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마포구 염리동에서 실시된 '범죄예방 프로젝트' 시범사업에 지역 주민들이 골목 환경디자인 작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범죄의 심각성이 문제시 되면서 정부, 지자체, 건설업체 등 관련업계에서 CPTED를 적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정부는 도시공원에 CPTED 도입을 의무화를 추진하고, 지자체는 조례 제정 및 가이드라인 마련에 분주하다. 산업계에서는 CPTED를 도입한 상품화 방안 모델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모두가 보다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 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채 10년이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진 CPTED가 급부상하면서 다소 부족한 점과 개선해야 할 점들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경훈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난해 학회 춘계학술대회서 한국의 CPTED 현황과 과제를 발표하며 “현재 우리는 CPTED 도입단계를 넘어 적용단계다. 앞으로 정착을 위해 CPTED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제도적 장치와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단편적 연구진행과 실무자용 자료 미흡, 관련 공무원 이해부족으로 연구성과의 현장적용에 어려움이 많다.

또 현재 적용되고 있는 CPTED 방안이 대부분 CCTV 설치 같은 보안시설 강화에 편중한 나머지 공간적 개념이 부재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되고 있다. CPTED가 활성화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지원 방안도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CPTED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민 참여가 외면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민근 본지 편집주간은 “지역 주민 의견이 배제되고 규격화된 CPTED 기준의 무조건적인 적용은 범죄예방의 근본적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범죄 요인을 제거하거나 불안요소를 감소하기 위해서는 이를 직접적으로 느끼는 대상지 주민의 의견이 가장 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CPTED 지원 방안과 기본적인 적용 가이드라인을 구축하고 지역 주민 중심으로 지역의 맥락을 이해한 가운데 다양한 CPTED 방법들이 적용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즉, CPTED의 목표인 범죄 예방을 위해 범죄 발생 요소와 위험 요인에 따라 적용 방법이 달라지는데 외부 전문가나 규격화된 기준이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다양한 유형의 방법론을 다룬 방안들은 발표되고 있지만 주민 참여 과정이나 적용 시스템의 반영은 전무한 실정이다. 결국 대상지와 무관한 전문가, 또는 정부나 지자체가 마련한 기준에 무조건적 대입이 실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주민참여 등 커뮤니티 중심의 CPTED 전략도 미비하다. 주민이 생활환경 공간 개선과 관리에 참여하는 것은 안전 확보 뿐 아니라 도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신도시, 신시가지 위주 개발정책에서 낙후된 단독주거지, 학교, 문화재, 공원 등 적용대상 확대가 필요하다. 특히 구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침체된 도심 주거지에 CPTED의 적극적인 도입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일부 보완해낸 사례로 지난 10월 서울시가 처음으로 기존 시가지에 범죄예방 디자인을 도입한 마포구 염리동에서 진행된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 시범사업을 꼽을 수 있다.

서울시의 CPTED 적용 사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은평 뉴타운 조성에도 CPTED를 핵심으로 적용했다. 하지만 은평 뉴타운 조성 당시에는 일방적인 도입이었다면 염리동 사업은 주민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대상지 환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디자인 적용이란 점도 의미를 가진다. 시는 주민들이 범죄나 안전 문제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곳으로 전형적인 달동네인 염리동을 선정했다.

주요 골자는 ▲운동 공간 ‘소금길’ 조성 ▲‘소금지킴이집’ 운영 ▲사랑방 역할 및 24시간 초소기능 갖춘 ‘소금나루’ 운영 ▲다양한 디자인으로 채워지는 ‘담벼락 보수’ ▲지역 주민 참여 ‘자율방범’ 운영으로 정해 진행했다. 도시민 모임공간 확대, 지역공동체와의 상호작용 활성화 등을 주요 핵심사업으로 추진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또한 전문가들이 지역에 적합한 CPTED 기법을 제안하고 적용하는 기술적 지원을 맡았다면 이를 조성하고 이후 관리하는 주체로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형태로 이뤄냈다.

이 외에도 앞으로 CPTED는 건축·설계 뿐 아니라 공공디자인, 제품디자인 등으로 확대, 한국적 특성에 적합한 기법과 무인경비시스템 등 발전하는 건축환경 대응기법 개발 등이 앞으로 더욱 확대 개선돼야 점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CPTED 연구에 조경분야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CPTED를 연구하고 있지만 조경계의 참여는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앞에서 다룬 기사들에서도 보듯 CPTED 기법의 전반에 걸쳐 조경이 핵심 전략으로 다뤄지고 있음에도 조경계 연구진의 참여나 관련 연구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조만간 조경 현장에 불어 닥칠 CPTED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이끌고 나갈 수 있도록 향후 조경계의 깊은 관심과 연구, 고민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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