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묘정(성균관대 조경학과 겸임교수·(주)소울랜드스케이프 경관연구소 책임연구원)
어느 한적한 오후, ‘일본전통정원답사’ 란 메일을 받고, 관심어린 마음을 갖고 열어보았다. 평소 일본 전통정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원답사는 한국전통조경학회장 홍광표 교수님의 지도하에 3박4일 일정으로 나라 및 교토일대를 탐방하는 것으로, 주로 나라시대(평성궁), 겸창시대(건인사), 실정시대(금각사, 은각사, 대덕사 대선원, 용안사 방장), 도산시대(이조성 이지환정원) 및 강호시대(시선당, 만주원, 섭성원, 고대사, 원덕원) 등 평안시대(헤이안)만 빠지고 두루 섭렵하고 있었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이 기회에 골고루 다녀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답사일행은 당일에 인천공항에서 만났으며, 의외로 인원은 단촐해서 참가자는 모두 10명이었다.

첫째 날, 우린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했고, 바로 교토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처음 들린 곳이 사적인 ‘시선당(詩仙堂 : 시센도)’이었다.

▲ 시선당 입구문
한적한 교토 교외의 골목길을 걸어가다 소박한 입구가 눈에 띄는 그 곳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측근인 이시카와 조잔이 도쿠카와 막부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 은둔생활로 일생을 보낸 곳이다.


그는 서도와 예서에 능했던 무장이면서 문인이었다. 중국의 36시선(詩仙)의 상을 주실 벽에 걸어놓아서 시센도라고 칭했다 한다. 입구문은 대죽으로 소박하게 지어졌고, 죽림으로 연결된 고요한 입구부를 지나면, 앞뜰에는 흰모래를 깔고 다듬어 놓은 선원정원과 안뜰에는 죽책과 비폭 같은 물받이 통(소즈), 작은 폭포, 지당 등의 회유식 정원은 문인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혼합된 형태의 평정원 양식을 띠고 있었다.

▲ 그림 1-12. 만주원 가는 초입부
은둔과 맥락을 같이해서 일까, 문득 소쇄원의 정취가 느껴졌다. 11월의 단풍이 좋다고 하는데, 아직 이른 감이 있었다. 시선당을 나와서 우린 다시 시골의 한적한 길을 따라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다다른 곳이 만주원(曼姝院 : 만슈인)이었다.

만주원은 명승으로 강호시대 초기 료쇼친왕에 의해 조성된 서원정원이다. 만주원의 긴 초입부를 지나니, 협문 같은 아담한 대문이 나왔다. 자갈로 꾸며진 작은 정원을 지나 대서원으로 들어갔다. 대서원 마당에는 모래 위에 학섬, 거북섬 등의 섬이 조성되어 있었고, 수령이 400년쯤 된 소나무는 마치 학이 길게 늘어서 이동하는 형상이었고, 거북섬도 주변에 자갈을 두고 중앙에 조성되어 있었다.

▲ 만주원 거북선
시선당(1641)과 만주원(1656)은 교토에 인접하고,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다. 시선당이 은둔을 위해 조성되어서인지 문인이 지향하는 자연에 더 가까웠고, 만주원은 학이나 거북의 의미를 담은 섬을 조성하여 신선사상과 음양사상을 내포하고 있어서인지 인공적인 미가 더욱 두드려져 보였다. 

둘째 날, 이른 아침부터 우린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오늘의 일정이 빡빡해서였다. 내심 즐거웠다. 실정시대의 초기 서원조 정원양식인 금각사, 은각사, 실정중기의 고산수정원의 절미인 대덕사 대선원과 용안사 방장선원 그리고 도산시대의 서원조 정원의 절정인 이조성 이지환 정원까지 기대가 자못 컸다. 답사장소는 여건에 따라 이동하였지만, 내용은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시대별로 하였다.

먼저, 사적과 명승인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 즉 자조전으로 향했다. 은각사를 가는 노선에 ‘철학의 길’이란 한적한 장소가 있는데, 여기는 일본의 괴테로 불리는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산책하는 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은각사는 금각사(킨카쿠지) 보다 100년 늦게 세워졌지만, 금박을 입힌 금각사처럼 은박을 칠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은각사를 더 선호하며, 문화예술사인 면에서도 은각사의 위상이 높다고 한다. 선사상과 다도를 선호하는 일본인의 취향에 더 맞아 떨어져서인지도 모른다. 은각사는 제3대 쇼군 조부의 금각사를 모방하여 건립한 것으로 관음전을 은각이라 통칭한데서 나왔다. 

▲ 은각과 향월대 그리고 은사탄 전경
본전인 방장 앞에 흰모래로 특유의 무늬를 내어 쌓아올린 은사탄과 달을 감상하는 향월대, 바닥을 한층 높인 상지간에서 밖을 감상하는 전형적인 서원조 건물인 동구당 등을 대표할 수 있다. 때마침 우리가 방문한날 동구당 지붕에 한 마리의 학이 자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녹원사라고도 하다. 의만의 별장인 북산전을 선사로 개조한 것으로, 금박을 입힌 사리전(관음전)을 금각이라 부른데서 유래하였다. 북쪽은 수렵과 사원지로 유명하고, 서남쪽의 의립산을 차경하고, 하천과 평야가 펼쳐진 자연환경이 수려한 곳이다.

