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미국 뉴욕 지하철역에서 한인 남성이 흑인 노숙자에 떠밀려서 전동차에 치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 했다. 선로 위에 떠밀린 한인 남성이 전동차에 치이기까지의 시간은 22초가 경과 됐는데 이 상황을 49차례나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 사진가가 있었다.

뉴욕 포스트 신문 1면에는 달려오는 열차를 몇 미터 앞에서 바라보며 지하철 승강장에 한 손을 올리고 서있는 희생자의 사진이 실려 있고 ‘선로에 떠밀린 이 남성은 죽기 직전’ 이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크게 인쇄되어 보도가 됐다.

보도 이후 뉴욕 지하철 한인 사고 장면을 촬영한 사진 기자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수십 차례 촬영을 할 시간이 있었으면 구출을 해야지 촬영을 했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사진기자는 기관사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려고 플래시를 터뜨렸다고 변명을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2초 사이에 주위에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더욱 경악할 일은 사고 후에 피해자가 승강장에 끌어 올려 진 이후에 사람들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휴대폰에 담는 데 혈안이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현대인의 관찰자의 모습이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2001년 일본에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다 숨진 한국 유학생과 일본인 카메라맨이 함께 희생이 됐다.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국민들을 놀라운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남의 위험을 보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적극적인 개입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이 오히려 송구스럽다.

1993년에 수단 내전 참상을 사진으로 고발하여 이듬해 퓰리처 상을 받은 사진 작가가 있다. 한 소녀가 굶주림 때문에 머리를 들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으며 그 뒤에 침을 흘리며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인데 소녀를 구하지 않고 참상만 보도한 관찰자의 모습에 비난이 거세게 일자 그는 트라우마를 못 이기고 자살을 했다.

반면 오랜 수단 내전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 교육과 의료 등으로 지역 주민을 죽음의 그늘에서 구제한 고 이태석 신부의 경우는 감히 영웅이라고 부르기도 외람스러운 적극적인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조경계의 처한 모습이 모두들 위기라고 한다.

전동차가 달려오는 지하철 선로 위에 서있는 모습이 어쩌면 조경일 수도 있다. 내가 아니라고 모른 체 한다면 내가 그 상황이 될 수 있다.

우선 함께 나서서 구출을 하고 그 다음에는 뒤에서 떠밀어도 선로에 떨어지지 않는 장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조경이 처한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관찰을 해야 하는지 개입을 해야 하는지의 결심은 조경인의 몫이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키워드
#김부식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