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규(푸르네 객원 정원사·영국 에식스대 위틀칼리지 박사과정)
앞서 2회에 걸쳐서 영국 정원의 역사와 현재의 정원 문화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영국의 정원은 재배에서 시작한 가꾸는 정원이다’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실제로, 많은 영국 사람들은 다양한 크기의 자신의 정원이 있고, 그 안에서 정원일을 통해 식물들과 소통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 아내가 영국 가정에 초대를 받아 다녀오고 나서 흥미로운 듯 이야기를 했다. 점심 식사 후, 차를 마시려는데 민트차를 좋아하는지 물어서 좋다고 하니 가위를 들고 정원으로 나가서 민트 잎을 따서 바로 차를 우려내서 마셨다고 한다.

장인어른이 지금도 농사일을 하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밭에서 야채를 뽑아 바로 식탁에 올리는 것은 그다지 낯선 광경이 아니다. 그렇지만 정원에서 찻잎을 따서 바로 차를 우려내는 모습은 아내에게도 의외의 일로 느껴진 모양이다. 아마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텃밭과 정원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먹거리만을 재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텃밭에서 나온 채소가 식탁에 올라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름다움으로만 가득 차 있어야 할 것 같은 정원에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정원과 텃밭을 서로 다른 것으로 여기고는 하지만 영국에서는 둘 사이의 간격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영국의 주택정원은 저녁식사를 위해 토마토, 콩, 베리, 허브 등을 심고 가꾸는 작은 텃밭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정원의 아름다움과 정원일의 즐거움 그리고 신선함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을 간직한 ‘키친가든(Kitchen Garden)’의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다.

키친가든은 수도원이나 영주의 성에서 자급자족을 위해 만들어지게 된다. 당시, 수도원이나 영주의 성은 다소 고립된 지역에 많이 위치해 있었고, 교통 또한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선한 야채를 먹는 것이 힘들었다. 따라서 자급자족을 위하여 정원 안에 텃밭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원과는 별도로 많은 ‘얼로트먼트 가든(Allotment Garden, 시민농장)’이 영국의 많은 도시에 한두 곳 이상이 운영되고 있다. 자신의 정원에 채소를 가꾸어도 충분해 보이는데 왜 이토록 많은 얼로트먼트 가든이 운영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그 태생을 들여야 볼 필요가 있다.

영국의 얼로트먼트 가든은 태생이 키친가든과는 조금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그 출생의 비밀을 들여다 보면 키친가든과의 차이를 발견하고, 현재 둘의 역할이 다름을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1649년 제라드 윈스탄리(영국의 사상가)는 ‘영국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땅을 파는 것이 허용될 때까지 자유국가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며 디거스(Diggers, 땅을 파는 사람들)라 불리는 황무지를 개간해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경작하고 소유하자고 하는 운동을 일으킨다. 이것을 영국 얼로트먼트 가든의 시초로 보고 있다.

이 운동은 1년 만에 크롬웰 정부의 탄압으로 실패하지만, 후에 교회나 지주들이 자선-기부의 형태로 가난한 농장 노동자들에게 일정의 토지를 분배하여 스스로 땅을 가꿀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면서 급속히 성장하게 된다. 성장의 배경에는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함께 소통하고자 하는 ‘나눔’이란 정신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영국의 얼로트먼트 가든은 20세기 초 시민계급의 성장과 더불어 150만 곳의 얼로트먼트 가든이 만들어질 정도로 발전한다. 그러나 이후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으면서 3분의 1이 사라지게 되고 1950년대 급속한 도시개발에 의해 그 수가 급속히 감소하게 된다. 또한 농업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도 얼로트먼트 가든의 필요성을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얼로트먼트 가든은 새로운 면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영국사회도 점차 ‘외로움’, ‘단절’이라는 단어가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얼로트먼트 가든이 도시민들에게 이웃과의 소통의 장소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녹지공간은 도시 생태계에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96년에서 2011년 사이 그 면적이 35%나 증가해 현재 약 33만 곳의 얼로트먼트 가든이 영국 전역에 조성되게 되었다. 그리고 원하는 사람들이 급속히 증가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약 9만여 곳의 얼로트먼트 가든이 더 필요하다고 하며 임대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2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스스로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 정원 안에 꽃들을 가꾸고, 이웃과 소통하며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 얼로트먼트 가든에서 채소를 가꾼다. 네모 반듯하게 정해진 구역 안에서 현란한 디자인으로 특별히 튈 수 있는 방법도 필요도 없다. 단지,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면서 이웃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정원일이 서투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면서 행복의 통로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영국의 얼로트먼트 가든인 것이다.

한국에서 도시텃밭 열풍이 불고 있다고 들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디자인에 앞서 얼로트먼트 가든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땅을 가꿀 수 있는 자유를 부여 받은 공간이자 식물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이 사회에 행복을 전달해주는 통로의 역할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 Gravetye Mannor의 William Robinson의 Kitchen Garden
▲ Sissinghurst Garden의 Kitchen Garden
▲ Chartwell Garden의 Kitchen Garden
▲ Chelmsford Allotment Garden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