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하늘은 가을하늘만큼이나 예쁘다. 생명을 온통 잠 깨우느라 바쁜 봄이 지나서일까, 초여름에 들면 하늘은 잔잔한 기운이 돈다. 땅은 어떤가? 땅도 봄에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느라 몸살을 치르고 나서 안정기에 들어서는 계절이다. 바람도 할 일이 많다. 바람이 중매해 줄 식물들도 만만치 않은 탓에 봄바람도 거세고 여름바람도 드세다.우리 인간은 이 사이에서 말이 많다. 봄볕은 왜 이리 따가운가. 바람은 변덕스럽다는 둥 하늘과 땅이 우리를 위해 일하는 양 착각을 한다. 올해는 인간도 분주한 해이다. 4월 한창 봄일 때 대통령을 뽑았고
[Landscape Times] 나무들이 사방으로 폭죽 같은 꽃을 터뜨리는 봄은 개혁의 시간이기도 하다. 화분에 심겨진 나무들은 봄을 찬스로 하여 새로운 기회를 다진다. 땅에서 자라는 나무라면 땅이 절기를 따라 모든 것을 마련해주지만, 화분에서 자라는 나무는 극도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 많은 제약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화분의 나무는 가꾸는 이의 세심한 관심과 돌봄이 요구된다. 규모가 가장 큰 판 바꾸기는 바로 분갈이다.분갈이는 환경과 식물을 모두 손질하는 것이다. 나무를 화분에 심고 2~3년이 지나면 뿌리가 자라나서 화분 안에 뿌리
[Landscape Times] 매일 수십만 명의 확진자 수를 갱신하는 코로나 대유행의 시절이 되었다. 2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왔을 때 그들은 맹독으로 무장하고 숙주인 인간들을 보란 듯이 가차 없이 살해해 버렸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들의 공격에 전 세계가 벌벌 떨고 만물의 영장이라 자랑하던 인간들은 쥐구멍으로 숨어버렸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진화적 군비경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햇수로 3년이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달라졌다.숙주를 없애고 나니 자신들도 깃들 곳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인간
[Landscape Times] 해리포터 시리즈 속에는 ‘불사조 기사단’ 이야기가 있다. 사춘기를 지나는 해리포터의 성격이 가장 예민하게 묘사되는 부분이며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마법사 기사단의 의로움이 돋보이는 편이다. 서양 전설에는 아라비아 사막에 살고 있다는 피닉스(phoenix), 죽지 않는 새에 관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온다. 불사조는 500년을 주기로 자신의 몸을 불태워 죽고는 다시금 그 재 속에서 부활한다.한 번 수명인 500년이 끝나갈 때가 되면 피닉스는 스스로 그것을 알고는 나무 꼭대기로 올
[Landscape Times] 세상은 욕망으로 하여 움직인다. 욕망은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죽어있는 개체 외에는 어떤 생명체도 욕망이 행동의 원동력이 된다.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 안도 사막의 뜨거운 열기 속도, 북극의 빙하에도 아프리카의 초원도, 하늘 위도 땅 위도 땅 속도 모두 욕망의 결전장이다. 자연은 나의 욕망과 너의 욕망이 엉키어 만드는 크고 작은 생명의 이야기들을 즐기는 듯하다. 그 스토리들을 감상하려고 우주와 지구와 땅과 태양이 있는 건 아닐까? 그 안에서 식물처럼 생물들의 갖은 욕망을 다 품고 지내는 존재가 있을까?동
[Landscape Times] 작년에 몰아닥친 코로나 사태가 올해 들어 조금 잠잠해지면서 위드코로나 시대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새로운 변이바이러스가 나타나고 우리들의 삶은 또 다시 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생명체이니 생존을 도모하느라 갖은 전략을 다 쓰고 있다고 치더라도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우리 인간이 번번이 그들에게 당하고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진화적 군비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을 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경쟁 대상이 되는 생
