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평뉴타운 실시계획인가에 고시된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 중 한옥의 형태 및 외관기준 적용 요소에서 조경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된 은평뉴타운 한옥마을에서 개정된 건축법에 근거하여 ‘조경기준’이 적용이 빠졌다. 현대조경을 위한 조경기준이 한옥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건축에서 조경 고유의 역할을 배제한 뒤, 이를 대체할 만한 별도의 기준이나 어떠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전통정원 없는 한옥, 또는 정체성없는 정원들이 각양각색으로 난립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은평뉴타운에서 별도의 조경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도 심의위원회에 조경 전문가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문제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은평구 진광동 일대 약 10만㎡를 미래형 주거단지 조성을 위한 특별건축구역으로 4일 지정·고시했다.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된 구역은 은평재정비촉진지구 제3-2지구 단독주택지 일대로 대지면적은 9만9219㎡에 달한다. 총 122필지의 한옥을 비롯해 일반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지역은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건축법상 조경기준을 비롯해 일조권 등에 대한 제한을 받지 않게 됐다. 특별건축구역에 건축하는 건축물의 경우 ‘대지의 조경’, ‘건축물의 건폐율’, ‘대지 안의 공지’, ‘건축물의 높이제한’ 등 건축법 관련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시는 조경기준이 한옥에 불리하게 적용된다는 이유로 적용을 배제했다. 같은 이유로 일조권을 적용받지 않도록 하고 대지안의 공지 규정도 1m에서 0.5m로 완화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조경 배제와 관련해 “마당 내 식재를 과도하게 할 경우 마사토 포장에 의한 반사광 효과도 미흡해 한옥 채광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기도 했다. 마사토로 인한 채광효과 문제라면 공정상 조정을 해야할 일이지 법률상 의무화돼 있는 조경기준 자체를 배제할 이유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서울시는 좁고 불편하다는 기존 한옥에 대한 통념을 깨고 토지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21C 서울형 한옥모델’을 개발해 은평 한옥마을에 시범 적용하고자 계획했다”고 밝혔지만 이 내용에서도 조경 규정을 배제한 이유를 찾기는 힘들다.

고시가 발표 후 서울시 주택정책실 건축기획과 건축문화팀 관계자는 “한옥의 경우 일반 건축과는 다르다”며 “한옥 건축이 제대로 지어지고 단지를 구성하기 위해 조경을 비롯해 대지의 공지나 높이제한 등 기존 건축법 기준을 적용키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구단위계획 특성에 맞게 시행지침을 정해 조경 관련 사항이나 높이제한 용적률 등 세부적인 사항을 규정해 한옥 건축시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기존 건축법 규정 대신 한옥마을 특성에 맞는 기준을 새로 새워 적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을 확인해 본 결과 한옥 조성 세부지침에 특별히 ‘조경’ 분야를 포괄할 만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이 지역의 도시계획 상에는 전체 면적의 31% 가량이 자연 녹지지역으로 지정돼 완충녹지와 연결녹지, 소공원(1개)과 근린공원(7개) 등을 조성해 충분히 녹지를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한옥’ 건축물에 대해서 만큼은 이러한 규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번 은평 한옥마을의 한옥 건축물에는 ‘조경’ 규정을 배제하기만 했을 뿐 새로운 조경 지침은 물론 이를 대체할 기본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서울시 관계자는 “건축허가 시에 서울시의 한옥위원회나 한옥건축소위원회의 심의하고자 한다”며 “이 중 조경관련 위원도 있어 충분히 조경적인 요소가 감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조경계 관계자는 “한옥마을 특성을 감안한다면 기존 건축법 상 조경기준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며 “그렇다면 이를 대체할 만한 한옥에 적합한 별도의 조경 가이드라인이 보완돼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준이 있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이마저 없으면 나무 한그루 마당에 심을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가 우려한 것은 전통정원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안전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옥에서 정원이 구색 맞추기식으로 꾸며지게 된다면 한옥에서 전통정원의 존재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는 지적이다. 

이어 그는 “최근 개발 효율성을 이유로 건축규제 완화 대상 단골 메뉴로 ‘조경기준’이 꼽히고 있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전통한옥’에도 현대화란 이름에 함께 휩쓸리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고 말했다.

각계각층에서 한옥 건축문화와 ‘전통정원’에 대한 고찰을 연구하고 복원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을 만큼 ‘전통정원’ 또는 ‘전통조경’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과도 부자연스러운 행태라는 것이다.

최근 국토부를 비롯해 서울시 등에서 각종 건축 인센티브로 ‘조경기준’이 ‘용적률’이나 ‘높이제한’과 함께 단골메뉴로 거론되고 있다. ‘녹색건축물 조성’을 하면 조경기준을 완화해준다거나 ‘텃밭을 조경시설물로 포함’해 준다거나 하는 일련 사례들이 의도나 목적에 상관없이 ‘조경’을 거추장스러운 ‘규제’로 치부하고 있는 건축분야 행정에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시가 조경기준을 배제하는 것을 포함한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하기로 결정한 자료에서는 “건축규제 완화에 따른 토지가치 증대로 분양률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서울시는 올해 10월 정식으로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고시, 이와 시점을 맞춰 지난 9월 말부터 본격적인 필지 분양에 돌입했다. 시행사로 SH가 단지조성을 추진한다.

‘특별건축구역 지정제도’는 창의적인 건축물로 도시경관을 창출하고 건설기술 수준 향상과 건축관련 제도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일부 규정을 적용하지 않거나 완화 또는 통합해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역을 지정하는 제도로 지난 2008년 건축법에 신설됐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