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이맘때 늦은 밤, 거리를 지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가로수는 어떤 기분일까?’ 다음 날 태양을 향해 우뚝 선 나무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무가 잘 사는 것은 해를 우러르기 때문 일거야.’ 그리고 얼마 후 보도블럭 사이에 촘촘하게 피어난 작은 꽃을 보고는 이런 느낌이 들었다. ‘풀들은 대단 하구나. 저 작은 틈에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이런 감탄과 궁금증이 겹쳐져 식물에 관한 책을 한 권 쓰고 싶어졌다. 어디서나 씩씩하게 살고 있는 그들에게 한 수 배우고 싶
초여름의 하늘은 가을하늘만큼이나 예쁘다. 생명을 온통 잠 깨우느라 바쁜 봄이 지나서일까, 초여름에 들면 하늘은 잔잔한 기운이 돈다. 땅은 어떤가? 땅도 봄에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느라 몸살을 치르고 나서 안정기에 들어서는 계절이다. 바람도 할 일이 많다. 바람이 중매해 줄 식물들도 만만치 않은 탓에 봄바람도 거세고 여름바람도 드세다.우리 인간은 이 사이에서 말이 많다. 봄볕은 왜 이리 따가운가. 바람은 변덕스럽다는 둥 하늘과 땅이 우리를 위해 일하는 양 착각을 한다. 올해는 인간도 분주한 해이다. 4월 한창 봄일 때 대통령을 뽑았고
[Landscape Times] 우리나라에 분재열풍이 불었던 시기가 있다. 1970~1980년대이다. 사무실이든 집이든 고색창연한 소나무 분재 하나 정도는 들여놓아야 품위있다고 여겼던 시절이다. 바위와 이끼를 품고 꿋꿋하게 자라나는 노송을 실내에 모셔놓고 나무처럼 자연처럼 살려했던 사람들의 소망이 있었다.지금은 직접 자연으로 나가서 나무와 돌과 풀 사이에 하루 이틀 둥지를 틀어버리는 캠핑이 유행하고 보니, 분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도 이전 같지는 않다. 자연에 두면 맘껏 뿌리를 뻗고 가지를 키울 나무들을 아담하고 예쁜 화분
[Landscape Times] 바람이 세찬 봄날, 나무는 기꺼이 바람을 마중한다. 우수수 부는 바람에 리듬을 맞추어 춤추는 나뭇가지와 잎들은 거짓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진심으로 5월을 즐긴다. 옛 현인들은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고 말하여 눕는 풀은 소인이고 바람은 군자의 덕을 의미한다고 했다. 봄바람에 솨솨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니 문득 그 교훈이 떠오른다.젊은 날에 그 구절을 읽었을 때 ‘소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군자에게 화답할까?’ 궁금했었다. 혹시 지
[Landscape Times] 나무들이 사방으로 폭죽 같은 꽃을 터뜨리는 봄은 개혁의 시간이기도 하다. 화분에 심겨진 나무들은 봄을 찬스로 하여 새로운 기회를 다진다. 땅에서 자라는 나무라면 땅이 절기를 따라 모든 것을 마련해주지만, 화분에서 자라는 나무는 극도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 많은 제약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화분의 나무는 가꾸는 이의 세심한 관심과 돌봄이 요구된다. 규모가 가장 큰 판 바꾸기는 바로 분갈이다.분갈이는 환경과 식물을 모두 손질하는 것이다. 나무를 화분에 심고 2~3년이 지나면 뿌리가 자라나서 화분 안에 뿌리
[Landscape Times] 지인들이 보내주는 봄꽃 사진이 핸드폰에 넘쳐난다. 경주, 지리산, 아산, 서울의 봉은사에 피어오른 홍매화, 미선나무, 진달래, 벚꽃, 복사꽃이 자신만의 매력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훔친다. 상록수들도 새로운 잎을 연다. 연두색과 노란색, 분홍색과 자주색, 화려한 흰색이 어우러져 무채색이었던 대지에 생기를 준다. 봄이다! 겨울이 되면 언젠가 봄이 오겠지, 하고 해마다 기다리는 봄이다.그렇게 식물들은 겨우내 잠자다가 깨어날 때를 잊지 않는다. 그들의 정확한 시계 덕분에 우리도 계절을 느끼고 시간을 헤아린다.