[Landscape Times] 최초의 정원이론서는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명나라 때의 건축설계사이며 정원설계사인 계성(計成)이 지은 ‘원야(園冶)(1634)’이다. 계성은 본래 화가였다.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을 그대로 담은 것은 아니다. 자연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조명하여 일정한 화폭에 구현한 것이다.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하게 배치한 하늘과 구름과 산과 강은 그리는 이의 마음과 느낌이 함께 담겨있다.그림 한 구석에 자리한 작은 초가와 소 한 마리, 그 옆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아이는 자연에 녹아든 인간 존재
[Landscape Times] 가을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계절은 없다. 가을만큼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계절은 없다. 가을만큼 사람을 처절하게 하는 계절은 없다. 열매의 풍요와 만남의 풍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설렘과 이별의 처절함이 공존하는 게 가을이다. 나목(裸木)을 향해 달리는 나무들은 지독하게 아꼈던 존재들을 버리고 그 흔적들을 지운다. 가을은 나의 벗은 몸을 마주하는 때이다. 나무가 나신(裸身)을 즐기듯이 우리도 자신과 마주한다. 아주 조용하게 아주 고독하게 나란 존재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다.가을에 우리는 방안에 머물
[Landscape Tiems]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은 자연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연의 품을 떠나 문명이 만들어 낸 도시와 현대에서 살게 되었지만 부드러운 흙을 지닌 ‘어머니’ 땅과 만물의 맏이인 식물이 기거하는 숲은 언제나 포근한 고향집이다. 자연에서 문명으로 이사한 인간들이 그리움을 달래려고 만든 장소가 바로 정원이다. 정원은 회상과 기억과 연모가 가득한 장소이다.나무와 꽃과 새와 벌레가 살고 있는 정원은 옛적 에피쿠로스학파의 만남과 공부의 터전이기도 했다. 그들은 과일과 채소가 심긴 정
[Landscape Times] 발랄한 한 미국 청년이 허름한 버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인상적인 영화 를 보았다. 지인의 추천 덕분이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 단계로 진입할 인생의 전기에서 청년 크리스는 야생으로 들어갈 결심을 한다. 모아 놓은 전 재산은 기부하고 신분증과 돈도 불태워버리고는 자연의 일부가 되려고 자연으로 향한다. 패기와 순수로 무장한 청년은 도중에 몇몇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고 그들과 우정을 나눈다.그의 발목을 잡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혼자의 야생으로
[Landscape Times] 유럽에 중국 열풍이 불던 시절이 있었다.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사람들은 중국문화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들은 공자의 민본 사상에 도취되었을 뿐 아니라 비단과 도자기 같은 고급스런 중국 물건들을 애호했다. 유럽인들이 지금은 아닌 척 시치미를 떼고 있다 해도 당시 중국 열풍의 큼직하고 엄연한 증거로 남은 것이 바로 정원이다.근대적 영국정원은 중국으로부터 기원했다. 대표적인 중국풍 건축정원은 영국의 큐 가든으로, 체임버스가 ‘공자의 일생’을 그
[Landscape Times] 늦은 듯 하지만 기다렸던 첫눈이 왔다. 사람들만 첫눈을 기다린 게 아니었다. 나무들도 눈을 만나려 가을부터 서둘러 옷을 훌훌 벗었다. 사람들이 잔뜩 껴입고 눈을 만난다면 나무들은 모두 벗고 눈과 만난다. 눈과의 만남 또한 나무 생의 재미이다. 빗물은 서둘러 땅으로 향하지만 눈송이는 얼마간 둥치와 가지에 머무른다. 얼마 전 잎들을 떠나보낸 가지들이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고 있던 중 기다리던 손님들이 찾아왔다. 가지를 떠난 잎들은 땅위에 내려 앉아 눈과 비벼가며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이 되어갈 것이다.가지
[Landscape Times] 마지막 달력의 시기, 12월이다. 어쩐지 허전해도 거리의 나무들을 보면 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나무들에게는 이제 이별의 순간도 지나갔다. 발밑에서 수다 떨던 잎들도 모두 자기 길을 찾아 떠났다. 혼자 남은 나무는 본연의 시간을 헤아린다. 바람과 별과 눈, 가끔 놀러올 새들과 지내는 때가 되었다. 홀로 있어야 하는 계절, 외롭지만 휴식의 기간일 수 있다. 버리고 비우지 않으면 갖지 못할 나날이다. 이때를 위해서 식물은 분주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평온하게 쉴 수 있다. 가을 낙엽의 세포자살
