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순(대창조경건설 대표·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공사업협의회 부회장)
‘춘삼월’이란 말을 무색하게 만든 기상청의 한파 예보는 두꺼운 옷을 챙겨 입게 하지만 어깨 위에 쏟아지는 햇살은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베란다엔 철쭉이 만개하였으니 꽃샘바람이 제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마음만은 이미 봄이다. 봄볕의 에너지는 만물을 소생하게 하여 경칩에는 동면하던 개구리가 튀어나오고 마른가지는 잎눈을 틔운다. 이러한 생태계의 사이클에 맞추어 우리 선조들은 한 해의 절기를 기막히게 구분해 놓은 것 같다.

어릴 적엔 식목일에 학교 연례행사로 교정 및 길가에 은행나무나 플라타너스를 심고, 집에서는 아버지께서 감나무 같은 유실수를 심으셨다. 그 덕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고향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우리를 반겨주고, 붉은 홍시가 향수를 달래준다.

그 시절 우리가 조경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나무를 심는 기술도 특별하지 않았지만 나무는 큰 탈 없이 잘 자라 주었다. 배수가 잘되는 곳에 심고 발로 꾹꾹 밟아 준 뒤 물만 한 번 주면 훗날 훌쩍 자란 나무를 보면서 생명력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꼈었다. 오염이 없는 자연지반 위에 심고 토양 및 기후 조건만 맞으면 ‘하자’라는 것은 없었다.

산업구조의 변화와 급격한 도시형성은 환경을 파괴하고 정서적으로 황폐화 되는 상황이 되자 이를 보완하고 생활환경을 쾌적하게 개선시키기 위하여 ‘조경’이라는 업종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생활이 윤택해 짐에 따라 조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확대되면서, 사용자가 원하는 공급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도 뒤따랐다.

최근 들어 회색빛 콘크리트 위에 초고층 건물을 우후죽순 격으로 짓는 바람에 수목은 점점 대형화 되었고, 생태적 관점보다는 미적 관점에서만 경쟁적으로 특수목을 구입하여 심다보니 수목의 생존율이 지극히 떨어지고 있다. 더구나 건축부지 확보 시 오염된 매립지나 식재지반이 인공지반을 형성하는 경우가 일반화 되면서 조경 식재의 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수년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살아있는 생명체를 다루는 특수한 산업인 조경업에는 치명적인 하자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어 조경가로서 뿐 아니라 생명을 소중히 하는 한 자연인으로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식재 시 수목의 분 상태, 시공시의 기술적 문제만 없으면 일반적으로 배수가 잘 안 되는 불투수성 지반이나 오염된 토양 또는 급격한 기상재해와 병충해로 인해 고사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수목식재 시점에서 병충해에 걸렸거나 뿌리분이 파손된 시공 상 문제가 있음을 제외한 여타 다른 하자의 원인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하는데도 현 하자보수 법률은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주자 중심의 획일적인 잣대로 준공 후 하자보증기간을 산정하는 제도적인 문제점이 있다.

수목은 외부의 각종 환경 압으로 인한 영양이 크므로 인공지반에서 수목의 생장기반환경의 기술적 인조성은 필수적이며 수목생존을 위한 유지관리에 매뉴얼이 필요하다. 또한 사용검사 이후에는 사용자의 재산이므로 지속적이고 연속성 있는 유지관리 작업이 매우 중요한데, 사용자가 관리의 주체임에도 시공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문제다.

조경공사에서의 식재공종은 시기별로 병충해의 방제, 관수작업, 전정 등의 유지관리 작업이 지속적으로 수반되어야 수목이 생존할 수 있다. 최근에도 소나무의 경우 장마 후 잎마름병이 발병되고, 참나무의 시들음병이 발병되어 산림당국에서 방제작업을 실시하였다. 원인파악과 관리를 소홀히 하고 시공업체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 채 고사목에 대한 무조건적인 하자보수 요청을 함은 현실을 도외시한 사용자 위주의 판단에서 비롯한 결과라 할 것이다.

생명체를 다루는 조경은 외부의 환경의 변화와 식재기반의 여건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여타 공사와는 기준이 달라야 한다. 현재 인공지반과 포장면의 증가로 불투수층이 형성되어, 수용력의 한계에 따른 배수불량으로 인하여 대형목의 뿌리가 부패하는 등 수목이 고사하여 수도권 전역에서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하자발생의 원인에 따른 보수책임 한계를 구분하여야 함에도 일률적으로 시공업체에서 하자보수를 해야 된다는 발주자의 요구는 조경업계의 존망을 좌우하는 접근방식이라 하겠다.

수목의 종류와 규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통상의 경우 수목의 식재 시공 후 생사를 가늠하는 존속기간이 일부 대형목을 제외하면 보통의 경우 수목의 생리생태적인 특성을 감안할 때, 식재 후 6~8개월이면 시공 상의 하자든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이든 수목의 고사가 판가름 나므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수목의 하자기간은 사용검사 후 1년으로 보증기간을 설정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에도 가이드 시방서에서 제시하는 교목, 관목의 하자기간은 1년으로서 1회에 한하여 보수토록 규정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과실, 유지관리의 부족과 시공자의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경우에는 하자보수 대상에서 제외한다.

OECD선진 국가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비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관련 법률과 미흡한 제도를 정비개선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루빨리 현실에 맞는 하자보증기간의 단축, 하자판정에 관한 기준마련 및 조경공사의 관련시방서의 정비와 일본과 같은 천재지변에 대한 면책조항의 명확한 규정마련 뿐 아니라 식재기반에 따른 하자보증기간의 세분화 등의 기준마련이 시급하다. 아울러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며 조경을 사용하는 시민들의 애정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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