[Landscape Times] 매일 수십만 명의 확진자 수를 갱신하는 코로나 대유행의 시절이 되었다. 2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왔을 때 그들은 맹독으로 무장하고 숙주인 인간들을 보란 듯이 가차 없이 살해해 버렸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들의 공격에 전 세계가 벌벌 떨고 만물의 영장이라 자랑하던 인간들은 쥐구멍으로 숨어버렸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진화적 군비경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햇수로 3년이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달라졌다.숙주를 없애고 나니 자신들도 깃들 곳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인간
[Landscape Times] 해리포터 시리즈 속에는 ‘불사조 기사단’ 이야기가 있다. 사춘기를 지나는 해리포터의 성격이 가장 예민하게 묘사되는 부분이며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마법사 기사단의 의로움이 돋보이는 편이다. 서양 전설에는 아라비아 사막에 살고 있다는 피닉스(phoenix), 죽지 않는 새에 관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온다. 불사조는 500년을 주기로 자신의 몸을 불태워 죽고는 다시금 그 재 속에서 부활한다.한 번 수명인 500년이 끝나갈 때가 되면 피닉스는 스스로 그것을 알고는 나무 꼭대기로 올
[Landscape Times] 세상은 욕망으로 하여 움직인다. 욕망은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죽어있는 개체 외에는 어떤 생명체도 욕망이 행동의 원동력이 된다.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 안도 사막의 뜨거운 열기 속도, 북극의 빙하에도 아프리카의 초원도, 하늘 위도 땅 위도 땅 속도 모두 욕망의 결전장이다. 자연은 나의 욕망과 너의 욕망이 엉키어 만드는 크고 작은 생명의 이야기들을 즐기는 듯하다. 그 스토리들을 감상하려고 우주와 지구와 땅과 태양이 있는 건 아닐까? 그 안에서 식물처럼 생물들의 갖은 욕망을 다 품고 지내는 존재가 있을까?동
[Landscape Times]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를 관통하는 세렝게티 초원은 태곳적 야생이 남아있는 곳이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곳은 긴장과 전운이 가득하다. 순간의 방심은 생명 의 끝을 부른다. 우리는 초식동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생명유지를 위한 중요한 활동이다. 게다가 그들은 결코 ‘한가롭지’ 못하다. 떼 지은 무리가 식사하는 그 시간을 호시탐탐 노리는 육식동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람의 방향을 감지하면서 냄새를 피우 지 않으려 최대한 몸을
[Landscape Times] 얼마 전 혈육과의 영원한 이별이 있었고 더불어 주변 몇몇 분들의 안타까운 투병이야기가 들려왔다. 나이와 관계없이 언제까지나 싱싱한 초록으로 곁에 있을 것 같던 분들의 황화(黃化)는 까마득한 우울감이 되어 맴돈다. 그분들의 연두색 이파리인 손자들은 이 겨울에도 사랑과 관심을 먹으며 쑥쑥 자라고 있는데 말이다. 우주의 계절이 돌고 있다면 사람 세상 안에도 24절기가 공존한다. 갓 태어날 아기와 죽음을 향한 노인, 마악 떡잎을 올리는 유아와 황화의 채비에 들어선 중년!때가 되면 우리는 자신만의 절기에 진입
[Landscape Times] 나무는 사계절을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의 화려한 성장(盛粧)을 볼 수 있는 계절은 여름이다. 여름의 나무는 가장 화사한 잎의 빛깔로 자신을 연출한다. 다른듯 같은 초록의 잎들은 나무의 전성기를 보여준다. 겨우내 세워둔 전략과 전술이 빛나는 시기이다. 어디에 얼마만큼의 가지를 키울 것인지, 잎을 낼 것인지, 그 계획에 따라 나무의 장년이 지속된다. 사람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의 풍부한 영양과 정교한 관심이 제각각의 잎과 가지를 갖춘 개성과 자질을 길러낸다.그렇게 나무나 사람이나 전성기를 지낸
[Landscape Times] 작년에 몰아닥친 코로나 사태가 올해 들어 조금 잠잠해지면서 위드코로나 시대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새로운 변이바이러스가 나타나고 우리들의 삶은 또 다시 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생명체이니 생존을 도모하느라 갖은 전략을 다 쓰고 있다고 치더라도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우리 인간이 번번이 그들에게 당하고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진화적 군비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을 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경쟁 대상이 되는 생
