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대 영남대 교수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대구에서는 디자이너가 제안한 안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타부서소관 용역최종보고회에서 자신은 대구출신은 아니라고 밝힌 제안 설명자가 마지막에 기어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해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이었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지요. 결과가 부족하니까 지적하는 것 아닙니까?” 자문교수도 권위에 기분이 상한 듯 지려고하지 않았다. 실랑이하듯 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주고받았다. 회의장은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고, 담당직원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두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듯이 느꼈다. 마치 용역수행자는 “참 답답한 동네야, 지금 어떤 시대인데…”이라며 속으로 비웃는 것만 같았고, 자문교수는 “여기가 어딘데 함부로 성질부리려는 거야…”라며 윽박지르는 것만 같았다. 양측 공방을 들으며 나는 애매하고도 미묘한 입장이 되었다. 용역회사입장을 옹호하려니 성과물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하는 어려움이 있고, 자문교수의 지적에 맞장구를 치려니 용역관리부실로 비쳐질까 염려되었다. 딜레마는 양쪽 다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 솔직히 배타적 지역정서가 외지업체의 용역관리에서도 감정적으로 쌓이다보니, 이런 데서도 불만이 표출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어디에나 있듯이, 새로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된 디자인행정이 지닌 한계일까? 그것은 단순히 ‘갑과 을의 구조문제’가 아니었다.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용역발주업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나는 공직을 수행하면서 이렇듯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불만인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본부 초창기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고자 도시디자인행정실천을 위한 지침과 가이드라인구축이 절실했다. 기왕이면 대구시만의 고유하면서도 효율적인 기준을 만들고 싶었다. 아울러 ‘시범사업’을 통해서 예시적으로 보여야 했다. 예산을 겨우 확보하고 실행을 위한 용역을 발주하게 되는데, 문제는 발주방식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가능하면 설계경기, 즉 공모를 통해 최상의 작품을 선정하고, 이를 감리하면서 시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사업들을 전부 공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비용문제도 중요했다. 부득이 대부분 ‘제안에 의한 입찰’을 통해서 용역업체 또는 학술단체를 선정하게 되는데, 그나마 을의 능력을 사전에 가늠할 기회는 생겼다. 그런데 또 다른 복병이 있었다.

본부에서 수행한 디자인전문용역조차도 효과적인 성과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큰 원인은 이해차이와 소통문제 같았다. 사실 디자인의 질적 정도를 사전에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하니 서로 같은 것을 두고 다른 그림을 그렸다가, 나중에 맞니 틀렸니 하게 된 것이다.

조금 더 살펴보면, 먼저 갑이 용역기획 자체를 부실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과업지시서가 있으나, 내용 중 많은 부분은 일반적인 계약사항이고 정작 해당과업의 내용을 다루는 부분이 명확하지 못할 수 있다. 담당자는 그런 것을 잘 모르니 외주를 주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일반적 설계시공과는 달리 디자인기획과 가이드라인구축 등의 경우 용역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이며 무엇을 다루어야할지 초기단계에서 더 신중했어야 했던 적이 있다. 특히 디자인철학이랄까 근본적인 방향에서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갑이 을을 너무 믿거나 무관심하게 내버려두는 경우도 있다. 타부서에서 이런 경우가 생겼을 때, 남의 소관에 참견(?)하는 꼴이 되지만, 나는 대구시 전체와 시민을 생각하면서 ‘시어머니 잔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반대로 갑이 너무 참견하고 요구를 많이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종종 그랬다고 실토한다. 디자인소통의 문제이니, 분명히 어떻게 하자고 합의가 되었는데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것이다. 디자인용역은 내용과 질의 문제다. 미미한 차이도 나중에 크게 날 수 있고 세심하게 상호조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듯해도 일반해가 될 뿐이다.

을의 문제로 황당한 경험이 있으니, 너무 무성의한 부족한 엔지니어링회사를 만난 일이었다. 동구의 야심찬 프로젝트였지만, 단순입찰을 통해 선정되었는데, ‘을의 을의 을’(?)같은 하청업체로 보였다. 과연 이 방면 전문가가 맞나하고 회의가 들었고, 심지어 일부는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만 같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답답할 정도였는데, 늘 답변은 수정하겠다, 보완하겠다하면서도 나중에 보면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정말 비용이 아까웠고, 원청업체의 사장이 원망스러웠다.

