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 혁신도시 사업지구에서 주민단체가 사업시행자인 LH를 상대로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조경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달라며 실력행사를 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들의 주장은 현행법상 ‘주민단체 위탁시행 가능사업’의 범위를 초월한 것인데도, 법원에  조경공사 발주를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고 LH 앞에서 항의집회까지 갖는 등 조경공사를 자신들의 이권사업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최근까지도 다른 혁신도시나 도시기반시설 조성과정에서 지역 내 주민조합들이 무리하게 ‘조경공사권’까지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과연 조경공사가 주민생계사업에 해당하느냐’ 하는 논란이 쟁점이 되면서, 이처럼 다툼의 대상으로 전락한 조경의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LH가 지난 6월말 4개 혁신도시 조경공사 중 일부인 총 800억원 규모를 발주한 데서 시작됐다. 4개 공구의 낙찰자는 12일 오후에 결정된다.

그중 ‘대구 신서혁신도시 개발사업 조경공사 1공구’ 공사가 공고되자 혁신도시 내 이주민들 모임인 주민생계조합이 지난 9일 법원에 발주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집회를 벌이며 조경공사를 주민들이 할 수 있도록 사업권을 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하며 촉발되었다.

LH 관계자는 “신서혁신도시 조경공사는 이번에 발주된 1공구 160억원을 비롯해 총 500억원대 규모로써 조경 전 부문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사업인 만큼 이를 주민생계단체에게 수의계약으로 넘길 수 있는 대상 자체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LH는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혁신도시 내 조경공사는 시공사의 자본능력, 전문기술이 요구되는 복합공종으로 주민들이 설립한 소규모 회사로는 무리가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국가계약법상 조경공사에 대한 수의계약이 불가능함 등을 들어 조합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대구 혁신도시 주민조합이 이렇듯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주민생계조합에서는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특별법에 따르면 사업 시행자는 생활기반을 상실하게 된 주민을 위해 필요한 지원대책을 수립해야 하고, 이를 위해 사업시행자는 분묘 이장, 지장물의 철거 등 주민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관계 시장·군수·구청장이 고시하는 사업을 주민단체에 위탁하여 시행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특별법에서 정한 ‘주민단체 위탁시행 가능사업’의 범위는 ▲무연분묘 이장 ▲지장물 철거 ▲전시관 등 사업시행자 시설의 관리(경비, 청소, 방역용역 등) ▲수목의 벌채 및 가이식(조경) ▲방치된 지하수 굴착공의 원상 복구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LH는 이식수목과 지장물 철거 등 주민들이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단순 공정의 사업들은 주민단체에 위탁해 수의계약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번 대구 혁신도시 또한 지금까지 4년간에 걸쳐 40억원 규모의 조경수목 이식과 벌목, 임목 폐기물 처리 등 4개의 단순 공정 사업을 주민생계조합에게 위탁해 운영해 왔다.

하지만 이를 넘어 ‘조경공사권’까지 주민조합이 넘보게 된 것은 신서혁신도시 관할 자치구인 대구 동구청이 지난해 11월에 위에 언급한 사업 외에 ‘수목식재, 잔디식재’를 새로이 추가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를 근거로 주민생계조합은 “해당 지자체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고시한 만큼 앞서 LH가 임목 폐기물 처리나 수목 이식 등을 수의계약으로 조합에 넘긴 것처럼 ‘조경공사’도 조합이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LH 측은 조경공사가 주민 위탁대상 사업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LH 관계자는 “혁신도시특별법 시행령에서 허용한 벌목 등 위탁대상 사업들처럼 조경공사는 단순공종이 아니다”며 “조경공사는 건축이나 토목과 마찬가지로 혁신도시 기반사업의 핵심공종이기 때문에 사업을 책임져야 하는 시행자 입장에서 조합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계약법상 혁신도시 같은 대단위 조경공사는 수의계약 대상이 아님은 물론이고, 특별법에서도 주민생계사업은 사업시행자가 상황을 감안해 재량에 맡겨 판단할 수 있도록 한 것 일뿐 강제된 사항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민조합 관계자는 “우리는 조경공사를 위해 전문건설 면허가 아닌 종합면허인 조경사업을 취득했고 충분한 전문성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취재결과 주민조합이 내세우고 있는 대구시 괴전동 소재의 S조경회사는 지난해 시공실적이 7억원에 못미치고 있으며, 시공능력평가액도 35억원에 그치고 있었다. 이는 LH가 조경공사 입찰참가자격으로 내건 시공능력평가액 338억원의 1/1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특별법을 근거로 조경공사를 둘러싼 주민들이 이권사업 요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09년 경북김천혁신도시 조성사업 당시에도 주민들이 700억 원 규모의 조경사업권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며 당시 사업시행자인 토지공사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LH 녹색경관처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각 혁신도시 사업 중 대규모 조경공사권의 수의계약을 요구하는 주민들과의 마찰이 계속돼 왔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6월에는 강원·광주전남·전북·울산·충북 등 5개 혁신도시개발예정지구 내 주민단체들이 모여 조경공사 우선수급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며 LH가 다른 사업자와 조경공사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금지해달라는 취지의 ‘혁신도시개발예정지구 조경공사 도급계약체결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수원지방법원에서는 “사업시행자가 고시된 사업을 재량에 따라 주민단체에 위탁할 수 있다는 것이지 위탁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주민단체가 요구한 조경공사의 우선수급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한 바 있다.

이처럼 지역민들의 무리한 이권 요구와 논란에는 ‘수목식재, 잔디식재’ 등을 위탁사업으로 고시하는 해당 자치구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선거 등 정치적 이유로 주민의 요구를 실효성이나 전후 상황 고려 없이 그대로 적용해줘서 책임을 사업시행자 측에 떠넘기며 논란의 빌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도시기반시설 조경공사의 경우 조경식재공사와 조경시설물설치공사, 부대토목공사 등이 맞물리며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공종이기 때문에 전문건설이 아닌 종합공사업으로 발주되고 있다. 따라서 지자체장이 정치적으로 판단한 것처럼 수목과 잔디 식재만 떼어서 분리발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11월 고시 변경을 통해 ‘주민단체에 위탁시행 가능한 사업’의 범위에 ‘잔디·수목 식재’를 추가해 이번 집단행동의 동기를 유발한 대구광역시 동구청에서는 “행정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판단은 했지만 생계조합의 강력한 요청이 있다 보니 민선 자치구 입장에서 행정 이외의 정치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어려움을 실토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조경공사’가 주민들의 이권 타툼의 중심에서 거론될 만큼 조경에 중요성과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조경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례와 관련해 “토목이나 건축 분야라면 주민들이 생계지원 대책 차원에서 공사권을 달라고 할지 의문이다”이라며 “임목 폐기물 처리나 벌목 등의 공정과 조경공사를 동급으로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라며 조경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낮은 인식수준 개선의 시급함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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