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오 헨리의 는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인생을 보여준다. 폐렴에 걸린 화가지망생 소녀가 병상에서 하나 둘 세고 있는 옆집 담쟁이덩굴 이파리는 가을을 달리고 있다. 잎들이 모두 떨어져 버릴 때 자신의 생도 겨울로 마감할 거라고 믿는 그녀는 마지막 남은 한 개의 잎에 시선을 모은다. 찬바람에 파르르 떨고 또 떨지만 가지에 끝까지 매달려 있는 잎을 매일 바라보면서 그의 절망은 희망으로 변해간다. 가을을 견디며 겨울로 소환되지 않는 잎처럼 자신의 가을 또한 확장되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
[Landscape Times] 영원한 처녀성을 상징하는 여신 아르테미스를 섬기던 님프 시링크스는 목신 판(Pan)의 구애를 받게 된다. 아버지는 제우스며 어머니는 님프인 판은 머리에 작은 뿔을 가진 인간과 염소를 합친 모습이었다. 판은 시링크스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했지만 순결을 중시한 그녀는 판을 피해 도망 다니며 살았다. 어느 날 쫓아오는 판에게서 벗어나고자 온 힘을 다해 달아나던 시링크스는 더 이상 도망할 수 없게 되었다.판을 피해 수풀을 헤치고 나아간 그녀의 눈앞에는 커다란 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강을 헤엄쳐 건널 자신이
[Landscape Times]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중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현대 시인의 관점에서 국화를 노래했다. 국화는 조금만 있으면 어디에나 피어나 우리를 흐뭇하게 반겨줄 것이다.선선해진 날씨는 가을을 재촉하고 나의 눈앞에는 지난 늦가을
향긋하고 달콤한 복숭아의 계절이다. 황도와 백도의 시절은 그리 길지 않다. 잘 익었는가 하면 금방 물러버리고 맛이 빠지는 복숭아의 타이밍을 잡으려고 해마다 이맘때면 서둘러 과일가게로 간다.서양에서 사과가 환영받았다면 동양에서 복숭아는 지존의 지위를 누렸다. 복숭아는 최고의 꿈과 이상을 상징했다. 서양인들이 돌아가야 할 낙원을 사과의 정원으로 느꼈다면 동양인들은 복숭아의 숲으로 그렸다.어딘가에 있을 듯 하지만 쉽사리 갈 수 없는 그곳! 그래서 늘 가슴 졸이며 찾아 헤매는 곳,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곳! 이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었다.
[Landscape Times] 한 입 베어진 사과는 매혹적이다. 달콤한 과즙과 향이 느껴진다. 애플사의 로고는 동그란 사과가 아니라 한 입 먹힌 사과이다.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 가난했고 사과농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사과야말로 가장 영양이 많고 오랫동안 보존되는 과일이라고 생각했다. 사과는 귀족의 과일이 아니다. 저렴하고 서민적이다. 적응력과 생명력이 강해서 어느 곳에서든 잘 자란다. 인류의 긴 역사를 함께 해온 사과는 작은 씨앗 속에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사과 속에 신화가, 사과 속에 전쟁이, 사과 속에 반역이,
내리꽂히는 비에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된 듯하다. 무슨 사연일까?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 하늘을 끌어다 땅에 붙여 중국 신화의 거인 반고가 했던 일을 되돌리고 싶은 것일까? 가장 깊고 순수하면서 혼탁한 존재,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하고 다시 끝내는 존재, 물의 주간, 장마의 기간이다. 우리는 물을 통해 계절을 안다. 비가 그렇다.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비, 땅 속 열기를 식히는 비, 때에 따라 만나는 물들의 빛깔도 향기도 다 다르다. 시간의 간격을 메꾸는 빗소리의 기억이 있고 동일한 공간을 다르게 채색하는 빗물의 역할이 있다.올해
[Landscape Times]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어느 날 잠자리에서 일어나 출근할 수 없었던 남자의 이야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하기 싫은 일을 묵묵히 해야 했던 청년은 갑자기 흉측한 벌레로 변해 버린다. 전혀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일을 하던 그에게 합법적으로(!) 출근이 면제되고, 가장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그의 존재 또한 가족들에게 서서히 잊혀 간다. 벌레가 된 주인공 게오르규는 평소 세상에 나가지 않는 나날을 꿈꾸었고 어느덧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왜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했
