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규(푸르네 객원 정원사·영국 에식스대 위틀칼리지 박사과정)
시대를 이끌어온 디자인 트렌드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탄탄한 철학적인 지지를 얻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오랜 시간을 통해 사회적·문화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 대중들이 아름다움을 보는 관점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게 되고, 이렇게 모인 관점의 결과물인 디자인을 통해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요즘은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그 주기가 더 짧아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대중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디자인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디자인은 임펙트한 등장과는 달리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또한 디자인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데 그 변화를 살펴보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무한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사회적·문화적 공감대란 결국 인간의 역사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경제, 권력, 문화 등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통해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인간의 역사가 흘러왔지만, 전체를 살펴보면 그 패턴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디자인의 변화는 각 시대적 가치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하며, 그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보인다.

정원도 유사한 모습으로 발전하여 왔다. 정원 디자인은 보다 더 시대적 상황을 민감하게 담고 있는 건축 사조를 따라서 변화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변화할 때 새로운 형태의 정원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관계란 ‘권위적인 통제’와 ‘자유로운 소통’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이는 시대적 상황이나 문화적 흐름에 의해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여 왔다. 특히 영국의 정원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반복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시대별로 이름은 조금씩 다르게 불렸지만 때로는 자연에 대한 권위적인 통제를 통해, 때로는 자연과의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시대별로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왔다.

17세기 이전의 영국 정원은 식물의 종류, 디자인의 형태, 정원문화의 모습에서 이전 시대와 이웃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본래 영국 영토는 빙하의 영향으로 식물의 종류와 수가 빈약했기 때문에 주변 나라의 식물을 유입하는데 적극적이었고, 이 때 정원의 형태와 문화도 함께 흘러 들어오게 된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다양한 왕조가 나라를 다스리면서 여러 민족이 섞이다보니 주변 나라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의 사회분위기와 디자인 사조에 따라 영국 정원도 함께 발달하게 되었다.

영국정원이 정원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때는 로마가 영국을 점령할 당시부터였는데, 로마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일정한 형태의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로마 스타일이었지만, 영국의 기후와 크기에 맞게 재창조되어 영국식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도시가 발전하고 사람들이 한곳에 정착하면서 수도원과 성 안에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통제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중세의 약초원(Physic Garden)이나 키친가든(Kitchen Garden), 과수원(Orchard)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중세 암흑기가 끝날 무렵에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인간 스스로 자연을 통제하는 인간 우위적인 정원이 발달하게 되고, 17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권위적인 디자인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이후 식물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에 대한 ‘권위적인 통제’가 아닌 ‘자유로운 소통’을 위한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고, 영국의 풍경식 정원이 대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어 풍경식 정원에 다시 권위적 요소가 등장했으나, 시민계급의 성장이후 풍경식 정원이 공원으로 발전하면서 ‘권위’는 또다시 ‘소통’으로 변화되었다.

다양성이 공존하기 시작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정원은 이 두 가지 스타일이 공존하게 되었다. 공원은 권위적인 통제와 자유로운 소통이 공존하면서 더욱 다양한 정원의 모습이 되어졌다.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에 의한 와일드 가든(Wild Garden)과 레지날드 블롬필드(Reginald Blomfield)에 의한 정형식 정원(Formal Garden)이 이러한 두 가지 스타일을 대표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것 같은 스타일이지만 영국정원은 오히려 전혀 다른 두 가지 스타일의 대비를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공존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하나의 정원을 각기 다른 규모의 공간으로 나누어 큰 공간은 거친 자연의 모습으로, 주택에 인접한 작은 공간은 사적인 공간으로 정형적인 스타일로 만들어서 두 공간을 서로 자연스레 엮어 하나의 정원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공존의 시도는 윌리엄 로빈슨의 와일드가든에서 영향을 받은 거트루드 지킬(Gertrude Jekyll)의 ‘다양한 식물의 조화를 바탕으로 한 정원 디자인’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조화가 아름다운 정원으로 시씽허스트 정원(Sissinghurst Garden)을 꼽을 수 있다. 시씽허스트 정원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정원으로 손꼽히며 해마다 수십만 명이 정원을 즐기기 위해서 방문한다. 이곳은 여류 작가 비타 섹빌 웨스트와 그의 남편 헤롤드 니콜슨이 만들고 가꾼 정원으로 권위적인 통제와 자유로운 소통이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정원 디자인에 있어 큰 대조를 보인다. 헤롤드는 정원을 권위적인 통제를 통해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외교관이었던 그는 콘스탄티노플 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 본 페르시아 정원의 기하학적인 패턴은 그가 정원을 가꾸어 가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비타 또한 페르시아 정원에서 정원의 원리를 발견했다고 회고하면서 "정원에서의 기하학적인 질서는 외부세계의 무질서로부터의 구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비타는 보다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풍부한 자연을 즐기는 것을 더 좋아했다. 헤롤드의 ‘권위적인 통제’는 정원에 질서를 부여한 반면, 비타의 ‘자유로운 소통’은 다양한 색채와 질감을 가진 식물들을 통해 사계절 내내 조화로운 정원을 만들었다. 통제와 소통이 정원 안에서 어떻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지 보여 주고 있다.

영국에는 이러한 조화를 아름답게 생각할 수 있는 문화적인 공감대가 오랜 역사의 반복을 통해 형성되었고, 지금은 시대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조화로운 정원이 여기저기에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정원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권위적인 통제? 아니면 자유로운 소통? 어떤 모습을 더 가치 있게 우리 사회가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그 어떤 생각도 없이 가장 아름다운 외국사례의 사진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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