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규(푸르네 객원 정원사·영국 에식스대 위틀칼리지 박사과정)
영국 역사상 정원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시대를 꼽는다면 에드워드 시대(1901년~1910년)를 들 수 있다. 에드워드 시대는 대영제국(Great Britain)을 완성시켰던 빅토리아 여왕의 뒤를 이은, 우리에게는 영화 ‘킹스 스피치’로 알려진 조지 6세의 할아버지, 에드워드 7세의 재임기간을 뜻한다.

20세기 제국주의가 시작되면서 전 세계 인구의 25%가 영국땅에 살게 되었고, 다양한 문화가 영국으로 유입되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변하게 된다. 특히 막강한 부를 축적한 중산층의 성장이 지금의 영국정원과 정원문화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이들은 새로 확장된 영토의 아름다운 식물들을 부지런히 영국 본토로 실어 나르고 이들을 가꾸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정원일이 더이상 ‘생산’만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정원일은 사회전반에 걸쳐 유행하는 취미활동이 된다.

이들의 취미활동은 1861년 윌리엄 모리슨이 이끌었던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에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하게 된다. 이 운동은 산업혁명 이후 빠르게 성장한 대량생산 방식의 상품보다는 장인의 손길이 묻어 있는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디자인 상품이 더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다시말해, 공장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세련된 상품들을 거실에 놓고 보는 것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과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더 아름답고 우리를 더 즐겁게 해준다는 것이다.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이 지금 영국의 정원 문화 형성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정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고, 다음 시즌에 정원을 가득 채울 아름다운 색깔과 질감 등을 위해 잠시 동안 보이는 빈 땅의 거친 모습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재된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영국정원의 문화는 보는 문화가 아닌 가꾸는 문화이다. 영국인들은 단지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원에 심고 가꾸기 위해서 식물을 구입한다. 스스로 가꾸어야 하기 때문에 식물에 대한 지식, 가꾸는 방법도 알아야하고, 필요한 도구들도 함께 구매하길 원한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곳이 영국 도시의 수많큼 있다는 가든센터이다. 영국의 가든센터는 식물과 정원 용품을 판매하는 장소이지만, 때로는 정원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때로는 그 자체로 훌륭한 정원이다.

영국의 가든센터를 방문하면 크게 두가지에 놀란다. 먼저 매우 다양한 식물의 종류와 정원 용품에 놀라고 두 번째로는 일반인들이 식물을 고를 때 보이는 식물에 대한 높은 식견에 놀라게 된다. 그들은 또한 자기집 정원의 앞으로의 모습을 계산하고 기대한다.

올 봄,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 한분과 가든센터에 간 적이 있다. 자신의 정원에 있는 아치형 트렐리스에 어울릴 클레멘티스를 구입하셨는데 아치 전체를 덮으려면 수년은 더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상상하며 말씀하시는 모습이 이미 즐거워 보이셨다. 아직도 정성스럽게 클레멘티스에 물을 주고 계실 것이다.

영국인들은 정원여행을 즐긴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레저형태가 정원여행이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사 중 한사람인 존 브룩스(John Brooks)는 많은 사람들이 정원을 찾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평화로운 곳에서 하루를 즐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원을 가꾸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하루 즐기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정원에 적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영국인들의 발걸음을 정원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영국 60% 이상의 정원이 대중에게 열려있는 영국의 경우, 정원여행이 정원의 깊이를 더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은 많은 영국사람들을 ‘가든 볼런티어(Garden Volunteer)’로 활동하게 만든다. 영국의 대표정원은 가든 볼런티어들에 의해 가꾸어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왕립정원학회(RHS)에서 운영하는 하이드홀(Hyde Hall) 정원의 경우 70여명의 가든 볼런티어들이 요일별로 팀을 나누어 정원을 관리하고 있다. 1993년에 문을 연 정원이지만, 15년 이상 가든 볼런티어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 대부분이 10여년의 가든 볼런티어의 경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 이분들이 가든 볼런티어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즐겁기 때문이다. 흙을 만지고, 식물을 만지고, 예상치 못하게 새를 만나면서 자신들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그 깊이가 더해지는 정원의 과정을 본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정원을 만들고 가꾸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살아있는 식물로 공간을 채워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주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찍힌 사진 한장에 감동 받아 우리집 정원이 일년내내 똑같은 모습이기를 기대한다. 스스로 흙을 만지는 것은 탐탁치 않게 생각하면서 빠른 시간에 아름다운 사진의 정원을 가지고 싶어한다.

영국의 정원 문화를 바라보면서, 정원은 잘 찍힌 사진 한장을 간직하고픈 욕구가 아니라 풍경화를 그려가듯 나의 정원을 기대하고 가꾸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흙을 만지고 식물과 교감하며 정원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된다면 정원의 깊이도 더해지지 않을까?

▲ 영국의 가든센터① Denmans Garden Centre                                                                           ⓒ 이준규
‘가든 볼런티어’의 행복 영국의 대표 정원은 ‘가든 볼런티어(Garden Volunteer)’들에 의해 가꿔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3년에 문을 연 사진의 하이드 홀 정원은 70여명이 요일별로 팀을 나눠 관리하고 있는데, 대부분 10년 이상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가든 볼런티어를 하는 이유는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 이준규
▲ 영국의 가든센터② Charlecote Garden Centre                                                                         ⓒ 이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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