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크리스마스의 계절이다. 올해는 하얀 크리스마스일까? 적적한 겨울을 화사하게 빛내줄 눈송이가 기다려진다. 곳곳에 캐럴이 울리면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듯 어쩐지 설렌다. 이제 어른이 되어 밤사이 양말 속에 선물을 두고 갈 산타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아는 데도 말이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의 명절이다. 세상을 구원할 신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가지고 사람 사는 세상에 왔다는 바로 그 날이다. 하지만 크리스천이라면 이 날보다 더 귀한 날이 따로 있다는 걸 안다. 바로 부활절
[Landscape Times] 마이산과 용담호의 아름다움을 품은 진안고원 치유숲에서 특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랫동안 살아남은 나무를 만나고 오기로 했다. 금산 보석사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이다. 보석사 울타리 밖 숲에서 일천일백년 남짓 살아가는 은행나무는 몸에 줄을 동이고 있었다. 몇 겹의 줄에는 나무의 백분지 일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작은 염원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는 소박한 제사 음식도 놓아두었다.얼마 전 전국적인 입학자격시험이 있었던 여파도 있었겠지. 겨우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일천년 이상 숨쉬는
[Landscape Times] 혼돈은 세상 정중앙에 사는 왕이었다. 구멍이 하나도 없는 혼돈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도 아름다운 것을 볼 수도 좋은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존재였다. 혼돈의 친한 친구인 남해의 왕과 북해의 왕은 이 혼돈의 처지가 너무도 딱했다. 의논 끝에 둘은 혼돈에게 구멍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우정 어린 두 친구의 배려로 중앙의 왕 혼돈은 하루에 한 개씩의 구멍을 가지게 되어, 일곱 째 날에는 일곱 개의 구멍으로 세상의 모든 멋진 것들을 보고 듣고 만지고 맡을 수 있게 되었다.허나 이게 웬일일까? 일곱 개의 구멍
[Landscape Times] 변하지 않는 가장 든든한 보석으로 인정받는 황금은 부귀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수 천년전 유물로 발굴된 왕족과 귀족들의 금장신구나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금거북이나 금열쇠 등을 보면 인류의 변치 않는 황금사랑을 알 수 있다. 그리스신화에도 황금을 사랑한 왕이야기가 있다. 마이더스라고도 불리는 미다스(Midas)왕이다. 그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스승 실레노스를 잘 대접한 공을 인정받아, 자신의 손으로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디오니소스로부터 허락받는다. 미다스왕의 손이 닿
[Landscape Times] 낙엽을 보면 쓸쓸해진다. 우리가 계절을 아는 건 온도와 습도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몸이야 그렇게 느끼겠지만 우리 마음은 다르다. 봄을 아는 것, 가을을 받아들이는 것, 모두 다 식물 때문이다. 가을은 식물의 갱년(更年)이어서 바쁜 시기다. 봄부터 주욱 가져왔던 생체 리듬을 바꾸어 겨울잠을 준비하는 때다. 곰이나 다람쥐처럼 식물도 겨울잠을 잔다. 동면동물들은 몸 속에 가득 양식을 비축하고 긴 겨울을 잔다. 하지만 식물은 몸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고는 겨울휴면에 들어간다. 준비하느라 바쁘다. 겨울이 되면
[Landscape Times] 인간에게는 필요한 게 참으로 많다. 감정도 있어야 하고 이성도 있어야 하고 결단력도 느낌도 있어야 산다. 그게 다가 아니다. 권리장전도 필요하고 십계명 같은 계율도 있어야 하고 헌법과 상법, 민법 같은 법률체계가 갖추어져야 하고 양심과 삼강오륜과 사회윤리가 필요하다.문명을 가진 이후부터 인간의 복잡함은 무섭게 늘어나서 이제는 거기에 눌려서 손 둘 곳 발 둘 곳 모를 지경이 돼버렸다. 인간의 신체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두뇌라는 작은 덩어리의 힘을 빌어서, 인류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무거운 차꼬를 채
[Landscape Times]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김동명 시인의 ‘파초(1938)’의 일부이다. 여름에 꽃과 열매를 피우는 파초에게 시인이 잔뜩 감정을 옮겼다. 윤혁민 씨가 작사한 ‘파초의 꿈’이란 가요도 있다. “낙엽이 나부끼던 어느 날인가, 눈보라 밤새 일던 어느 날인가. 세월의 뒤안길을 서성이면서, 한 많은 외로움에 울던 그 사람, 언젠가 땅을 딛고 일어서겠지
[Landscape Times 김진수 기자] 식물이나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능력과 기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자연에는 신기하게도 댐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동물이 있다. 바로 비버이다. ‘바다삵’이라는 별명을 가진 쥐처럼 생긴 포유류 비버는 작은 하천에 사는데, 강 속에 둥지를 만들고는 둥지 주변에 나무를 잘라서는 댐을 쌓는다. 댐의 길이는 무려 20∼30m에서 650m까지 되고 규모는 몇 천 평방미터나 된다. 비버는 왜 이런 댐을 만들까? 작은 개울가에 살면서 나뭇가지 껍질이나 새싹, 수초,
[Landscape Times] 노르웨이에는 지구 최후의 날을 대비한 씨앗과 유전자의 저장고가 있다. 노르웨이 북극 스발바드 군도 깊숙한 산비탈에 있는 천연의 보관소가 그것이다. 이 ‘국제종자저장고’에는 ‘최후 심판의 날 금고’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8년 완공된 이곳에는 무려 450만의 식물종자가 저장되어 있다. 인류가 멸종된 지구에서는 식물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을 거라는 과학자들의 보고가 있다. 하지만 만약 운 좋게 단 한 명의 인간이라도 살아남는다면 이 종자저장 창고를 열어서 다시금