[Landscape Times] 무겁고 답답하던 겨울을 걷어내고 여 름이 선뜻 다가왔다. 음(陰)의 기운을 이겨내고 양(陽)의 기운이 다가온 것이 다. 땅 속에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씨앗들, 가지 끝에서 피어날 때를 노리 던 꽃과 잎들이 기지개를 켜고도 시간 이 많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맹렬한 여름 태양을 견디고 즐기며 생을 꾸려 가는 식물들은 아름답다. 만개한 꽃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자기 할 일 다했다 고 동네방네 자랑하는 꽃들도 멋지다. 사람들은 그들을 ‘시든 꽃’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과업을 달성
[Landscape Times] 생명유지의 비밀은 항상성이다. 생명체는 늘 이 비밀을 유지한다. 더우면 땀을 내어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고 추우면 떨어서 체온을 올린다. 땀을 흘리면 잃어버린 염분을 보충하려고 짜게 먹는다. 염도가 올라가면 물을 많이 마신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동물 뿐 아니다. 식물도 항상성을 유지하는 작업을 한다. 염분이나 영양분이 과도하면 비 오는 날을 기다려 씻어 내거나 아니면 곧 떨어져나갈 잎에 모아서 내보낸다.동양 고전
[Landscape Times] 존 밀턴은 ‘복낙원’에서 예수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낙원을 회복시키는 이야기를 썼다. 앞선 작품 ‘실낙원’에 이은 책이다. 밀턴뿐일까? 사람들의 마음에는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는 꿈이 저마다 존재한다. 각자 환경과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기 힘든 인간들에게 공통적인 사항이다. 성서 속 낙원(에덴동산)의 모습은 풍요롭고 아름다웠다. 생태적으로 보아도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빛과 어두움, 하늘과 바다라는 기본 환경 속에서 씨 맺는 채소와 씨
[Landscape Times] 2020년 접어들면서 들이닥친 바이러스 국면은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고 있다. 사람들은 동물이라 움직이기를 좋아한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봄이면 봄대로, 원래 자신의 고향인 자연을 찾아 나선다. 사철이 뚜렷한데다 산이니 강이니 들이니 바다를 모두 갖춘 이 땅의 환경과 구석구석 다채로운 먹거리에 따뜻한 인심까지, 무엇 하나 부족할 게 없는 한국인들이 집안에 앉아있을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게다가 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주말이 되기 무섭게 집밖으로 나갔던 것이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애창되는 가요 ‘꽃밭에서’의 가사 일부이다. 한가로이 꽃밭에 앉아서 오랑조랑 피어있는 작은 꽃들을 바라보며 그 신비로운 빛깔에 감탄하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꽃의 고운 빛에 잠겨있던 시인은 이내 임을 떠올린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임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이 그리는 임은 연인일 수도 벗일 수도 있으리라. 꽃과 감응하던 시인은 문득 이 아름다운
[Landscape Times] 생존한다. 그리고 후손을 퍼뜨린다. 생명을 가진 개체라면 이 두 가지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찰스 다윈은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 자신이 속한 특정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해야 한다. 적응해야만 살아남고 살아남아야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 있다.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도 고등동물도 아닌 식물이다. 겨울에는 땅 속에 뿌리를 꽁꽁 넣고 있어 눈에 잘 띠지 않아 몰랐다고 해도 4월 들어 기지개를 시원하게 켜는 각종 풀들과 잎들과 꽃들을 보면 ‘아, 이제 그들의
[Landscape Times] 너른 바다 한 가운데 섬이 있다. 가까이 가보면 이 섬은 나무들로 이루어졌다. 어찌된 일일까? 이 나무는 바로 전설적인 식물 맹그로브이다. 맹그로브는 열대지방의 큰 강어귀나 얕은 바다 속 진흙에 살면서 강이나 바다로 씨앗을 내보낸다. 조숙한 맹그로브의 씨앗들은 엄마나무에 달려있을 때 일찍 싹을 내고 뿌리도 만든다. 가지에 붙어 있는 열매 속에서 뿌리가 자라기 시작해, 어느 정도 커지면 뿌리끝에 새싹이 난 상태로 열매가 떨어진다. 바람이 맹그로브 씨앗을 물 위에 떨어뜨리면 똑똑한 씨앗은 이미 만들어 둔
