이었다. 마라톤코스 주변 주요옥상에는 시각적 메시지를 제작 설치하였다. 대회 마스코트인 살비를 대규모로 실사출력해서 펼치기도 하고, 세계를 향해 특정한 문자메시지를 부착하기도 했다. 이렇게 곳곳에 특정한 포인트를 설치하면서 점차 대회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대회는 다가오는데, 문제는 계속 불거진다. 도시디자인의 균형발전문제, 공공서비스의 정당한 혜택문제, 이벤트성의 일상화문제 등에 대처하면서 경관개선차원의 도시연출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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