▲ 금각사의 금각
현재는 금각중심의 원지와 안민택이란 연못, 용문폭포가 있다. 원지에는 ‘경호지(鏡湖池)’와 극락정토인 ‘칠보지(七寶池)’를 조성하여 불교 정토세계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명승지 곳곳의 표지판 및 설명판은 금각사의 표지판과 같이 장소의 정체성을 살려 친환경소재를 사용하고 있었다.

금각사와 은각사를 뒤로 하고, 우린 다시 축산고산수 정원을 대표하는 대덕사 대선원(다이토구지 다이센인)을 방문하였다. 대덕사 경내는 많은 사원과 암자로 구성되어 있었고, 애석하게도 대선원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영상을 담지 못했다. 때마침 특별 개방일을 맞아 용원원(龍源院)이 개방되었는데, 축산고산수정원의 색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비교한다면, 축산고산수에는 약간의 수목과 식물이 등장하지만, 평정고산수에는 모래와 바위, 약간의 이끼류만 존재하기 때문에 선원의 느낌이 더 한 것일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용안사(龍安寺:료안지) 경내는 회유식 지천정원으로, 방장 건물 내 석정에 평정고산수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세월의 향기와 지극히 단순함에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이조성 이지환 정원(二條城 二之丸庭園)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형적인 서원조 정원이다. 작정자는 소굴원주이며, 서원의 주전(主殿)을 접객과 대면의 장소로 활용하여 주종관계를 부각시키는 구성으로, 어전의 대광간(大廣間) 즉, 최상위 공간인 “상단의 방” 시점에 주안을 두고 정원을 배치한 일점좌관(一點座觀)의 원리가 적용된 곳이다.

주시선이 머무는 곳이 연못 북서쪽의 폭포이며, 전면의 축산석조, 그 연장선상에 천수각(지금은 터만 있는)이 조망된다고 한다. 이조성 외곽은 다른 성들처럼 해자로 둘러싸여 있고, 건축물이나 정원의 규모는 대명들을 압도하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41-48)

셋째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가을 분위기도 스산하였다. 일행은 나라시대의 유적지인 “평성궁 동원정원(平城宮 東院庭園:헤이죠우큐우 토우인)을 찾았지만, 도착한 곳은 복원된 성문과 주작대로로 펼쳐진 평성경터였다. 동원정원은 궁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걸어가기는 좀 멀었지만, 애지중지하는 카메라 보호맨들의 성화에 타고 온 차로 이동을 하였다. 대극전의 동쪽에 있어 동원(東院)이라고 하였다.

도착하니 누각 한 채와 붉은 색의 반교와 난간, 곡수지와 연결된 원지가 눈앞에 들어왔다. 신라 안압지를 모방하였다고 하지만 지안(池岸) 부분이 조금 다른, 오히려 경주 구황동 원지나 용황동 원지와 유사하다고 하시는 홍교수님의 말씀대로 나라시대 후기는 통일신라시대 축조된 정원과의 관계를 따져보는 것이 좋은 연구가 될 것이다.(그림49-52)

그 다음으로 발길을 돌린 곳이 평성경 궁적정원(平城京左京三條坊宮跡庭園)으로 곡수유구였다. 특별명승으로 곡수유구인 원지가 입수구와 출수구가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그림53-56)

답사 마지막 날이었다. 홀가분하게 떠난 여정에 종지부를 찍고, 짐을 꾸려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점에서, 첫날 못 간 동본원사(東本願寺 : 히가시혼간지)의 별저 섭성원(涉成園:쇼세이엔)을 갔다.

입구에서 본 동본원사의 규모도 대단했지만, 5분정도 떨어져 있는 섭성원의 면적(축소된 현재 가로X세로, 각200m)도 대단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 문장에서 이름을 따 붙였다고 한다.

히가시산을 배경으로 동쪽에 연못, 서쪽에 건축물이 배치되어 있었고, 연못 내에는 크고 다른 세 개의 섬, 다리위의 낭교, 산기슭의 다실, 첫 답사지인 시선당을 작정한 이시카와 조잔의 작품으로 여기도 은둔을 위해 조성된 것으로 문인정취가 많이 나는 지천 회유식 정원이다.(그림57-63)

채색되지 않은 건물들과 소박한 소재로 정원 내를 13경으로 표현해 놓은 곳이다. 답사기간동안 보지 못했던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을 모두 토해내는 것 같았다. 우리가 머문 짧은기간 어느 듯 든 단풍이 가을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공항가는 시간에 여유가 생기자, 홍 교수님의 열정으로 우린 몇 개의 사찰을 더 보게 되었다.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인 건인사(建仁寺:겐닌지)(그림64-66),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추모하기 위해 정실인 네네가 세운 사찰 고대사(高台寺:고다이지)(그림67-69)와 그녀가 일생을 보낸 원덕원(圓德院:엔토쿠인)을 돌아보았다.

고대사와 원덕원은 한 공간에 있었고, 교토의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 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지면의 한계로 다음기회로 미루기로 하며, 3박4일간의 일본전통정원답사는 며칠이 지난 아직까지 마음속에 설레임으로 남는 곳이다.

유교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생활 속에 중국보다 더 깊이 자리잡은 것처럼, 도교의 선사상이 일본인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정서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큰 의미를 갖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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