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는 참새목 박새과 박새속에 속하는 텃새로서,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는 흔한 새이다. 참새보다 조금 큰 덩치에 “쯔-삐 쯔-삐, 쯔쯔삐 쯔쯔삐” 하고 우는 새로써, 오늘 아침 출근길에 우리 집 마당 테크 난간에서 귀엽게 울던 놈이다.

유럽박새(Parus major, 파루스 마요르)는 우리나라 박새와 모습은 비슷하나 조금 더 덩치가 크다고 한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근교에 서식하는 유럽박새의 생태를 연구한 보고서에 의하면, 이들은 해안 습지 근처의 잡목 숲에 광범위한 군집을 이루며 살고 있다. 번식기가 되면 암수가 짝을 이뤄 작은 둥지를 틀고 한번에 15개 내외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암컷이 알을 품어 부화하여 새끼를 낳고 기르는 동안 수컷은 15분 간격으로 부지런히 벌레를 물어다가 암컷과 새끼들을 돌보는 모습이 흡사 인간과 비슷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수컷 유럽박새들은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날라 가족을 부양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암컷 몰래 바람을 피우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바람을 피울 때는 반드시 자기 둥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다른 암컷의 둥지를 선택하는데 이는 자기 배우자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어떤 놈은 second도 모자라 third까지 두고 있는데, 먹이를 물어다 주는 순서는 반드시 First, Second, Third 부인의 서열대로 부양한다고 한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첫 번째 배우자 둥지에선 평균 11마리의 새끼가 살아남았고, 두 번째 배우자 둥지에선 평균 9마리, 세 번째 배우자 둥지에선 5마리 이하 밖에 살아남지 못하였다. 아예 바람을 피우지 않고 한 배우자만 부양하는 수컷의 둥지에선 평균 13마리가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즉 한 마리의 수컷이 한정된 시간과 체력으로 2가족 3가족을 부양하는 데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첫째 부인에게 더 많은 벌레를 가져다주고, 그다음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을 챙기다 보면, 바람을 피우지 않는 수컷보다 더 부지런해야하고 그만큼 노동의 강도가 세어져서 결국은 수명이 짧아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뭘까?

자연의 이치는 간단하다. 더 많은 자손을 퍼트리기 위한 이기적 DNA의 본능 때문이다. 연구의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바람을 피우지 않는 수컷의 경우 최대 15마리의 새끼를 부양하지만, Second를 둔 경우 20마리를 부양할 수 있고, Third까지 둔 경우엔 24마리의 새끼를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바람기 있는 수컷의 유전자가 우점종이 되어 점차 증가하고, 일편단심 정절을 지킨 수컷의 유전자는 점차 도태되어 종당에는 암수의 비율 맞지 않게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유럽박새는 1:1의 성비를 유지하고 있다.

비밀의 열쇠는 암컷도 비슷하게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이었다. 한 마리의 수컷과 짝짓기를 하고 둥지를 튼 다음, 수컷이 벌레를 잡으러 나간 사이 다른 수컷과 바람을 피우고 짬짬이 그 수컷으로부터 벌레를 공급받아 도움을 받는 것이다. 각각의 배우자에게 서로 들키지 않으면서 맞바람을 피움으로써 유럽박새의 성비는 적절하게 유지되면서, 결과적으로 번식력이 좋은 종이 생존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여 지구상 대부분의 종족들이 1부1처제를 기본으로 성비의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당연해 보이는 이 모습도 생태학적 시각에서 본다면 엄청난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여성은 배란기에 섹스를 통해 임신하면, 270여일(약 9개월) 후에 아기를 분만할 때까지 이 기간을 전후하여 배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1년여 동안은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없다. 물론 쌍둥이를 임신하면(기록에 의하면 6쌍둥이를 낳은 경우도 있다) 2명까지는 낳을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에 속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남성의 경우 여성이 임신하고 있는 동안 최소 12번 정도만 사정하여도 3억 X 12회 = 36억 개 정도의 정자를 생산할 수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한 여성에게 1개씩 나누어 줄 수만 있다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여성 36억 명 모두에게 임신을 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자손번식의 극대화’가 목표인 이기적 DNA의 본능을 포기하고 임신과 육아기간 동안 한 여성과 가정을 돌보며 사는 대다수 오늘날 남성들은 왜 이렇게 반 생태적인 모순된 사회제도를 만든 걸까?