반대로 을이 너무 주장이 강한 경우도 있었다. 본부가 중요하게 추진했던 ‘대구시 공공디자인가이드라인 구축사업’ 용역의 착수보고회 때 일이다. 용역업체 사장과 담당자는 물론 관련업체의 전문가들과 여러 교수들도 함께 왔다. 나는 퍽 반가웠다. 화려한 용역팀 구성에 큰 기대를 하였다. 첫 자리에서 마치 나를 가르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일이 추진되면서, 그들은 잘 보이지 않았고 나중에는 엉뚱한 사람들이 오기도 했다. 문제의 원인은 또 있었으니, 갑과 을의 시각차이, 즉 소위 말하는 ‘공공디자인’ 전문가와 내가 보는 공공디자인의 해법에 큰 괴리가 있었다. 너무 달랐다. 아마도 을은 전국을 대상으로 공공디자인을 주장하며 늘 하는 방식으로 그냥 일처리를 하는 매너리즘에 빠져있었기에, 우리 본부의 새로운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여 마무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본부의 이주무관과 둘이서 결과물 내용을 하나씩 직접 대폭 수정하는 홍역을 치렀다. 이 용역은 본부 출범이후 처음 겪은 제일 어려운 작업이 된다.

성공적인 용역을 위해서는 갑부터 내부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험상 관리하는 갑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나 집단 혹은 직책부류의 성향을 나누어보면, ①진정프로형,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여 가장 바람직하게 처리하지만 드물다는 것이 한계다. ②향토권위형, 경험이 많고 원만하게 처리하지만 우물을 벗어나기 어렵다. ③개혁형, 새로움을 추구하나 사전검증이 문제이며, 담당직원들이 어렵게 된다. ④반풍수형, 스스로 디자이너로 자부하지만 자기착각의 독불장군이니 추진력은 있으나 외통수로 빠질 위험이 크다. 갑의 의사결정권자로서는 당연히 진정한 프로가 되든가 그런 전문가를 잘 활용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쟁점이 되었던 것은 건설경기의 어려움에 따라 입찰의 지역제한을 두는 문제였다. 나는 적어도 디자인용역만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역이나 배경문제가 아니고 누가 하든 원하는 소기의 성과를 얻으면 된다고 보았다. 수도권에 속하지 않는 대구지역은 유능한 전문업체의 풀이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어려운 지역사정을 감안해서, 기왕이면 지역의 업체가 일을 맡는다면 지역경제와 지역디자인업계의 발전을 위해서 더 좋을 것이다. 특히 지역사정에 밝으니 원하는 것을 신속히 잘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끼리”라는 자충수는 두지 말아야하고, 너무 가까워서 발목을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지역의 업체진흥과 지역디자인의 발전 사이의 딜레마였다. 여기서 큰 과제의 하나는 어떤 방법이든 지역의 도시디자인관련 전문가와 전문회사를 많이 육성해야하는 것이다.

용역은 소비자가 필요해서 관의 중재에 따라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일이다. 당연히 갑과 을의 긴밀한 관계가 중요하다. 중요한 사실 하나는 용역업체도 비즈니스이다. 이윤을 낼 수 있도록 적절한 대가를 보장해야 한다. 나아가서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대우해서 보다 우수하고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자극하고 유도해야 한다. 을이 볼 때 갑의 일은 일상적 여러 업무 중의 하나이지만, 갑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유일한 일이다. 자칫 공무원의 책임까지 추궁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도시디자인용역은 갑과 을이 힘을 합쳐서 새로운 성과를 창작해내는 신나는 일이 되어야하겠다. 그 하나하나가 쌓일 때 우리의 도시와 국토가 더욱 멋지게 될 것이다. 적절히 용역을 관리하여 예산의 낭비도 줄이고 소기의 성과를 얻어야 한다. 갑과 을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소통하고 팀워크를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관리자는 전문가를 잘 알아보아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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