[Landscape Times] 도대체 우리 인간이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탓인가?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새로운 왕관 모양 바이러스에 세계가 우왕좌왕 한다. 최고의 이성과 기술을 자랑하고 살던 인류라는 종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이야말로 지구의 주인인 듯 왕관을 뽐내며 이 바이러스는 종횡무진 서식지를 넓히고 있다. 인간이 이런 종류의 미물에 덧없이 쓰러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사를 보면 바이러스의 공격은 여러 번 있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와 인류를 괴롭힌 이놈들 때문에 의학이 발달하기도 했다. 도처에
[Landscape Times] 숲이 뚫렸다. 거센 바람에 큰 나무 가지가 무참히 꺾이고 작은 나무들은 쓰러졌다.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고 살던 나무들 세상에 혼란과 당혹이 밀려왔다. 친족과 이웃나무들의 아픔을 애도할 사이도 없이 바람은 매몰차게 몰아쳤고 툭, 후드득 소리와 함께 많은 나무들이 해를 입었다.작년 9월 ‘뚜벅이 투어’로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 갔었다. 뚜벅이들을 반기듯 가을비가 살며시 내리는 날이었다. 안면도 소나무 천연림은 선조들이 오래 전부터 국가차원에서 관리해온 귀중한 자원이고 현재는 자연휴
[Landscape Times] 겨울나무는 처량하다. 한 오라기의 잎도 남기지 않은 온전한 나목이 되어 칼바람과 추위에 노출되어 있다. 도시의 겨울이 더 쓸쓸한 건 가로수로 심긴 나무들이 초라한 나신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그들은 인간들이 제멋대로 성형해 버린 몸으로 겨울을 난다. 숲의 나무라면 본성대로 쭉쭉 가지를 올렸을 터이지만 도시의 나무는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다. 인간이 필요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장소에 심었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 좋은 대로 손대어 가지를 쳤다.도시나무는 식민지 백성처럼 산다. 꼭대기의 가지는 무참하게 잘렸고
[Landscape Times] 우리는 나무를 사람의 몸처럼 말한다. 오래 전부터 나무는 사람에 비유되어 왔다. 나무의 둥치는 사람의 몸통으로, 가지는 사람의 양팔로, 뿌리는 든든한 두 발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여겨왔다. 뿌리를 대지에 박고 둥치와 가지는 하늘로 향한 채, 나무는 꿋꿋이 홀로 서서 자신의 생을 감당한다. 왜 나무를 사람처럼 보았을까? 나무의 속성과 지향하는 것이 인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탓이 아닐까! 18세기의 위대한 교육학자 루소는 그의 대표적인 고전 ‘에밀’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나무의 성장에
[Landscape Times] 겉옷을 벗어젖히고 머리를 질끈 동인 젊은 여왕이 가을 바다를 향해 심호흡을 하고 달려든다. 파도는 집채만 한데 여왕은 파도에 쓸리기도 하고 바다 밑에 잠기기도 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향해 돌진한다. 입을 앙다물고 자신의 본성을 찾아 뛰어드는 엘사 여왕의 의지가 멋지다! 최근 개봉한 영화 ‘겨울왕국2’의 중반부 장면이다.나는 이 장면에서 심호흡을 하고 바다로 뛰어드는 씨앗을 생각했다. 전편에서 엘사는 신이한 능력을 지녔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괴로움을 당한다.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
[Landscape Times] 겨울에도 장미가 핀다. 소담한 붉은 장미는 여름 장미보다 매혹적이다. 울긋불긋 단풍이 떨어져 도로며 계단을 모자이크로 장식할 무렵 풍만한 장미가 시선을 잡아당긴다. 삭막한 계절을 위무하려는 듯 장미는 화사하고 도도하게 피었다. 신성한 꽃들은 고대부터 인간의 눈을 사로잡았다. 고대인들은 신의 사원을 말린꽃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말린꽃이 더 이상 지지 않듯이 신 또한 영원함을 기리는 것이리라.이렇게 신비한 꽃의 정체를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밝혀 욕을 먹은 사람이 있다. 독일의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크리스티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