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호(동국대 교수/(사)한국고도육성포럼 회장)
역사도시의 보존과 개발은 서로 이율배반적이다. 역사도시 보호를 위하여 도시개발을 억제하면 도시발전에 따른 개발 수요를 충족하기가 어렵게 된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고대와 중세를 거쳐 온 역사도시가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도시로 오늘까지 이어온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석조로 만든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도시는 그런 대로 당시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용이한 반면에 목조로 만든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3국의 도시들은 아무리 잘 보존한다 하여도 보존 자체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무수한 전란을 겪은 한국의 역사도시들은 석조로 된 구조물이나 성곽 혹은 건축물의 주춧돌만 남아 과거의 흔적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들 도시의 연구는 문헌상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역사도시의 도시발전 전략에 있어 가장 큰 애로점은 보존과 개발 논리의 상충에 있다. 이는 상호 이율배반적인 모순을 안고 있으며 어느 한쪽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한쪽을 강조하기에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과도한 개발 규제 조치에 묶여 있는 시민들의 불만을 해소하여 주기 위하여 규제 조치를 완화하여 주면 역사도시의 역사경관은 훼손되고 말 것이며, 그렇다고 경제적 생활 향상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욕구를 보상 없이 무조건 억누를 수만 없는 실정이다. 그러기 위해서 역사유적의 핵심지구는 보존의 틀을 계속 지켜 나가되, 역사도시의 역사경관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개발을 적극 유도하는 방향으로 역사도시 발전의 기조를 삼아야 한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역사도시의 역사적 진정성 회복과 자연환경의 보존 및 생활환경의 개선을 통해 도시의 활력을 되살리려는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도시는 이미 역사문화유적이 많이 훼손되면서 역사도시의 골격이 교란되었으므로 과거 도시 형태로의 복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역사도시의 육성의 기본방향은 절대적 원형복원이 아닌 '창조적 역사도시골격 회복'과 '상생적 역사도시관리'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 첫째, 역사도시의 역사적 실체를 보존하여 역사도시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둘째 역사문화유적 주변의 쇠락한 생활공간을 역사문화환경과 조화롭게 재생시켜 활기찬 생활환경을 조성하여 주어야 하며, 셋째, 역사도시의 역사문화자산과 주민 생활공간의 조화를 도모하여 고부가가치를 거둘 수 있는 역사도시경관을 조성하여야 한다.

세계 각국은 1960년대부터 국가의 정체성 확립과 미래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역사도시를 대표적인 관광산업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 정치 중심이 되었던 유서 깊은 역사도시를 지속적으로 발굴ㆍ육성하는 정책을 국가 정책의 중요과제로 설정하고 범정부적으로 역량을 집중하여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화재 정책은 과거 단위 문화재 중심인 점적보호에서 벗어나 역사문화도시의 보존 및 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주변 경쟁 국가 중 가장 후발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지역축제 등 문화관광산업을 통한 지역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역사도시를 옛 도시의 구조와 기능을 도시계획 차원의 공간적, 입체적으로 잘 가꾸고 활용할 수 있는 계획을 새롭게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국토연구원을 중심으로 문화국토 가꾸기 사업을 전개하여 역사도시를 문화적으로 품격 있고 질서 있는 명품도시로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문화재청은 역사도시의 문화를 발굴하고 존재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려, 찾고 싶은 국제적인 문화관광의 명소로 가꾸는 정책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역사문화도시 조성 사업은 미래 국가경쟁력 강화의 핵심 가치가 되었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겠다며 힘차게 출발한 박근혜정부의 핵심 키워드는 국민행복이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국가로 경제부흥과 아울러 문화융성을 꼽았다. 문체부에서는 새로운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서 주관하여 왔던 문화도시조성 사업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도시조성 사업은 도시의 경제ㆍ사회ㆍ문화적인 특성을 살려 개성 있고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역사도시보존육성 사업과 유사하다.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에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정비를 위한 주거환경개선, 한옥단지 조성, 왕궁 터 발굴, 옛길과 물길 복원, 주민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 위주로 수립되어 있다. 특히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업은 주민지원 사업이다.

잘 정비된 전주한옥마을
주민지원 사업의 목적은 지역내 거주하는 주민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복리 증진을 위해 추진하도록 편성되었다. 주요 사업으로는 소득증대사업, 복리증진사업, 주택수리 등 주거환경 개선 사업, 도로ㆍ주차장ㆍ상하수도 등 기반시설 개선사업, 주민의 생활편익ㆍ교육문화사업 등이다. 이들 사업은 적절한 행정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역사문화도시 조성계획에 따라 일관성 있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서울 북촌과 전주 한옥마을의 경우 주민지원사업으로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은 물론 지역경제가 활성화 되고 부동산 가치의 상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업도 정부의 예산 확보 없이는 추진이 어렵다. 특히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과 같이 많은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은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하다. 그동안 우리는 선진국의 잣대가 경제 수준에 맞춰져 있어 경제지상주의 정책을 펴왔다. 문화정책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고, 문화재 관리 예산 확보는 공염불이 되었다. 지난 정부 5년간 문화재청 예산은 정부 예산의 0.17%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문화재청 예산을 임기내에 정부 예산의 2%까지 확보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국책사업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조경인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추진하는 사업이다. 아무리 좋은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해도 주민들의 동참 없이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의 사업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역사문화도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 홍보사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역사문화환경과 경관에 대하여 전문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전담조직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주민참여형 추진체계 구축. 즉 민관학 거버넌스 체계확립은 지속가능한 사업 추진의 전제조건이 된다. 지금까지 추진 방식인 관중심 사업추진 체계가 주민참여형 추진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민관학 추진체계는 사업의 전개과정에 따라 주체별 역할의 무게중심이 유기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즉, 역사도시의 생성기에는 행정 및 전문가, 성장기에는 지역전문가, 정착기에는 지역주민과 시민단체가 중심역할을 하여야 한다. 역사도시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어 역사도시를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관주도가 아닌 주민 주도의 역사도시를 가꿀 수 있도록 하는 주민참여를 지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은 30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적인 사업이므로 자생력을 갖춘 주민자치 조직이 시행주체가 되어 책임과 이익을 나누어야 한다.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은 기관장 한 사람의 힘이나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사고와 책임을 가진 시민이 참여하여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일본이나 유럽의 선진사례에서 보듯이 주민협의체를 구성하여 행정기관과 협동하여 긴 시간을 가지고 가꾸어 나간다면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역사도시가 만들어 질 것이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함께 도시개발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전개되고 있다. 조경 전문가들의 뜻과 힘을 모아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도시를 물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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