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오전 9시, 서울광장에 10개의 팀이 모였다. ‘의자를 설치하라’를 주제로 서울 도심 10개소에서 동시 진행되는 ‘Take Urbam in 72Hour’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서울시가 개최한 이번 행사는 2일부터 4일까지 총 72시간에 걸쳐 전문가와 시민, 학생으로 구성한 10개의 팀이 도심 자투리 공간을 ‘재창출’하는 작업이다.
이들 10개 팀의 3일간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자. <편집자 주>
11.2(금) - 1일차
09:00 (0Hr) - 대상지 추첨, 희비가 엇갈리다
아침 기온이 1℃까지 내려간다고 했던가. 기상예보가 추위를 예고한 이날, 싸늘한 아침바람 해치며 서울시청 앞 광장에 속속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부터, 자못 진지한 눈빛, 조금은 들떠 보이는 사람들까지 서울시 조경과 직원들이 가져온 추첨함으로 시선을 모은다.
조경·건축·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 학생, 시민으로 구성된 각양각색의 10개 참여 팀이 저마다 변화시킬 공간을 추첨하게 된다. 그야말로 복불복. 추첨이 진행될수록 참여팀들의 표정 또한 천양지차. 예상됐던 혹은 생각지도 않았던 곳인가, 환호하거나 고민에 빠지거나…
모든 대상지가 정해지자 곧 바로 72시간 미션이 시작됐다. 각 팀은 대상지로 이동해야 한다. “내가 변화시킬 이 곳, 도대체 어떤 곳인가? 그리고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12:00(3Hr) - 대상지와 만나다
지하도로, 차도 사거리 교통섬, 골목길 자투리 땅 등 평소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에 ‘의자를 설치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각 자치구 담당 공무원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팀들은 대상지를 둘러보며 상상력을 끌어낸다.
‘버스정류장인데 시민들 앉을 곳이 없네?’, ‘바쁜 직장인들이 무심코 지나치던 감나무’, ‘동네 부랑자들의 술판으로 변질된 골목 어귀’ 등.
이제 참여팀들은 대상지에 담긴 이야기들을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하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
15:00(6Hr) - 아이디어 전쟁, 설계 회의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다. 막막했던 첫 인상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당초 구상했던 콘셉트를 어떻게 구현시킬 것인가. 각자 팀들은 대상지 앞에서 벌벌 떨며 머리를 쥐어짜거나 가까운 커피숍으로 피신해 마라톤 회의를 이어갔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기성 조경가를 비롯해 건축·조형·목공분야 등 관련분야 전문가들을 비롯해 학생, 일반 직장인, 또는 가족 등 다양한 인물들이 팀을 꾸려 진행하는 것. ‘어떤 의자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전문가 뿐 아니라 모두가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18:00(12Hr) - 설계와 시공계획 수립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른다. 아직까지 대상지는 현수막만 덜렁덜렁. 콘셉트 회의를 마치고 어느 정도 설계까지 끝난 팀은 부랴부랴 자재 구입하러 떠난다. 일부 대상지에는 벌써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반면 아직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팀은 마라톤 회의가 이어진다. 밤이 깊어간다. 내일 오전부터는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벌써 하루가 지나고 이틀 남았다.
11.3(토) - 2일차
9:00(24hr)- 자재반입, 시공 시작
해가 뜨자마자 공수된 자재가 들어오고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어제 내내 구상했던 설계를 엎었습니다. 지난밤 새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요”(유원대 Of'er 팀장)
밤샘 고민의 결과물을 토대로 목재와 금속 파이프, 아크릴 판 등 다양한 자재와 발전기, 전기톱, 망치 등 필요 장비가 대상지에 갖춰지면서 시공에 돌입한다.
당초 구상과 시간여건, 현장 상황에 따라 자재나 설계 변경도 수시로 일어났다. 이제 시작했거나 아직 시작 전이거나. 작업 속도가 빠른 일부 팀들은 이미 한참 공사 중이다. 이제 완공 시점에 맞추려면 속도를 올려야 할 때다.
13:00(30hr) - 반응하는 서울시민들
“여기서 뭐 만드세요?”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톱질 소리와 뚝딱뚝딱 망치소리에 지나던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몇몇 팀들은 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설명에 나서기도 했다. 직접 제작한 유인물을 배포하며 시민과의 소통에 나서거나,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설계에 반영하거나. 광화문 앞 교통섬에 만들어질 의자에는 시민들의 낙서가 하나하나 채워져 간다.
물론 모든 작업 공간이 시민들의 지원 속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번화가에서는 자기 건물 앞에 무엇을 만드는 게 불만인 사람도 있고, 어디서는 오히려 주거환경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주민들의 민원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23:00(40hr) - 야간작업 또는 철야작업
내일은 비 소식도 있다는데, 둘째날 밤은 속도 없이 깊어만 간다. 어떻게든 작업 속도를 높여야 하니 마음은 급하다.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지만 대부분 작업이 한창이다. 슬슬 이제 모양새가 갖춰지고 있다. 특별초청팀과 작업이 빨랐던 일부 팀을 제외하면 모두 밤샐 채비를 한다.
작업에 지치고 출출해진 배를 ‘야식’으로 달래면서도 야간작업을 대비해 여기저기 조명을 설치하기도 한다. 집에 가서 자는 팀원이 있는가 하면 현장을 지키기 위해 텐트나 작업차량을 이용해 불침번을 서는 팀원도 있다.
이틀째 밤에도 ‘72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11.4(일) - 3일차
9:00(48hr) - 계속되는 시공 ‘누가누가 잘하나’
작업 마지막 날이다. 이틀 전 싱싱했던 팀원들 얼굴들은 공통적으로 초췌해 보인다. 대부분의 팀들이 늦은 밤까지, 혹은 밤샘작업을 강행한 덕이다. 하지만 ‘괜찮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요 재밌어요”라는 답이 되돌아온다.
대부분 참여팀 작품들이 모양새를 갖춰간다. 특별초청으로 참여한 ‘EAST4’팀은 완공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다른 팀들이 가야할 길은 조금 멀다. 모양새가 갖춰갈 수록 시민들의 관심은 더욱 커져간다.
유일한 실내 공간인 ‘경복궁역 지하통로’에서는 지나는 일반 시민에게 붓을 쥐어주고 직접 색을 칠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을지로역 입구에 조성되는 정원에는 어린아이들이 직접 꽃을 심기도 했다.
그나저나 어서 작업을 서둘러야한다. 곧 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비가 내리면 전기를 이용한 작업이 어려워 목재나 금속 절단, 용접 등이 더욱 힘들어진다.
21:00(60hr) - 비 맞으며 야간작업까지
큰일 났다. 우려했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천막을 치고, 비를 막기 위한 비닐도 치고 대비를 했지만 걱정이다.
용접이나 절단 등 전기 작업은 서둘러 마무리 됐다고 하더라도 도색작업이 남은 팀들은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비가 오다보니 바람도 차다.
작업환경은 점점 열악해지는데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빠른 팀들은 마무리 작업에 매진하고 늦은 팀들은 오늘도 철야다. 이제 내일아침 9시면 작업 종료, 골라인을 향한 참가자들의 손은 여전히 분주하다.
11.5(월) - 종료
09:00(72hr) - 내가 만든 의자, 서울시민에 출생신고
모든 프로젝트가 종료됐다. 3일, 총 72시간 동안 10개팀이 추위와 비를 맞으며 제작한 의자들이 서울 각 지역에 동시에 탄생했다. 앞으로 심사를 거쳐 일부는 존치되고 또 일부는 철거될 운명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심사위원’과 이용할 시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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