[Landscape Times] 최초의 정원이론서는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명나라 때의 건축설계사이며 정원설계사인 계성(計成)이 지은 ‘원야(園冶)(1634)’이다. 계성은 본래 화가였다.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을 그대로 담은 것은 아니다. 자연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조명하여 일정한 화폭에 구현한 것이다.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하게 배치한 하늘과 구름과 산과 강은 그리는 이의 마음과 느낌이 함께 담겨있다.그림 한 구석에 자리한 작은 초가와 소 한 마리, 그 옆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아이는 자연에 녹아든 인간 존재
[Landscape Times] 가을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계절은 없다. 가을만큼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계절은 없다. 가을만큼 사람을 처절하게 하는 계절은 없다. 열매의 풍요와 만남의 풍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설렘과 이별의 처절함이 공존하는 게 가을이다. 나목(裸木)을 향해 달리는 나무들은 지독하게 아꼈던 존재들을 버리고 그 흔적들을 지운다. 가을은 나의 벗은 몸을 마주하는 때이다. 나무가 나신(裸身)을 즐기듯이 우리도 자신과 마주한다. 아주 조용하게 아주 고독하게 나란 존재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다.가을에 우리는 방안에 머물
[Landscape Tiems]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은 자연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연의 품을 떠나 문명이 만들어 낸 도시와 현대에서 살게 되었지만 부드러운 흙을 지닌 ‘어머니’ 땅과 만물의 맏이인 식물이 기거하는 숲은 언제나 포근한 고향집이다. 자연에서 문명으로 이사한 인간들이 그리움을 달래려고 만든 장소가 바로 정원이다. 정원은 회상과 기억과 연모가 가득한 장소이다.나무와 꽃과 새와 벌레가 살고 있는 정원은 옛적 에피쿠로스학파의 만남과 공부의 터전이기도 했다. 그들은 과일과 채소가 심긴 정
[Landscape Times] 농부의 손길이 분주해지는 가을이다. 어느 때인들 바쁘지 않았겠냐마는 가을 일손은 설렘과 뿌듯함에 가득하다. 봄부터 여름까지 호흡을 맞추어 애지중지 키워온 식물들의 소중한 씨앗들을 받아내는 때이다. 하늘과 땅의 합작품인 식물의 씨앗과 열매는 온 세상을 신나게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이 제공한 조건 속에서 최선의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예로부터 지금까지 땀을 흘려왔다.그래서 동양에서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라는 표현을 썼다. 은 삼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Landscape Times ] 며칠 전 논산에서 농사하는 지인이 누렇게 물든 논을 찍어 보내주었다. 봄기운이 가물거리던 때 녹고 있는 땅을 보내준 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덧 추수할 때가 된 것이다. 모내기하는 논의 모습과 푸릇하게 자라는 벼의 싱싱함도 기쁨이었다. 도시에 있는 나는 그 분의 땅에서 계절과 생명의 순환을 본다. 얼마 전 충청 지역에 태풍이 쓸고 지나갔을 때 염려하였으나 다행히 그 곳은 무사하다고 전해 주었다.지인의 친절로 내게도 그 분의 송글한 땀방울을 보내주시니 그 땅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겸사겸사 당연하다. 그
[Landscape Times] 씨앗이 익어가는 계절은 우리들에게도 기쁨이다. 푸른 잎이 알록달록 바뀌듯이 새파란 열매들도 옷을 갈아입는다. 익어가는 열매들을 보며 가을만이 주는 풍성함과 행복에 젖어든다. 어디 사람들뿐일까? 곳곳에 포진한 동물들도 열매들이 어서 익기를 손꼽는다. 아마 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코를 들이댈 것이다. 가을은 그렇게 뭇 생명들을 기대에 차게 만든다. 성숙과 변신이 교차하고 다채로운 색의 잔치들이 벌어지는 계절, 가을이다. 사람들 세상에서 가을은 이별과 통한다.봄이 사랑의 시작을
[Landscape Times] 조금 있으면 추석이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공들여 노력한 수확물을 거두는 때이고 식물들 입장에서는 혼자서 또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자식을 생산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종종 어떤 나무는 자식을 실하게 생산하지 않는다. 병충해로 아픈 것도 아니고 토양의 조건이 나빠진 것도 아닌데 꽃을 제대로 피우지 않고 열매도 시원치 않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섭섭하고 기운이 빠진다.이런 현상을 ‘해거리’라고 하는데 열매를 맺지 않고 해를 거른다는 뜻이다. 어떤 해에 열매가 많이 열리면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