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우리 사회는 상생과는 거리가 먼, 극단의 이기로 인한 대립이 주류로 자리하고 있으며 그 정점에는 늘 막대한 자본이 군림하고 있다. 사익과 공익이 대립하면 열에 아홉은 자본을 뒤에 업은 사익이 이기는 구조로 고착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외된 분야는 관심이 없기에 분식할 필요도 없이 불균형을 드러내놓고 키우며, 이런 사회문제에 앞장서 변화를 외치는 소수의 몸부림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 또한 극소수에 불과하다. 과연 내 일이 아닌 불구경에 불과할까?우리나라 사회는 개발중심주의, 돈 중심주의를 추구하는 동안
[Landscape Times] 정원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농경사회의 마당중심공간이 편리를 위한 아파트문화로 바뀐 이후 다시 변화의 시기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 것이다. 자의는 아파트문화의 건조함과 폐쇄성에 기인하며, 타의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기화가 불러왔다.코로나블루시대인 지금 정원을 가꾸고 즐길 수 있는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피로감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콘크리트박스의 고평가 아파트단지가 아닌 도시에서 벗어난 작게나마 마당이나 정원이 있는 집이 새롭게 부각되는 시기이다.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낸 코로나팬데믹 기간에도 나름의 긍정적 성과는 있었다. 애써 잊고 지내던 사회적 문제들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와 관련한 생각을 수면위로 올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데에서 모든 일상이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이제는 ‘언택트 사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 생소한 경험의 갑작스런 시작은 먼 미래일 것만 같았던 우리사회 많은 변화들을 당장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눈앞에 닥친 현실로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변화의
[Landscape Times] 어느덧 나이가 들어가고 누군가를 만나면 자연스레 경제적 상황에 대한 얘기가 오간다. 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집과 관련한 부동산 얘기다. 어디에 집을 사서 가격이 올랐더라는 말은 하필 내 주변 지인한테서만 일어나고 나만 교묘하게 피해가는 ‘머피의 법칙’이 여지없이 적용된다. 그러다보니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늘 한숨짓는 사람이 태반이다. 공공의 안녕을 위한다는 조경분야에서 먹고사는 우리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도시민의 행복 증진을 위한 조경사업으로 돈을 벌기보다 건물에 투자를
[Landscape Times] 산업화·자동화는 인류사회의 총생산을 늘여 풍요로운 문화사회를 만들고, 시민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많은 사람들이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며 높은 삶의 질을 누리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막상 이 시대가 올 때까지 오랜 시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쾌적한 환경과 웰빙을 추구하는 친환경사회이기에 조경은 언제나 미래가 밝다”고 들어왔다.앞서 말한 여러 미래 전제들이 현실이 된 지금 우리는 그 ‘밝은 미래’
[Landscape Times] “조경을 하시는군요. 아, 이번 봄에 나무를 좀 심으려 하는데 어떤 나무를 심으면 좋겠는지요?” “제가 집에 작은 정원이 있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어울리는 나무가 있을까요?” 다른 분야의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가 시작되면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의례적으로 내게 건네지는 말들이다. 물론 관심의 표현이리라 생각하지만 이 분야를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 한편에 자리한 불편함은 떨쳐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