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전날 회사 내부에서 가을철 정기 인사이동이 있으면서 우리 부서에 새로운 팀이 만들어졌다. 이름하야 ‘서울길 네트워크팀’. 팀장을 포함해 팀원이 총 3명 뿐인 초미니팀의 작은 출발이지만 이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올해 초 서울시내에 ‘걷기좋은 길’ 들이 이미 많으므로 이를 잘 홍보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해 주민들이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팀을 만드는 논의의 과정은 역설적으로 비움의 과정이었다.

수차례에 걸친 전문가들과 내부 직원들의 지난한 논의 속에서 다양한 사례와 논의들이 다듬어지고, 구체적인 ‘일’이 조금씩 정리되면서 몇 가지 것들이 버려졌다. 맨 먼저 ‘걷고싶은 도시’라는 개념이 (잠시) 버려졌다. ‘걷고싶은 도시’를 이야기하기엔 우리의 현실은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하며, 우리 부서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제한적이라는 것이 현실이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서울 곳곳의 산과 공원, 그리고 이들과 이어진 강들을 연결하는 ‘걷기좋은 길’에 대해 우선 관심을 쏟기로 잠정 결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걷기좋은 길’들이 향후에 ‘걷고싶은 도시’로 변해갈 것이라는 확신은 흔들림이 없었다.

기존의 많은 길들도 함께 버려졌다. 걷기열풍 속에서 비교적 최근 시작된 ‘서울둘레길(산과 하천을 연결해 서울 외곽을 크게 한바퀴 도는 길)’, ‘서울 한양도성길’, ‘생태문화길(지역별로 수집된 다양한 걷고싶은 길들을 말한다)’을 비롯해, 오래전부터 산책, 조깅과 라이딩으로 즐겨운 한강과 지천길, 민선 2기 시절부터 진행한 다양한 ‘걷고싶은 거리’에서부터 시작한 다양한 거리녹화 구역에 도보관광코스, 역사문화코스까지 서울시내를 샅샅이 뒤져낸 길들은 총 534노선 1,876㎞에 달했다. 하지만 모든 길을 다 똑같이 대할 수는 없었다. 중요한 혈관과 모세혈관을 구분하고 주요한 구간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팀 신설을 위해 기존의 사업들을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왕건이들도 과감히 버려졌다. 가장 많은 예산 투입이 목하 진행중인 ‘서울둘레길’과 휠체어와 유모차도 환영하는 무장애길인 ‘서울 근교산 자락길’은 신설된 ‘서울숲 네트워크팀’에서 거두지 않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숲길 정비사업’도 제외됐다. 하드웨어는 여전히 중요한 ‘일’이지만, 몸이 둔해지는 육중한 무게를 지닌 것 또한 사실이다. 새로운 팀은 빠르게 피가 돌아야 하고 무엇보다 가벼워야 했다. 크게 늘어가는 도보여행자들의 습속을 파악하고 소통하고 정보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에 묶여있을 수 없었다.

새 술은 대신 새 부대에 담을 것이다. 조경이 하드웨어를 버리니 채울 수 있는 것들은 아주 많았다. 서울 지도 위를 마음대로 누비며 선을 그어 연결할 것이다. 서울의 대동맥을 연결해 서울 전체를 그물망처럼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부실한 결절점들을 단단히 동여맬 것이다. 도심의 서울 한양도성(최근 서울성곽길의 명칭이 서울 한양도성으로 바뀌었다)을 잇는 작은 원과 서울둘레길의 큰 원, 큰 원을 가로지르는 한강과 방사상으로 뻗은 4개의 지천들, 내부의 작은 원과 외곽을 연결하는 길이 연결되면 근사한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마치 뱀처럼 순간순간 형태가 변하는 살아있는 길들을 자연스럽게 담을 online상의 자루를 새로 마련하고, 이곳에서 주민, 시민, 국민, 외국인의 넓어져가는 이용객들이 서로 뒤죽박죽 만나게 될 것이다. 구역과 구역별로 노선과 노선별로 동호회가 블로그를 매개로 결성되고, 전문가들이 진심어린 조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많은 서포터즈들을 통해 자발적인 상설프로그램이 운영되고, 계절별로 시기별로 색깔있는 특별프로그램도 준비될 것이다.

누군가 새로운 팀에 대해 장래성을 묻기에 성심성의껏 답해줬다. “팀으로 남을 수 있을까? 혹시 푸른도시국을 흔적도 없이 삼켜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고 말이다. 작은 출발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이젠 그 길을 끝까지 걸어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 최광빈(서울시 푸른도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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