[Landscape Times] 솨!~ 우수수~ 부는 바람에 잎들이 나뭇가지를 떠난다. 짧은 비행을 하고 나면 새로운 여행길에 오른다. 작은 나무들 머리에 내려앉기도 하고 이끼와 풀들이 빼곡한 땅위로 돌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닦아 놓은 단단한 길 위에 떨어지기도 한다. 가을은 식물의 여행시즌이다. 공들여 만든 씨앗들도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다. 되도록 멀리 가려고 새들에게 유혹의 눈짓을 보낸다.물론 공짜는 없다. 엄마가 만들어 준 향기 좋고 영양 넘치는 과육이 뇌물이다. 비교적 가벼운 열매와 씨앗들은 바람의 손길을 기다린다
[Landscape Times] 아내가 죽었는데 북치고 노래하는 사내가 있었다. 조문하러 온 친구가 기가 막혀 물었다. “자네,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며 긴 세월 살아온 자네 아내가 저세상으로 갔는데 통곡은 못할지언정 노래를 부르다니!” 친구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사내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친구,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내가 왜 슬프지 않겠나? 나도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보았지, 아내는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그녀는 어디에서
[Landscape Times] 오 헨리의 는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인생을 보여준다. 폐렴에 걸린 화가지망생 소녀가 병상에서 하나 둘 세고 있는 옆집 담쟁이덩굴 이파리는 가을을 달리고 있다. 잎들이 모두 떨어져 버릴 때 자신의 생도 겨울로 마감할 거라고 믿는 그녀는 마지막 남은 한 개의 잎에 시선을 모은다. 찬바람에 파르르 떨고 또 떨지만 가지에 끝까지 매달려 있는 잎을 매일 바라보면서 그의 절망은 희망으로 변해간다. 가을을 견디며 겨울로 소환되지 않는 잎처럼 자신의 가을 또한 확장되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
[Landscape Times] 영원한 처녀성을 상징하는 여신 아르테미스를 섬기던 님프 시링크스는 목신 판(Pan)의 구애를 받게 된다. 아버지는 제우스며 어머니는 님프인 판은 머리에 작은 뿔을 가진 인간과 염소를 합친 모습이었다. 판은 시링크스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했지만 순결을 중시한 그녀는 판을 피해 도망 다니며 살았다. 어느 날 쫓아오는 판에게서 벗어나고자 온 힘을 다해 달아나던 시링크스는 더 이상 도망할 수 없게 되었다.판을 피해 수풀을 헤치고 나아간 그녀의 눈앞에는 커다란 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강을 헤엄쳐 건널 자신이
[Landscape Times]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중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현대 시인의 관점에서 국화를 노래했다. 국화는 조금만 있으면 어디에나 피어나 우리를 흐뭇하게 반겨줄 것이다.선선해진 날씨는 가을을 재촉하고 나의 눈앞에는 지난 늦가을
향긋하고 달콤한 복숭아의 계절이다. 황도와 백도의 시절은 그리 길지 않다. 잘 익었는가 하면 금방 물러버리고 맛이 빠지는 복숭아의 타이밍을 잡으려고 해마다 이맘때면 서둘러 과일가게로 간다.서양에서 사과가 환영받았다면 동양에서 복숭아는 지존의 지위를 누렸다. 복숭아는 최고의 꿈과 이상을 상징했다. 서양인들이 돌아가야 할 낙원을 사과의 정원으로 느꼈다면 동양인들은 복숭아의 숲으로 그렸다.어딘가에 있을 듯 하지만 쉽사리 갈 수 없는 그곳! 그래서 늘 가슴 졸이며 찾아 헤매는 곳,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곳! 이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었다.
[Landscape Times] 한 입 베어진 사과는 매혹적이다. 달콤한 과즙과 향이 느껴진다. 애플사의 로고는 동그란 사과가 아니라 한 입 먹힌 사과이다.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 가난했고 사과농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사과야말로 가장 영양이 많고 오랫동안 보존되는 과일이라고 생각했다. 사과는 귀족의 과일이 아니다. 저렴하고 서민적이다. 적응력과 생명력이 강해서 어느 곳에서든 잘 자란다. 인류의 긴 역사를 함께 해온 사과는 작은 씨앗 속에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사과 속에 신화가, 사과 속에 전쟁이, 사과 속에 반역이,