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조경수를 심어진 상태 그대로인 ‘목대’로 구입하고 얼마 후에 굴취해 가기로 했다면, 어떤 방법으로 ‘내 나무’임을 표시하겠는가? 혹시 관행적으로 끈을 묶어 놓는 것에 만족하려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이 느닷없다고 생각하기 전에 곰곰히 따져봐야 할 사건이 생겼다.

구매대금을 완납한 뒤 양수하기로 한 날짜 이전에 판매자가 다른 사람에게 계약된 조경수를 팔아버렸는데, 경찰도 검찰도 판매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다. 이유는 구매자가 ‘내 나무’임을 표시하는 행위인 ‘명인방법’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 내무를 잃은 것도 억울한데, 경찰과 검찰마저 그 ‘빼앗긴 현실’은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니 울화통이 터지기 마련이다. 이 피해자는 너무 억울해서 죽고싶은 심정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선 피해자가 낸 고소장과 담당 검사가 작성한 불기소이유통지서를 토대로 이 사건을 재구성해 본다.


4월 2일
경기도 안산시에 소재한 조경회사 대표인 피해자는 조경계 지인의 소개로 시흥시 월곶동에 위치한 유희시설 운영사인 마린월드 대표 K씨를 만난다. K씨는 부지가 매각되었으므로 해당 유희시설 내에 심어져 있던 조경수를 6월말까지 모두 철거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커서 판매하려고 하니 얼마에 살 수 있느냐고 물어, 피해자는 1천만원에 조경수(관목포함 8천여 주)를 구입하기로 하고 구두로 계약한다. 피해자는 직원을 시켜 해당 부지의 조경수를 3일간에 걸쳐 전수조사해 그 결과 29종 8772주의 조경수가 현존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또한 굴취할 나무에는 눈에 띄는 위치에 끈을 묶으면서 거기에 수종과 규격을 기록했다.

4월 4일
피해자는 K씨 계좌로 구두로 약정한 조경수 구매대금 1천만원을 전액 송금한다.

4월19일
피해자는 수원 조경현장에 납품하기로 하고, C씨에게 사고 현장에 있던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직경 20cm 이상 교목 69주를 5900만원에 판매하기로 계약한 뒤 5월30일까지 작업상차하기로 했다. 그 뒤 계약금 1800만원을 받는다.

4월23일
피해자는 작업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소나무 R18짜리 5주와 R25짜리 3주 등 모두 8주를 작업해 E씨 등에게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시흥시청으로부터 소나무 반출증을 발급받아 운송에 사용했다.

5월 4일 이후
C씨에게 납품할 조경수를 추가로 굴취하기 위해 피해자는 판매자 K씨에게 전화를 걸어 작업하겠다고 고지하였고, K씨는 알겠다고 답한다. 그리고 3~4일 후 “지금은 수목을 가져갈 수 없게 됐으니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하며, 5월15일 만나서 협의하자고 연락이 온다.

5월15일 이후
연락이 오지 않자 피해자는 K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1주일 정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5월14~20일경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린월드 내 모든 조경수들이 굴취돼 영외로 반출됐다. 추후 K씨 변호인 측은 고물상을 불러 조경수를 철거했다고 주장한다.

5월24일
K씨 회사 직원이 와서 “나무를 모두 잘라버렸다”고 말해 깜짝 놀라 현장에 가보니 조경수들은 모두 굴취돼서 처분된 상태였다. 피해자는 인근 경찰지구대에 신고하였고, 경찰 현장조사 과정에서 마린월드 경비원은 “나무를 캐간 지는 10일쯤 됐다”고 듣는다. 피해자는 K씨를 상대로 절도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한다.

5월25일
K씨로부터 피해자 앞으로 1200만원 짜리 온라인 환증서가 특급우편으로 도착한다. 이 금액은 조경수 구입대금 총액 1000만원과 추가로 200만원이 더해진 것으로 위약금 성격의 금액이 포함돼 있다.

5월29일
피해자는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에 K씨를 고소한다.

8월21일
피해자는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에 출석해 담당 검사에게 진술을 한다.

9월 4일
담당 검사는 해당 고소를 ‘권리행사방해죄’로 분류하고 ‘증거불충분하여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뒤 피해자인 고소인에게 불기소이유통지한다.


이상과 같은 사건 흐름을 살펴보면, 검찰은 ‘K씨가 조경수(300주)를 1000만원에 매도 계약을 체결하고 1000만원을 수령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매수한 수목에 대하여 명인방법 등의 공시방법을 취하지 아니하여 해당 수목의 소유권은 마린월드(K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판매자인 K씨는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땅에 심어져 있던 조경수를 팔기로 하고 돈을 다 받은 뒤 다른 사람에게 판매해 버렸는데, 경찰과 검찰은 “당신(피해자)의 것이라고 적법하게 공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소유권은 여전히 판매자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판매했더라도 이 사건에서는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바로 소유권 표기인 ‘명인방법’에 있으며, 수목에 단순히 ‘끈을 묶은 행위’만으로는 명인방법의 기본요건인 ‘소유자의 명시’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검찰은 플래카드 또는 푯말에 어떤 물권이 누구의 소유라는 게시를 하는 방법을 취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검찰의 불기소이유에 따라 조경수에 ‘끈으로 묶는 행위’를 명인방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조경수 시장에는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조경계가 함께 짚고 넘어가야 할 ‘공공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조경수를 ‘목대’ 상태로 구입했다면, 어떤 방법으로 ‘내 나무’라는 표시를 해서 공시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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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인방법(明認方法)이란?
지상물 소유권 알리는 공시방법
매수상황·소유권 명시 등 적어야

지상물을 토지로부터 분리하지 않은 채 토지의 소유권과는 별도로 그 자체를 독립해서 거래하기 위한 공시방법으로써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명백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통틀어서 일컫는다. 따라서 수목의 집단이나 미분리의 과실 등에 관한 물권변동에 있어서 관습법 또는 판례법에 의하여 인정되어 있는 특수한 공시방법으로 소유권 양도에 인정된다.

예를 들면 입목의 경우에는 껍질을 벗기거나 페인트로 소유자의 이름을 기재하거나 푯말을 세워 매수하였음을 공시하는 것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명인방법에 의한 공시방법은 등기와는 달리 완전한 것이 못 되므로 공신력이 없다. 이런 명인방법이 유효하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특정+계속+소유자명시’ 등이 이뤄져야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수개의 명인방법간의 우열관계는 물권변동에 관한 형식주의를 취한 결과 지상물인 수목을 이중 양도한 경우 공시인 명인방법을 먼저 갖춘 쪽이 그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본다. 또한 입목의 이중양도시에는 입목의 소유를 목적으로 지상권 설정등기를 한 자와 이후 그 입목에 명인방법을 실시한 자와의 우열관계는 입목의 소유를 목적으로 한 지상권설정 등기를 한 자가 입목의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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