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누지마 해안가의 경계책이 바다너머 산 능성이를 참으로 많이 닮아있다.

8월 2일부터 5일까지 (사)한국경관학회에서 주관한 경관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답사장소는 지난해 세도나이 국제예술제가 시행되었던 다카마츠와 세토나이가이 일대로, 내해와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7개 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예술을 경험해보기 위함이었다.

학회 답사가 늘 그렇듯이, 정해진 공식행사를 치르고, 보고 싶은 장소를 찾아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하는 일이 참가한 모두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온도가 37도를 넘나드는 따가운 날씨라는 점이 조금 야속하긴 했으나 하늘도 푸르고 공기도 맑아서 사진만큼은 잘 나오리라 위안을 하며 감수했다. 사진작가도 아닌 내가 말이다.

▲ 나오시마 베네세 하우스

특히 나오시마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섬으로 안도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이 있는, 게다가 미술관에서 묵을 수도 있어 미술작품을 야간에도 여유롭고 호젓하게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 가능한 장소다.

사실은 그랬다. 다카마츠시의 도시경관계획,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번 답사의 목적은 대자연 속에 자리한 미술관을 보러 아니, 느끼러 가는 것이었다. 통상의 미술관처럼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명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이 만들어내는 공간과 경관을 한껏 느껴보기 위해 경관학회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마음으로 참여한 답사였으나, 행동은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가방 속에 카메라 두 대와 메모리 카드까지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열심히 다니면서 사진만 많이 찍어오면 성공적인 답사가 되리라 확신하고 있었고, 카메라가 혹시 고장이라도 나면 답사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게 되니 여분의 카메라까지 필요했던 것이다. 남는 건 사진뿐인데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현지에서 참으로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사진촬영 금지, 심지어 외부공간의 투영도 금지, 현장에서의 스케치도 금지 그리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첨단기술에 대한 질문마저도 금지였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긴 했다. 예술과 첨단기술이 접목되어 현대아트로 탄생하는 걸 보고 ‘아 신기하다, 좋다, 그랬구나, 지금껏 간과해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어 고맙고 감격스러웠는데, 그래도 자꾸만 허전함이 밀려왔다. 손에 잡히는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에 시간이 지나가면서 속은 것 같은 마음도 들고 심지어는 입장료도 아까워졌고 조금씩 화도 나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작품 (나오시마)
▲ 호박조형물 (나오시마)

그런데 놀랍게도 동행했던 회원들에게서 조그만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든 카메라 렌즈만 열심히 들여다보며 사진 찍기에만 몰두했던 우리 모두가 렌즈 밖의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동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어느 틈엔가 조금 더 열심히 공간을 느끼고 살펴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공간이미지와 주변 경관을 카메라 메모리가 아닌 우리의 눈과 마음에 담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불행하게도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된 그림파일을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 올해의 경관답사는 성공적이란 확신이 들었다.

3박 4일의 학회 일정은 끝나가고 있었으나, 필자는 다른 곳을 조금 더 살펴볼 욕심에 일정을 연장했다. 그리고 그 후 이틀간의 여정에서 경관답사에 참여한 의미를 아주 절실하게 경험하는 또 한번의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함께했던 회원 모두가 공항으로 떠나간 시각에 난 배를 타고 테시마에 있는 테시마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 곳에 유명작가의 작품은 걸려있지 않았다. 그냥 미술관 자체가 만들어내는 공간과 연출되는 경관이 전시작품인 곳이다.

▲ 테시마 미술관. 이곳에는 유명작가의 작품은 걸려있지 않지만, 미술관 자체가 만들어내는 공간과 연출되는 경관이 전시작품이 된다.

나지막한 돔형의 건축물이 먼 바다가 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단순한 형태의 구조물. 미술관 천정에 원형의 구멍이 두 개 뚫어져있고 그 구멍으로 들어온 빗물과 자연의 습기들이 바닥 이곳저곳을 뒹굴며 흐르다 서로 합쳐져 큰 물방울이 되기도 하고 바닥에 나있는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가 사라져버리기도 하는 곳.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건축물 내부로 들어서는데, 놀랍게도 정말 미술관이 느껴졌다. 그곳에서는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서거나 앉거나 눕는 등의 상황에 따라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이 바뀌어갔다. 하늘과 구름이, 산과 언덕들이, 숲과 나무가, 논과 밭이, 심지어는 보기 싫은 송전탑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나갔다 끊임없이 반복되며 변화되어 가는 경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미술관이 서있는 이곳의 자연경관은 있는 그대로인데, 미술관 안에서 보이는 경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바뀌어간다는 사실이 몹시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점차 사진으로는 찍을 수 없는 카메라 렌즈 밖의 살아 움직이는 경관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경관계획의 정답은 바로 여기에 있네,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책으로만 봤던 경관연출이나 경관조작이라는 작업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도 느껴졌다. 두 시간 남짓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이번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관보전과 활용이란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이번 답사는 카메라 렌즈 밖의 세상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경관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으로, 이곳에 가면 전시관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미술관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될 것이다.

배현미(목포대 조경학과 교수)

▲ 해외답사에 참여한 경관학회 회원들의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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