[Landscape Times] 다른 생명체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면 어떨까? 생각 뒤집기의 천재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나무’에는 외계인을 위한 애완동물 인간사용설명서가 있다. 유명한 영화 ‘혹성탈출’에서 인간은 유인원에게 사육된다. 우리에 갇혀서 구경거리가 되고 먹거나 배설하는 것 모두 그 안에서 공개된 채 해결한다. 현명하고 용기 있는 유인원들이 다스리는 세계에서 인간은 한갓 동물이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rsquo
[Landscape Times] 외로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연의 품에서 떨어져 나간 인간의 분리감. 최초의 인간은 탯줄에서 잘리듯이 낙원에서 쫓겨났다. 땅은 땀을 흘려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하루하루를 염려하며 인간은 땅을 일구었지만 동시에 보란 듯이 땅을 정돈해 즐겨왔다. 텃밭과 정원이 그것이다. 텃밭에서 땀을 흘리고 정원에서 위안을 얻고, 텃밭에서 분리를 경험하고 정원에서 일체를 누려왔다. 그렇게 땅은 인간에게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선사했다. 헬레니즘 시대 에피쿠로스학파는 바로 땅에서 최고선을 탐구했다. 에피쿠로스는
[Landscape Times] ‘반지’였을까? 정말 ‘절대반지(the One Ring)’였을까? J.R.R.톨킨이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서 얘기하고픈 것이 말이다. 무려 7권의 책으로 구성된 이 판타지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뉴질랜드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삼아 다시 태어난 이야기는 웅장하면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지금도 가슴에 울림이 남는 작품이다.인간을 유혹하여 자신을 소유하는 자와 세상 모두를
다들 엄마 때문에 난리다. 그저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어머니가 요즘엔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공부 못하는 것도 엄마 탓, 결혼 못한 것도 엄마 탓, 취직 못한 것도 엄마 탓! 심지어 자녀에게 매 맞는 엄마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왜 나를 낳아서 이 고생을 시키세요?’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생명을 주신 부모님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는데…풍요로운 3만 불 국민소득시대에 이게 웬일일까? 하긴 옛말에 ‘부모가 죄인’ 이란 말도 있으니 다 이유가 있을 거다. 뒤집어보면 한
큐피드의 심술의 불똥이 튀어 졸지에 나무가 된 처녀가 있다. 하지만 이 처녀(나무)의 가지는 신의 사랑을 받아 두고두고 푸르러 승리한 자들의 머리 위에 대대로 얹혀졌다. 처녀 이름은 다프네고 처녀가 변한 나무는 월계수(月桂樹; laurel wreath)다.이 처녀나무(?)는 아폴론신의 숭배를 받아서 각종 경기와 종교의식에서 승리자들에게 씌워주는 영광스러운 관의 재료가 된다. 월계수(혹은 올리브 나무) 가지를 꺾어 만든 이 관을 나중에는 줄리어스 시저도 썼고, 나폴레옹 또한 황위에 오르며 사용했다고 한다. 초기 올림픽에서는 승리자에게
아니나 다를까? 가만가만 봄비가 조심히 내려오더니 나무들과 풀들이 살며시 봉오리를 들이 밀었다. 이제 막 아기봉오리를 만든 것, 성미가 좀 급해서 활짝 피어난 것, 수줍어서 필까말까 망설이는 것, 단풍나무도 아기 손가락 같은 야들하고 여린 잎을 살며시 펴는 중이다. 나른한 오후에 여기저기서 꽃들과 잎들이 피어오르니 다들 정신이 아찔해지는 모양이다. 흐드러지게 벌어진 철쭉 사이로 반짝이는 투명한 먼지 같은 것들이 바쁘게 오간다. 어릴 적 보았던 ‘피터팬’의 팅커벨 같은 옷을 입었다. 환상적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싸움의 전략이 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謀功)편에 나오는 말인데, 적도 알고 나도 알면 아무리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이야기다. 인간 세상이 하도 험하다보니 매일의 일상을 전장(戰場)으로 아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그래서 이 병법(兵法)은 바야흐로 생법(生法)이 되었다. 각자 개체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경영 전략에 있어서도 이 방법은 주효하다. 조직 측면에서든 개인에서든 병법은 생법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못 봤으면 식물과의 새로운 만남의 장은 시작되지 못했으리라. ! 금요일을 무시한 죄로 첫 번째 가을의 중간부터 보게 된 바보짓을 후회할 겨를도 없이, 울렁이는 가슴을 다독이고 또 다독이며 우돌프의 다섯 계절과 함께했다. 식물들과 교감하는 다른 자연물들의 강한 울림에 숨죽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네덜란드 훔멜로 정원의 전경이 공중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질 때 여기저기서 주체하지 못한 외마디 탄성이 터진다.간간이 백발의 건장한 노인이 툭툭 던지는 말은 현자의 화두 그 자체이다.
열기 가득한 여름 밤, 도로위에 갇혀 사는 꿋꿋한 가로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이, 자네! 왜 그렇게 시무룩한가? 나를 보게나. 이 답답한 곳에 살면서도 무성한 이파리를 뽐내지 않는가?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가 말일세. 누가 나를 공격해도 도망갈 수 없고 산과 숲이 그리워도 다시 그 곳으로 갈 수 없는 안타까운 신세지만,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줄줄이 스치는 가로수들의 울림은 웅장한 합창이 되어 내 마음을 두드렸다.그들의 초대를 기꺼워하며 한 걸음씩 그들 속으로, 식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만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