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지인으로부터 한숨 섞인 전화를 받았다. 강원도 쪽에 좋은 소나무를 사 놓고 다음 주에 옮겨오기로 했는데 어제 산불이 나서 소나무가 거의 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몇 주는 살아있는 것 같은데 혹시 옮겨 심어도 되는지 물어왔다. 언뜻 보기에는 살아있는 것 같지만 죽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난처한 상황이었다.

흔히 고온에 의한 피해라고 하면 여름철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고온에 의한 피해는 겨울철에 나타난다. 여기에서 고온이란 50℃ 이상을 말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잎의 치사온도는 52℃정도에서 10분 내외를 견디다 65℃가 되면 순식간에 고사하고, 형성층 고사 온도는 55-65℃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생활 중에 50℃를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단지 산불과 같은 화재의 경우 피해가 나타난다.

일 년에 셀 수 없이 많이 발생해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가는 화재는 나무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산불이 발생했다 해서 발생지역의 나무가 모두 죽은 것은 아니다. 직접 불이 난 부분의 나무는 죽겠지만 주변의 나무는 풍속, 풍향 등 지형적, 기후적 차이에 따라 죽거나 살 수 있다.
 

▲ 화재에 의해 한쪽의 지제부가 손상을 입더라도 잎이 건전하게 살아있는 경우 생존할 확률이 높다.

요즘에는 GPS에 의해 산불 발생지역이 확인되면 숲 상태, 풍속, 풍향 등을 사전에 파악해 산불진압에 나선다. 진화를 할 때 풍속, 풍향에 따라 진화를 시도하듯이 산불 발생지역의 풍속, 풍향에 따라 나무의 피해가 다르게 나타난다. 나무가 화재에 의해 고사하는 원인은 당연히 고온에 의한 형성층이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불이 정도, 시간에 따라 일률적인 고사원인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잎은 바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65℃가 되면 모두 죽는다고 볼 수 있지만 형성층은 수피라는 보호막이 있어 실제 고사온도는 65℃ 이상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형성층은 한쪽 부분만 죽는다 해서 나무가 완전히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나무가 죽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요인이 더해져야 한다. 한쪽방향으로 부는 바람에 의해 한쪽 방향의 형성층이 죽더라도 반대쪽이 살아있으면 죽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산불은 단기간 내에 진화가 되지 않고 또는 주변이 모두 나무로 둘러쌓여 있기 때문에 모든 방향에서 피해를 준다고 봐야 한다. 단지 지제부 부분이 고온에 잘 견딘다고 하는 나무는 소나무나 참나무류처럼 수피가 두꺼운 나무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줄기가 살아있더라도 잎이 불타면 전체가 죽는 침엽수가 활엽수에 비해 화재에 약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산불에 의해 피해를 받은 나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때문에 이런 경우 Shigometer를 이용하여 수세도를 확인해보면 어느 정도 고사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10㏀이 정상이지만 100㏀ 이상을 넘어서면 살아있다고 보기 어렵다. 육안으로 판별하기보다는 이런 장비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판별력을 높이는 지름길일 것이다.

화재피해를 받은 나무에 대한 조치는 우선 영양공급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있다 하더라도 스트레스와 형성층 부분 피해를 받았기 때문에 수세쇠약은 필연적으로 온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Shigometer 등으로 측정해 살아있다는 확신이 서면 먼저 영양제수간주사 또는 무기양료엽면시비 등을 공급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10-15일 간격으로 지속적인 공급을 해주면 좋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다음해 봄에 수세쇠약에 의한 천공성해충의 침입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천공성해충에 대한 방제도 해주는 것이 좋다.
 

▲ 화재발생 지점을 알리는 안내문
▲ 화재에 의해 한쪽은 고사하고 반대쪽은 살아있는 모습으로 이 벚나무는 생존이 가능하다.
▲ 소나무류는 잎이 타면 줄기가 살아있더라도 죽지만 활엽수류는 잎이 타더라도 줄기가 살아있으면 새잎을 싹틔워 사는 모습으로 내화력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색깔있는 나무의사
김철응(월송나무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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