그 해답의 한 측면이 바로 유럽박새의 생태에 있다. 무조건 많은 자손을 생산만 한다고, DNA가 퍼트려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고도의 지능을 갖도록 진화한 인간은 다른 포유류에 비해 아기의 크기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출산의 고통이 대단히 크며, 출산과정에 모자사망률이 높아서 누군가가 극진히 돌보아 주지 않으면 생존가능성이 매우 낮은 종이다. 또한 출산 후 성장이 대단히 느려서 최소 6년 정도 지나야 비로소 스스로 먹이활동을 할 수 있다. 고도 문명사회로 발전한 오늘날에는 사회구조가 더욱 복잡해져서, 20년이 지나야 비로소 독립할 수 있는 성인이 된다.

그래서 모든 수단을 다 써본 후, 인류가 선택한 방법은 현재와 같은 가족제도가 자손 번식에 최선이라고 동의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진화하는 동안 수많은 오류와 갈등을 겪었지만, 남성도 여성도 1부1처제의 선택에 동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동물 생태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두머리와 추종자, 즉 지배와 피지배의 계급분화, 집단내의 서열 매김, 남녀의 성적(性的)불평등, 승자독식주의, 성의 정치화, 남녀의 바람기, 성매매 등의 사회적 현상들이 내재하게 된 것이다.

남자의 바람기는 공격적이다. 생명진화의 태초의 원리대로 최대한 많은 숫자의 정자를 생산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바다의 산호(대부분 동물임)가 대보름 밤에 일시에 정자와 난자를 수천조 개 이상을 동시에 방출하여 그중에서 우연히 적합한 환경에서 수백억분의 1의 확률로 생존하였던 원시생명의 생존전략이 인간에게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수많은 궁녀나 처첩을 두고 살 수 있었던 것이 인류역사가 아니던가? 오늘날에도 1부1처제의 가족제도를 호시탐탐 일탈하려 꿈꾸는 본능이 남성들의 DNA에는 숨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여자의 바람기는 수비적이다. 어차피 한평생 많은 남자와 관계를 맺어도 제대로 낳아 기르기가 너무 어렵고 숫자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녀의 선택에서 주도권을 갖고 선택(choice)하는 쪽은 여성이다. 승자의 DNA를 선택하는 것이 험난한 환경에서 생존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연애소설에서 삼각관계에 빠진 두 남자와 한 여자 스토리에서, 여자는 자기를 두고 결투를 벌이는 두 남자를 담담히 지켜본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를 선택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래서 전쟁에서 패한 부족의 여자는 적장의 아내가 된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인류생태학은 인류역사의 기본 뼈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호로메스의 대서사시인 ‘오디세우스’에서 스파르타의 왕비 헤레나를 두고 그리스의 아킬레스와 트로이의 헥토르가 벌인 트로이전쟁의 이야기도, 남성들의 전쟁서사시라기보다는 헤레나라는 여자가 생존전략의 최선의 선택을 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여자의 입장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은 한나라의 왕비이면서(현재), 이웃 라이벌 나라의 젊은 왕자를 애인으로 두는 것이(미래에 대한 보험) 최선의 전략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느낌에는 윤리가 없다’는 명제는 수많은 문학과 영화의 주제가 되었다.

이를 생태적 용어로 바꾸면 ‘DNA에는 윤리가 없다’가 된다.

권오병(아썸 대표, 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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