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는 얼마 전까지 디자인도시를 표방하고 변화를 꾀한 적이 있다.
‘서울을 창의적인 도시, 건강한 생태도시, 품격있는 문화도시, 역동적인 첨단도시, 지식기반의 세계도시’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고품격 디자인도시로 만들어서 점차 전국적으로 디자인 르네상스운동으로 승화시킨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따라서 많은 서울시의 정책이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면 우선시 되었고 다른 분야보다 디자인정책에 힘이 실리는 현상을 낳았다. 서울이 가진 잠재성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모두 표출시키는 희망적인 정책에 많은 시민들이 환영하고 진행상황을 주목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한민국 고질적 현상 중 하나가 단체장이 바뀌면 전임 단체장의 정책의 변동과 함께 불편한 사실이 노출되고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중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당시 서울시장의 ‘DDP를 세계 유일의 디자인과 세계 최고의 기술이 결합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디자인건축물로 건립해 문화, 관광, 경제에 활력을 이끌겠다’는 포부에 기대와 관심 속에서 건설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지금 공정이 85% 진행된 시점에서 다시 시비가 붙었다.
DDP는 지명경쟁을 통한 설계경기에 국내건축가 4명과 외국 건축가 4명이 참여를 했다. 우리나라 건축물의 설계심사에 영어로만 발표(심사위원 7명중 4명이 외국인이므로)되었고 참여작품 중 이라크 출신의 여성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이 선택됐다. 당초 지명경쟁 요건에는 79억의 설계비와 공사비 2300억원 규모를 책정하였으나 막상 설계 계약은 136억의 설계비와 3400억원의 공사비로 둔갑을 했고 계약 10개월 뒤에는 층수 변경으로 155억의 설계비와 4000억의 공사비로 변경되더니 다시 5개월만에 문화재발견의 이유로 현재공사비는 5000억원으로 또 증액됐다. 당초 책정한 공사비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공사비가 소요되는 셈이 됐다.
아마 국내 건축가가 그렇게 했다면 특검에 회부될 정도가 아닐까 싶다. 동대문운동장 터는 역사적으로 비운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훈련도감의 분영인 하도감이 자리했었고 일본의 지원을 받은 신식군대 훈련장소이자 당시 일본인 교관 13명을 살해하는 임오군란의 발상지이다. 이후 일제는 서울성곽을 허물고 경성운동장을 지었고 해방 후 서울 운동장으로 개명된 뒤 각종축구대회와 고교야구 등 추억이 깃든 장소인데 이제 그 추억은 사진 속에서나 찾아보게 됐다.
공사 중에 발견된 하도감터, 어영청터는 보물 1호 흥인지문과 이어진 성곽과 함께 관광벨트가 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으나 공사 장비 소음과 함께 뭉개져버렸다. 또 공사 중 발굴된 고대 로마의 성곽을 연상케 하는 이간수문은 DDP의 부속물이 되고 말았다. 외국에서는 사소한 문화재일지라도 어떻게든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서 간직하는데 우리는 왜 이럴까?
자기 임기 내에 완공하려는 지나친 의욕이 역사를 부숴버리는 결과를 또 맞이하고 말았다. 제발 자기 중심의 지도자는 이제 그만 나왔으면 한다.
[김부식 칼럼] ‘디자인특별시’의 명과 암
- 기자명 발행인 김부식
- 입력 2012.11.15 12:50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